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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한항공은 "경복궁 옆 호텔"을 정말 포기했나?

[취재파일] 대한항공은 "경복궁 옆 호텔"을 정말 포기했나?
지난 18일 문화체육관광부가 박근혜 정부 후반기 문화융성 정책의 기본 방향과 추진계획을 브리핑하겠다며 긴급 기자회견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박 대통령이 신경 쓰는 핵심 국정과제인 만큼 언론들의 관심도 남달랐고, 좀처럼 눈에 보이는 가시적 성과를 내기 쉽지 않은 문화 융성에 관한 내용이니 준비하는 문체부 공무원들도 땀 좀 흘렸다고 합니다.

● 특혜 논란 부지를 복합문화 공간으로(?)

▲ 복합문화 공간을 조성하기로 한 대한항공의 서울 송현동 부지

기자회견 내내 질문이 집중된 것은 대한항공이 경복궁 옆 송현동 부지에 “K-EXPERIENCE”라는 복합문화 공간을 만들겠다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만 한 것이 그 동안 문화융성이라는 국정과제에 별 관심이 없는 듯 했던 대한항공이 뜬금없이 문화시설을 짓겠다는 것도 의아했고, 문제의 땅은 7성급 한옥호텔을 짓겠다고 대한항공이 소송과 헌법소원까지 불사할 만큼 공을 들여왔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3년 9월엔 박 대통령까지 나서서 경제활성화 차원에서 “유해시설 없는 관광호텔 건립”을 언급하고 여당이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대한항공의 호텔 건립을 지원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거센 재벌특혜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이 와중에 조현아씨의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으로 대한항공에 대한 국민여론이 크게 악화되자 호텔 건립 추진은 더 이상 거론하기 쉽지 않은 상황으로 가는 듯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항공은 3만 6천여 제곱미터에 달하는 부지 전체를 활용해 전통문화와 첨단 기술을 결합한 융복합 문화 공간을 만들겠다고 밝혔고, 현실적으로 호텔 건립이 불가능한 만큼 문화센터 건립에 집중하겠다고 밝히고 나섰습니다.

문체부 관계자들은 ‘대한항공이 호텔 건립을 사실상 백지화한 것’이라고 거들기도 했습니다.

● "'호텔 포기'라는 표현만 쓰지 말아 달라"

많은 언론들은 대한항공이 호텔 건립을 포기하는 대신 문화융성 정책에 호응해 문화융성의 서울 도심 거점으로 송현동 땅을 활용하기로 했다고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문체부 브리핑에 경복궁 옆 송현동 땅과 관련한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 배석한 대한항공 측 임원들은 기자회견 내내 “ 정말 호텔 건설을 포기한 것이냐”는 기자들 질문에 “현재로서는 호텔 건립 계획이 없다”는 녹음기 틀어놓은 듯한 대답을 반복했습니다.

이런 답변은 향후 상황이 바뀌면 호텔 건립을 다시 추진할 수도 있다는 해석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리고 기자회견 뒤 접촉해 온 대한항공 측 인사는 “호텔 건립 ‘포기’라는 표현만은 쓰지 말아달라”고 부탁해 왔습니다. “그럼 왜 기자회견 때 포기가 아니라고 밝히지 않느냐”는 저의 반문에 대해서 또 다른 임원은 “우리 선에서 할 수 있는 게 딱 거기까지다”라고 말했습니다. 임원도 함부로 ‘포기’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은 결국 2천 9백억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매입한 서울 시내 한복판의 금싸라기 땅에 7성급 호텔을 짓겠다는 야심한 계획을 추진해 온 조양호 회장 등 대한항공 오너일가가 아직 호텔 건설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대목입니다.

그럼 왜 대한항공은 이 땅에 복합문화 공간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내놨을까요?

● 이해타산이 맞아 떨어진 문체부와 대한항공

문체부가 그 동안 한 번도 거론되지 않았던 경복궁 옆 대한항공 부지의 복합문화 공간 개발 계획을 갑작스레 문화융성 계획에 포함시킨 배경은 몇 가지 설명이 필요해 보입니다.

우선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이라는 좀처럼 정확히 설명하기 쉽지 않은 개념을 국정과제의 두 축으로 삼은 박근혜 대통령이 거듭 문화융성을 강조하자, 뭔가 가시적이고 새로운 내용이 필요했던 문체부가 대한항공 땅을 문화융성 거점으로 개발하는 전략적 접근을 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다 무게가 실리는 것은 어떻게든 이 땅의 개발 가능성을 열어 놓고 싶은 대한항공과 문화융성 정책 외에도 ‘관광진흥법 개정안 처리’라는 또 다른 숙원을 풀려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이해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입니다.

당초 대한항공의 경복궁 옆 땅을 두고 재벌 특혜 논란이 불거진 배경에는 법을 바꿔 호텔 건설을 가능하게 해 주려던 문체부와 여당의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대한항공 송현동 부지는 덕성여중.고와 풍문여고 등 3개 학교가 있어 호텔 건설이 원칙적으로 금지된 학교 위생 정화구역으로 묶여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 여당이 청소년에게 유해한 향락시설이 없는 100실 이상의 관광호텔을 짓도록 해 주자는 관광진흥법 개정안을 지난 해부터 꾸준히 추진해 왔고 이는 대한항공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논란을 제기됐습니다.

문체부는 밀려드는 요우커 등 외국인 관광객들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지금도 1만실 이상 부족한 호텔 객실을 대폭 늘려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호텔 건설 규제를 완화하는 관광진흥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논리를 대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송에서 진 뒤 헌법소원까지 내며 호텔 건립 의지를 보여온 대한항공이 법 개정의 대표적 수혜자가 되면서 관광진흥법은 ‘대한항공 특혜법’으로 불리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국민 감정상 설득이 쉽지 않은 재벌 특혜 논란을 피하면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문체부나 대한항공 모두 호텔 건립 논란에 대한 우회로가 필요한 상황이었던 것이죠.

● 관광진흥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문체부와 여당은 이제 대한항공이 특혜논란을 빚어 온 호텔 건립 대신 복합문화 공간을 짓기로 했으니 학교 정화 구역 내에 100실 이상 호텔 건설을 허용하는 관광진흥법 개정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또 실제로 법안처리에 탄력이 붙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요 며칠 간의 상황변화를 이유로 관광진흥법이 개정되면 대한항공의 입장에서 경복궁 옆 송현동 땅에 호텔 건설을 위한 법적 걸림돌은 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단지 복합문화 공간을 만들겠다던 이번 발표를 뒤집는 데 대한 도의적 비난만 감수하면 호텔 건립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가 되고 맙니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대한항공 측이 복합문화 공간 조성 계획을 발표하면서도 끝까지 “호텔 포기”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는 합리적 추론은 무리일까요?

실제 대한항공의 발표 내용을 되짚어 보면 복합문화 공간을 만들겠다는 큰 제목 외에 무슨 시설과 내용을 채워 넣을 지 구체적 계획은 하나도 없는 설익은 상태였습니다. 더구나 배포한 동영상에서 밝힌 공간의 설계 외형을 보면 전통문화를 활용한 기와지붕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추후 상황 변화에 따라 약간의 설계만 바꾸고 리모델링을 하면 얼마든지 대한항공이 강조해 온 7성급 한옥호텔의 상부구조가 될 수도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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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항공이 공개한 복합문화시설 기와지붕 모양

대한항공은 복합문화 공간의 1단계 공사를 2017년 안에 끝내겠다고 밝혔지만 2017년 이후의 복합문화공간에 대한 청사진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습니다. 2017년 말이면 정권 말기에다 다음 대선이 치러지는 시점입니다. ‘문화융성’이라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가 다음 정부로 이어질 수 있을 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정치 상황의 변화를 지켜본 뒤 예정된 문화시설 건립을 이어갈 지, 아니면 오너의 숙원을 풀기 위한 호텔 건립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또다른 선택지를 남겨 놓겠다는 해석도 가능한 부분입니다.

송현동 땅에 대한 복합문화 공간 조성 계획을 문체부와 대한항공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혹은 꿩 먹고 알 먹는 묘수라고 판단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호텔객실도 필요하고 문화융성을 위한 투자도 필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에 없던 개발계획을 추가해 가면서 특혜 논란을 빚어 온 대한항공 부지에 개발의 첫 삽을 가능케 하는 상황은 핵심국정 과제인 문화융성 정책이 재벌의 이해에 따라 내용이 왔다 갔다 할 정도로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논란을 낳을 수도 있어 보입니다.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해묵은 속담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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