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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김종인은 '캐스팅 보터'가 될 수 있을까?

[취재파일] 김종인은 '캐스팅 보터'가 될 수 있을까?
● "통합정부, 민주-국민-바른의 연대가 바람직"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전 비대위 대표는 지난 5일 '통합정부'를 내세우면서 대선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국가적 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유능한 세력들의 연대를 통해 국회 의석 180석이 넘는 통합정부 구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더 이상 킹메이커는 하지 않겠다."면서 특정 후보 한 명과 함께하기보다는 판 전체를 보며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출마 선언 이틀 뒤인 7일 김종인 전 대표는 서울 여의도 윤중로 벚꽃길을 걷는 '벚꽃 정담' 행사를 열었습니다.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노변 정담'을 차용한 행사였습니다. 꽃길을 걸은 뒤 김 전 대표는 국회 벤치에 앉아 기자들과 정담을 나눴습니다. 이 자리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통합정부 구상에는 원내 5당이 모두 포함됩니까?"
"그렇다, 뜻을 같이 하면 누구를 배제하지 않는다."

"그럼, '180석이 넘는 통합정부'를 만들기 위해서는 현재 국회 의석 구성상 2가지 방식이 가능할 텐데, 민주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이 연대하는 통합정부가 바람직하다고 보시는가? 아니면 민주당을 배제한 통합정부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시는가?"
"민주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의 통합정부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김 전 대표가 통합정부의 상(像)에 대해 밝힌 건 처음이었습니다. 제가 취재한 바로는, 김 전 대표는 민주당을 탈당한 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통합에 역할을 하며 보수 연대를 모색하려 했습니다. 이를 통해 보수연합과 국민의당의 연대를 통해 통합정부를 만들어 보려는 구상을 한 듯합니다. 그런데 이런 답변은, 김 전 대표가 그동안의 보수 통합 구상을 포기하고 새로운 모색에 나서기로 했다는 뜻으로 읽혔습니다.  
문재인 후보와 김종인 후보
● 문재인과도 다시 손잡을 수 있다?

민주-국민-바른의 통합정부가 바람직하다는 것은 민주당, 즉 문재인 후보와 다시 손을 잡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김 전 대표는 문 후보와의 갈등 끝에 국회의원직도 버리고 민주당을 나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문 후보에 대한 비판과 섭섭함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비문 연대'의 핵심 인물로도 꼽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정치가 생물이라지만, 두 사람이 다시 손을 잡을 수가 있을까요? 늘 "쓸데없는 것 묻지 말고, 내가 실제 어떻게 행동하는지 봐요."라고 말하는 김 전 대표에게 더 이상의 구체적인 구상을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김종인 캠프의 한 관계자에게서 맥락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대표가 통합정부를 외치며 대선 출마까지 선언한 것은 결코 사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안보와 경제 등 국가의 총제적인 위기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위기 극복을 위한 통합정부를 만들 수만 있다면 문재인 후보와 다시 손을 잡지 못한 이유는 없다. Why Not?"


● 누가 먼저 김종인의 손을 잡을까? 잡기는 할까?

현재 여론조사 결과상 양강구도를 이루고 있는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에게는 각각 약점 혹은 한계가 있습니다. 문재인 후보는 진보적 지지층은 탄탄한 반면, 중도로의 외연 확장이 과제입니다. 안철수 후보는 중도층과 보수층에 걸쳐 일단 폭넓은 지지를 흡수했지만, "40석 소수정당으로 안정적 집권이 가능하겠냐."는 질문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전 대표의 통합정부론을 받아들인다면? 문 후보는 중도로의 외연 확장에 활로를 뚫을 수 있을뿐더러 김 전 대표와의 재결합이라는 반전의 '정치 드라마'를 선보일 수도 있습니다. 또 지금까지는 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이 함께하는 옛 야권 소연정을 이야기했었는데, 여기에 바른정당까지 연대하겠다고 한다면 경선 과정에서 안희정 충남지사가 밝혔던 대연정 구상의 일부를 받아들이는 모양새도 됩니다. 대거 안철수 후보 쪽으로 선회한 것으로 분석되는 안희정 지사 지지층을 다시 끌어올 수 있는 유력한 명분을 갖출 수 있는 겁니다.

안철수 후보는 어떨까요? '40석 집권'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 안 후보의 반박 요지는 "박근혜 전 대통령 봐라, 150석 넘게 갖고도 국정 운영을 제대로 못하지 않았냐. 문재인 후보가 집권해도 120석 안팎으로 여소야대인 건 마찬가지다. 나는 대통령이 되면 협치를 통해 널리 인재를 구하는 탕평책을 쓸 것이다."였습니다. 원칙만 천명했을 뿐이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경로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다는 비판을 계속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안정을 원하는 보수층에게는 소수 정당 집권이 불안정성으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안 후보가 김 전 대표의 '민주-국민-바른 통합정부론'을 수용한다면? 소수집권의 불안정성 때문에 지지를 망설이는 유권자들에게 협치의 분명한 지향과 대상, 구체적인 경로를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여기에 김종인이라는 상징적 인물과 함께 함으로써 갖게 되는 유무형의 효과도 있을 겁니다.
김종인 후보,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 정운찬 전 총리
● '정치적 캐스팅 보터'김종인은 누구의 손을 잡아줄까?

물론, 김 전 대표가 현실적인 정치 세력이나 대중적 기반이 크지 않기 때문에, 지금으로선 양 측 모두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선거가 막판으로 흘러가면서 양강구도가 더 첨예해지고 그야말로 승부가 안개 속으로 빠져 들어갈 때, 김 전 대표가 '정치적 캐스팅 보터'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이 왔을 때, 누가 더 필요성을 느끼고 김 전 대표의 손을 먼저 잡느냐가 어쩌면 이번 대선의 승부를 가르는 한 요인이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만일 그런 상황이 펼쳐진다면 정작 김 전 대표는 누구의 손을 들어주게 될까요? 김 전 대표는 조만간 정운찬 전 총리나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 같은 원로들과 논의를 거쳐 정치권에 통합정부 제안을 정식으로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제안을 모두가 외면할지, 아니면 누가 그의 손을 잡겠다고 할지, 현재 대선 판도와 맞물려서 유심히 지켜봐야 할 대목 중 하나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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