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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격차에 지친 뉴욕의 설레는 교황 맞이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 앞둔 美현지표정

[월드리포트] 격차에 지친 뉴욕의 설레는 교황 맞이
점심 시간에 잠시 얘기를 나눈 옆자리의 미국청년은 "교황의 이번 뉴욕 방문은 가을의 축복"이라고 말했다. 신교도들이 세운 미국의 역사를 배운 사람들에게 카톨릭 교황에 이렇게 들떠있는 모습은 예상 밖이다. 최근의 미국은 개신교가 51%, 가톨릭이 23% 정도로 추산된다.

가톨릭의 중심은 단연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이다. 막강한 NYPD의 최대 파벌로 눈총 받기도 하는 아일랜드계는 뉴욕, 뉴저지 일대 천주교 성당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최근엔 중남미계가 합류했다. 히스패닉계 이민자들도 상당수가 가톨릭 교도이다. 이렇게 뉴욕의 가톨릭 인구는 최근 빠르게 늘어났다.

● 뉴욕에서도 낮은 곳에 임하는 교황 

 하지만 비중이 늘었다는 것만으론 이해하기 힘든 흥분이 느껴진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강한 캐릭터도 신드롬의 요인으로 보인다. 1920년대 이탈리아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건너온 이민자의 아들로 제3세계의 피폐한 현실을 보며 성장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평소 미국과 자본주의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분명하게 말해왔다. "우상 숭배처럼 맹목적이고 인간의 생명을 돈의 제단에 희생시키는 경제 모델에 굴복해서는 안됩니다."

교황은 미국에서도 낮은 곳으로 임할 예정이다. 미 의회 연설 직후 찾을 곳은 일용 노동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푸드트럭 봉사현장이다. 워싱턴의 성 패트릭 교회를 방문할 때는 노숙자 모녀가 초대 받았다. 뉴욕에서는 가장 먼저 흑인 거주지역인 할렘가의 학교를 찾는다.

과거의 어두움을 뚫고 명문 학교로 성장한 이곳 공립학교에서 교황은 희망을 전할 예정이다. 뉴욕의 로컬방송들은 일제히 이 학교를 미리 찾아가 어린 학생들을 인터뷰했다. "교황님은 어떤 휴대전화를 쓰나요?", "아이스크림은 어떤 맛을 좋아하시는지..저처럼 바닐라맛?" 교황을 만났을 때 하고 싶은 질문을 말하는 천진한 아이들의 선한 눈망울이 TV 화면에 나왔다.


●  이주노동자가 만든 교황의 의자

뉴욕에서 교황의 방문은 가톨릭교도들의 축제가 아닌 소수민족, 이주 노동자들의 축제같다. 교황이 25일 뉴욕 맨해튼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집전할 미사에서 앉을 나무의자가 공개됐다. 천주교 뉴욕대교구는 늘 소외된 이웃을 생각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희망하는 교황임에 착안해 의자 제작을 이주 노동자들에게 맡겼다.

필라델피아에서 앉을 의자도 마찬가지이다. 뉴욕 한인타운과 가까운 8번 애비뉴에는 55미터 높이의 거대한 벽화가 그려졌다. 열흘 동안 그려진 벽화는 자상한 표정의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을 담고 있다. 뉴욕에 이어 교황이 방문할 필라델피아에선 레고블럭 50만개로 10개월 동안 제작된 바티칸 성당 모형이 공개되기도 했다. 뉴욕의 한 제과점에선 교황의 얼굴이 그려진 쿠키가 등장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뉴욕 방문의 하일라이트는 유엔 연설도 아닌 센트럴파크 행진이다. 교황은 전동차량을 타고 이동하며 시민들을 만날 예정인데, 이 행사는 거리에서 하는 방식인데도 입장권이 있다.

뉴욕시에서 사이버 추첨으로 신청자들에게 배정한 티켓은 8만장, 그런데 일부는 요즘 4백달러짜리 암표로 둔갑해 팔리고 있다고 한다. 집권 후 처음 뉴욕을 방문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나 푸틴 대통령에 대한 관심은 찾을 수 없다.


● 교황이 던질 메시지에 긴장하는 미 정치권
   

뉴요커들에게 교황에 대한 열광은 마치 구원에 대한 희망같다. 세계에서 가장 부국이라는 미국에서 말이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뉴욕시 상위 5%의 소득은 하위 20%보다 13.7배 많았다.
미국의 빈부격차는 30년 만의 최대 수준이다.

부동산의 소유, 그리고 안정된 정규직 자리를 가진 사람은 극히 적다. 패스트푸드 업종의 법정 최저임금을 시간당 15달러로 크게 올리면서도 주의회나 뉴욕 공화당 인사들의 두드러진 반대가 없었던 것은 '폭동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씁쓸한 농담도 나온다.

한국에서도 열광하곤 하는 스티브 잡스의 신화와 구글, 페이스북 등 실리콘 밸리 문화에 대한 반감도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선 상당하다. 학자들은 MBA 문화가 키워낸 신화와 부의 편중에 큰 의문과 우려를 던지기 시작했다.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 미국에서도 요즘은 '개천에서 용나는'일이 쉽지 않다. 담대한 희망의 오바마 대통령에게도 미국 진보의 희망이라던 빌 드블라지오 뉴욕시장에게도 서민들은 이제 기대를 버린 모습이다.

교황의 방문에 긴장하는 곳은 미국 정치권이다. 대선전의 와중에 교황은 미국내 인권과 관련한 민감한 이슈에 대해 진솔한 의견표출과 직설적 비판을 가할 가능성이 높다.

법적으로 다듬어진지 오래지만 진전이 없는 이민법 문제와 월 스트리트가 상징하는 '야만적 자본주의'에 혹독한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또 해마다 반복되는 인종차별적인 공권력 집행과 법 판결도 교황의 쓴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트럼프의 기형적 선전이 오히려 절망을 불러오고 있는 대선전에 교황의 언급들이 큰 변수가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교황의 발언은 정치적이 아니지만 정치적 후폭풍은 상당할 것이란 전망이다. 정작 프란치스코 교황 자신에겐 이번 미국 방문이 생애에서 처음이다.

사람들을 직접 접촉하고 축복하길 원하는 교황을 IS나 테러로부터 지켜내야하는 뉴욕 경찰당국만큼 교황의 뜨거운 인기와 시민들의 환영을 바라보는 미국 지도층의 심정도 착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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