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70년에 걸친 한복 변천사를 담은 전시라고 정부가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한복특별전. 그런데 전시장 초입에서 만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그래도 ‘한복사진이니 뭐 그러려니’ 하고 다른 전시물들을 둘러 보는 데 좀 이상하다.
7, 80년대를 비롯해 시대별로 전시된 한복들이 유리 대신 반투명의 하얀 천으로 가리워져 있다. 천에 가려 문화재급 한복 고유의 선과 색상은 제대로 감상할 수가 없다. 보일 듯 말 듯 안개 같은 효과로 신비감을 주려 했나 보다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전시 책임자는 “예산이 없었다. 직접 조명에 따른 한복 문화재의 훼손을 막기 위해 천을 이용했다.”고 했다.
한복특별전인데 정작 한복전시에 필요한 예산이 모자랐단다. 결국 의도 여부와 상관없이 기자의 눈에 이 전시에서 가장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대통령의 한복 사진이다. 돋보이지만 거슬린다. 전시 기획자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결과적으로 공간의 배치와 작품 설치까지 균형을 잃었고 '한복특별전'에서 가장 '특별'해 보이는 것은 '대통령'인 셈이다.
● 장면 둘,
지난 달 하순 프랑스에서 있었던 한불 문화교류 행사에 출장 갔던 공무원들한테 비상이 걸렸다.
전언에 따르면 진행된 문화행사 취재가 거의 끝난 상황이었으나 갑자기 현지에 전시된 박 대통령의 한복을 특별히 홍보하라는 지시가 서울에서 하달됐기 때문이란다. 담당부처의 고위 공무원들은 여러 언론사에 부탁하고 사정하고 읍소했고,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한복을 주제로 한 기사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한복 세계화를 진두 지휘하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홍보해야 했던 공무원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한복 세계화를 매개로 한 ‘대통령 한복’ 띄우기는 국내 정치용일 뿐이라는 의구심을 벗을 수 없다.
지도자의 패션은 그 자체로 훌륭한 메시지가 될 수 있다. 구멍난 신발과 작업복으로 지진피해 현장을 누비던 중국의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그랬고, 유럽을 쥐락펴락하는 메르켈 총리는 ‘비극의 광경’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패션 문외한이지만 오히려 만성화된 경제위기 속에 '절제와 검소'의 지도자 이미지로 호감을 얻기도 했다.
첫 여성 대통령인 박 대통령은 옷맵시가 좋은 정치인으로 꼽혀 왔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그게 전부다. 무대에선 주목받고 빛나지만 고단한 시민들의 삶 속에 좀처럼 어우러지지 못한다. 그래서 공허하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 팍팍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는 상황이다. 화려함과 우아함을 뽐내는 대통령의 한복차림을 칭송하는 기사들은 몇몇 골수 지지자들에게는 대통령을 ‘예쁘고 기품있는 지도자’로 인식시킬지 모르지만 그 밖의 국민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는 읽는 분들의 판단에 맡긴다. 공무원들은 대통령의 한복 맵시를 홍보하느라 눈물겨운 분투를 벌이지만 노력만큼 반향을 얻고 있는가? 왜 반향을 얻지 못하는지 정말 모르는가?
이명박 정부 시절 한식을 세계화한답시고 부산을 떨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대통령 부인이 진두지휘했던 사업이지만, 수백억 혈세만 날렸다.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본질은 간 데 없고 온통 대통령 부인이 뭘 했다는 식의 ‘그 분’ 심기관리와 동정 홍보에 정신이 팔려 있었으니 빈 깡통 같은 결과는 처음부터 예견된 셈이었다.
이대로라면 요란스레 진행되는 한복 세계화의 미래도 별반 다를 게 없다. 공무원들은 ‘대통령의 한복’에 화려한 조명을 비추느라 열을 올리고 있지만, 정작 한복 세계화를 위해 무슨 로드맵과 액션플랜이 있는지 제대로 된 설명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저 무대 위에 반짝반짝 빛나는 우아한 한 분이 계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