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조상 땅 되찾아 독립유공자 후손 장학재단 설립하고파"

친일파 재산은 환수하면서, 독립유공자 빼앗긴 땅엔 무관심

[취재파일] "조상 땅 되찾아 독립유공자 후손 장학재단 설립하고파"
경북 안동 태생의 고 김세동(1870~1942) 지사는 1905년 을사늑약 체결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고, 일제 강점기 독립군자금 모집책으로 활동하다가 1919년 일제에 붙잡혔습니다. 징역 1년6월형을 살았습니다. 항일 독립운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광복절 50주년인 1995년 8월15일 정부로부터 애국훈장 건국장을 받았습니다.

김세동 지사 집안은 경북 안동의 유명한 독립운동 가문으로, 강원도 태백에 제법 넓은 임야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증손자 김용훈 씨의 주장으로는 현 공시지가로 1200억 원 정도 (2008년 국회 검토보고서상 추계는 722억원 정도)라고 하니 엄청난 면적임에 틀림없습니다.

증손자 김용훈 씨의 증언. 

"증조부(고 김세동 지사)는 일제시대 독립군자금을 모은 혐의로 징역을 살았습니다. 감옥에 가 있는 동안 일제 조선총독부의 임야조사가 시작됐는데, 우리 집안이 소유하고 있던 강원도 태백 임야의 소유가 국가로 넘어갔습니다. 증조부가 감옥에 계신 동안 집안의 재산이 독립자금으로 쓰일 것을 우려해 일제가 빼앗아 간 게 분명합니다."

김용훈 씨가 소유권을 주장하는 강원도 태백 일대 임야는 무려 천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걸로 추정됩니다. 그 재산이 처음 김씨 가문에 넘어왔음을 증명하는 증거로 김 씨는 조선 헌종 때 받은 사패(고려ㆍ조선 시대에, 공신에게 나라에서 산림, 토지, 노비 따위를 내려주며 그 소유에 관한 문서를 주던 일 또는 그 문서) 영인본(사본)을 제시합니다. 일제시대에 강원지사가 해당 사패 문서가 위조됐다며 김 지사를 고발했는데, 당시 검찰은 위조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결론냈다고도 김용훈 씨는 증언합니다.

이번에 새누리당 홍문표 의원이 발의한 독립유공자 피탈 재산의 회복 및 보상에 관한 특별법안은, 고 김세동 지사처럼 일제에 빼앗긴 독립유공자의 재산을 되찾아 주자는 취지로 발의됐습니다. 여야 원내대표를 비롯해 여야 의원 21명이 동참했습니다. 친일반민족 행위자의 재산을 국고로 환수하는 법은 이미 특별법으로 만들어져 실제로 이행돼 온 데 반해 독립유공자가 빼앗긴 재산을 되찾아주는 법은 아직 마련되지 않아 광복 70주년을 계기로 바로잡자는 겁니다.

해당 법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독립유공자의 피탈재산 회복과 관련한 재판에 민사 시효를 없애기로 했습니다. 통상 재산권은 10년~20년의 민사 시효를 가지는데 시효와 상관없이 법정에서 옛 재산 소유권을 다툴 수 있도록 한 겁니다. 

둘째, 독립유공자의 피탈 재산으로 결정된 때에는 국가기관 등 공공기관은 재산권 회복을 결정하되, 제3자 소유로 된 때에는 국가가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주도록 했습니다. 쉽게 말해 빼앗긴 땅이 국유지라면 그걸 되돌려주고, 민간인에게 매각된 상태라면 공시지가에 해당하는 금액을 보상해주자는 겁니다.

사실 이 법안이 이번에 처음 발의된 것은 아닙니다. 17대와 18대 국회에도 발의됐고, 18대 국회 때는 상임위(정무위) 법안소위에서 나름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결국 결론을 내지 못한 채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되고 말았습니다.

18대 국회 논의 과정을 보면 정부는 해당 법안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습니다. 우선 민사 시효를 배제하는 문제에 대해 법무부는 위헌 가능성을 들어 난색을 표했습니다. 기획재정부는 피탈 재산 여부에 대한 객관적인 증빙 곤란, 법적 안정성 훼손 문제를 들었습니다. 보상을 해줘야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들도 재원 문제로 어려움을 호소했습니다. 

국회 정무위 전문위원도 ▲ 보상의 형평성 문제 ▲ 보상의 원칙에 관한 문제 ▲ 재원 문제 등을 이유로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쳤습니다. 생명을 잃은 독립유공자, 재산을 스스로 처분해 군자금 등으로 헌납한 독립유공자, 일제에 재산을 수탈당한 일반 국민과의 형평성을 주장했고, 거의 100년 가까이 지난 재산권을 입증하는 문제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점도 이유로 제시했습니다.

사정이 달라지지 않는 한 정부의 입장은 이번 법안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쪽일 가능성이 큽니다. 입증의 어려움, 형평성 문제, 법적 안정성, 재원 문제 등 정부의 우려도 가볍게 볼 사안은 아닙니다.

김세동 지사의 후손 김용훈씨는 다만 SBS와 인터뷰 과정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피탈 재산을 되돌려받으면 독립유공자의 후손들을 위한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싶습니다. 지금 대다수 독립유공자의 후손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장학금으로 혜택을 돌려준다면 돌아가신 유공자들께서도 만족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김용훈씨는 "재산 환수가 어렵다면, 그에 상응하는 장학재단을 정부가 만들어준다면 받아들일 용의가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소유권을 완전히 되찾지 못하더라도 일정 규모의 독립유공자 후손을 위한 장학재단만 설립해주는 것도 수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광복 70주년인 올해, 19대 국회의 임기는 내년 5월까지 1년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연말부터 총선 정국으로 접어듦을 감안하면 사실상 이번 정기국회가 마지막 기회입니다. 국회와 정부가 독립 유공자들의 후손을 위해 타협의 결실을 거두기를 기대해봅니다.

▶ "일제에 빼앗긴 독립유공자 재산 보상" 법안 발의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