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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승진을 거부합니다"…그 속내는?

[취재파일] "승진을 거부합니다"…그 속내는?
현대차그룹이 10대 그룹 가운데 직원들 만족도가 가장 높은 곳으로 선정됐습니다. 기업 정보 서비스 업체인 잡플래닛이 인터넷 공간의 게시물 5,200여개를 분석하는 방식으로 조사한 결과입니다. 5개 평가 항목 가운데 현대차그룹은 복지·급여 부문에서 특히 점수가 높았습니다. 게시물 내용을 봐도 연봉과 복지가 좋다는 글이 대부분입니다.
 
현대차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차 직원의 평균 연봉은 세전으로 9600만 원입니다. 물론 성과급과 각종 복리후생비가 모두 포함된 액수입니다. 고용 안정성도 다른 기업보다 높습니다. 평균 근속 연수는 17.2년입니다. 국내 정규직 노동자의 평균 근속연수 7.3년에 비해 2배 이상입니다.
 
지난 4월 현대·기아차는 전 세계 자동차 판매 1억 대를 돌파했습니다. 판매를 시작한 지 불과 54년 만의 성과입니다. 회사와 자동차 산업의 성장이 보수 증가와 고용 안정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강한 노조도 한 몫 했습니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 1987년 설립된 이후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의 최대 핵심 사업장입니다.
 
● "대리는 자동 승진, 과장 승진은 거부"
 
현대차 노조가 오늘(13일) 파업 찬반 투표를 실시합니다. 올해 임금협상이 결렬됐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가결이 확실시 됩니다. 노조는 기본급 7.2%인 임금 15만 2천50원(호봉승급분 제외) 인상, 전년도 순이익의 30% 성과급 지급 등을 요구했습니다. 생소한 요구안도 있습니다. 바로 ‘일반·연구직 조합원의 자동 승진제 확대 및 승진 거부권’입니다.
 
현대차에서 조원-조장-반장(계장)의 직급체제로 운영되는 기술직(생산직)은 직급이 올라가도 조합원 자격이 유지됩니다. 하지만 일반·연구직은 대리에서 간부급인 과장으로 승진하면 비조합원으로 변경됩니다. 급여 체계도 호봉제에서 연봉제로 바뀝니다. 5단계로 인사고과가 이뤄지고, 고과에 따라 연봉도 달라집니다. 과장부터 평가에 신경 써야 하고, 노조라는 울타리도 없어 지는 것이죠. 그래서 노조가 내세운 것이 '승진 거부권'입니다. 본인이 원하면 과장 진급을 거부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동 승진제' 도입을 요구했습니다. 대리까지는 자동으로 승진토록 하는 제도입니다. 즉, 대리까지는 승진을 보장받고, 과장부터는 승진 여부를 조합원 스스로 결정하도록 해달라는 게 노조의 요구입니다.
 
● "고용 불안" VS "혜택만 챙기기 위한 수단"
 
노조가 승진 거부권 도입 이유로 내세운 것은 고용불안입니다. 간부급인 과장 이상이 되면 평가에 따라 연봉 조정뿐 아니라 부서 이동, 퇴출도 가능해진다고 노조는 말합니다. 사측이 달가워하지 않은 노조 활동을 열심히 해온 조합원일 경우에는 가능성이 커진다고 합니다. 장기 불황에 따른 구조조정 가능성도 있습니다. 특히 이웃 회사인 현대중공업의 구조조정이 두려움을 키웠습니다. 노조 입장에서도 승진 거부권이 도입되면 안정적으로 조합원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현대차 노조 관계자는 "조합원들이 대리 승진 시험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또 과장급이 되면 평가 부담도 있지만 무엇보다 고용에 불안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이는 많은 노조원들의 요구 사항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이 제도는 새로운 게 아니다. 몇 년 전부터 현대차 남양연구소 노조가 이 제도들을 이미 시행하고 있으며, 이를 확대해달라는 게 우리의 요구"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현대차 사측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라고 잘라 말합니다. 회사의 인사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입니다. 현대차 관계자는 "남양연구소 노조가 2013년 노조 조합원 자격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별도의 전문 연구직 도입을 추진하기도 했지만 도입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고용불안의 문제로만 볼 수도 없다고 합니다. 대리 이하는 승진을 하지 않아도 호봉제에 따라 임금이 오릅니다. 인사 고과에 크게 부담을 느낄 필요도 없습니다. 또 조합원으로 남으면 정년을 보장받습니다.
 
노조는 조합원의 권리와 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입니다. 노사 협상은 여느 협상과 마찬가지로 서로의 요구 사항을 최대한 제시하고 접점을 찾아갑니다. '승진 거부권'이 이번 임금협상에서 노조의 핵심 요구사항은 아닙니다. 협상 석상에서 쟁점으로 갈 가능성도 크지 않아 보입니다. 한편에서는 구조조정 광풍이 불고 있는 상황에서 '오죽하면'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하지만, 회사가 존속해야 노조도 존속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년 대리로 남으려는 직원들이 다른 직원들만큼 생산성이 높을까요? 만년 대리가 많은 회사가 경쟁업체보다 빨리 성장할 수 있을까요? '고용불안' 말고 다른 설명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승진에 목숨을 거는 일반 직장인에겐 노조의 배부른 요구로 비춰질 수 밖에 없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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