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3일 새벽, 서울 강남구 역삼역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페라리를 벤틀리가 들이받았습니다. 작정하고 달려든 듯, 상당한 고속으로 들이받아 페라리는 뒤편이 완전히 빠그라졌습니다. 사고 충격으로 페라리는 앞서 있던 택시까지 추돌했습니다. 사고를 낸 벤틀리 운전자는 차에서 내려 되레 언성을 높이며 경찰에 신고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사고를 당한 페라리 운전자는 당황했습니다. 사고를 낸 사람이 자신의 아내였기 때문입니다.
● 사랑과 전쟁
경찰이 전해 준 그날 밤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28살 이모 씨는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아내의 걱정에도 집에 들어오지 않던 남편 37살 박모 씨는 급기야 전화를 받지 않기에 이릅니다. 아내 이 씨는 지인과 술을 마셨고, 혈중알코올농도 0.115%의 만취 상태에서 남편이 사준 차를 몰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남편을 찾으러 나선 겁니다.
자주 가던 술집에서 차를 몰고 나오는 남편을 본 이 씨는 분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국내에 몇 대 없는 차라 남편이 틀림없었습니다. 눈에서 불똥이 튄 아내 이씨, 가속 페달을 있는 힘껏 밟아 신호대기 중이던 남편의 차 뒤를 그대로 들이받아 받아버립니다.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한 지 석 달 만의 일이었습니다.
● 거짓말
박 씨가 탄 차는 이탈리아 종마라 불리는 페라리, 최고급 '슈퍼카' 중 하나입니다. 이런 페라리를 타고 신호를 기다리는데 누가 차를 몰고 전속력으로 들이받았습니다. 운전자는 아내였고 술 냄새가 심하게 납니다. 이런 날벼락이 없습니다. 박 씨는 '이게 얼마짜린데 사고를 내느냐.'며 물었습니다. 부인 이 씨는 격분하며 따졌습니다. '그게 뭐가 중요하냐. 당신이 약속을 어기고 유흥업소에 가지 않았느냐. 죽여버리겠다.' 부부싸움은 한동안 이어졌습니다.
사고도 사고지만 박 씨는 틀림없이 천문학적인 액수로 책정될 수리비가 아득했습니다. 페라리는 엔진이 뒤쪽에 달려있어 더 걱정이었습니다. 경찰은 실제로 차 2대의 수리비를 약 3억3천만 원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일단 아내를 진정시킨 박 씨는 사고를 단순 실수로 위장해 보험료를 타내려고 했습니다. 같이 운전해 가다가 실수로 추돌사고가 난 거라고 입을 맞춘 겁니다. 사고가 난 지 1시간 만에 "일행이 따라오다가 운전미숙으로 추돌했다"고 보험접수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 협박범
아닌 밤중에 사고를 당한 택시기사 45살 김모 씨는 자신이 들이받힌 차들의 "억!" 소리나는 자태에도 놀랐겠지만, 사고를 내고도 당당한 젊은 여자의 적반하장 태도에도 놀랐을 겁니다. 여자의 요구대로 일단 경찰에 신고한 김 씨는 길가에서 한참을 다투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습니다. 두 사람은 부부였고, 부부 싸움을 하고 있고, 아내는 술을 마셨으며 남편을 '죽여버리겠다.'라고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출동한 경찰의 안내에 따라 경찰서 주차장까지 온 김 씨는 페라리 차주인 박 씨와 넌지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김 씨는 기어코 맨입으로 입을 다물어 줄 수 없었습니다. 김 씨는 합의금과 수리비 명목으로 3천만 원을 넌지시 요구했습니다. '이런 사고에 1억 원 까지도 오간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정도면 싸게 친 거다.' 고의사고가 얼마나 무서운 범죄인지를 얘기하며 공갈했습니다. '이건 살인미수로 처리된다.'
처벌도 두렵고 수리비도 두려웠던 박 씨는 그 와중에도 에누리해서 합의금 2,200만 원에 수리비 500만 원으로 '딜'을 했습니다.
● 덜미를 잡히다
이들의 짬짜미는 택시기사가 다치지도 않았는데 지나치게 많은 합의금을 받은 것을 의심한 경찰에 의해 들통 났습니다. 택시는 뒤범퍼가 조금 손상됐고 택시 기사는 입원도 하지 않고 곧 멀쩡히 영업을 시작했는데 수천만 원의 합의금이 오갔던 겁니다. 경찰은 통상 이런 경우 5백만 원 안팎이 오간다고 봤습니다.
결국, 남편과 아내가 사고가 나기까지 통화 내역이 없었던 점에서 덜미가 잡혔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밖에서 만나 같이 운전해 가던 중이라고 주장했지만 둘 사이에 한동안 통화가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 들통 난 겁니다. 추궁 끝에 이들은 거짓말을 자백했습니다.
아내 이 씨는 음주 운전으로 형사입건됐을 뿐만 아니라 위험한 도구인 차를 이용해 사람을 폭행한 혐의로 입건됐습니다. 돈을 받은 택시기사에 대해서는 공갈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남편 박 씨에 대해서는 법을 적용할 만한 증거가 충분치 않아 입건하지 않았습니다.
● 젊은 부부
박 씨는 경찰서 주차장에서 택시기사와 합의하면서 2백만 원을 수중에서 꺼내 주고 2천200만 원을 계좌로 부쳤습니다. 박 씨의 차 페라리 F12 베를리네타 모델은 판매가 5억 원, 중고로 살 때도 3억6천만 원을 줬다고 합니다. 아내에게 선물해준 벤틀리 컨티넨탈 GT의 가격도 약 2~3억 원 대. 이 차들의 명목상 소유는 복잡하지만 실제로 박 씨가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억!"소리 나는 슈퍼카로 시내 한가운데서 범퍼카 놀이를 한 이 사람들은 뭘 하는 사람들이었을까요?
경찰은 박 씨의 수입이 범죄와 연관돼 있는지를 수사하고 있습니다. 남편 박 씨는 처음 경찰 조사에서 자신이 자동차 매매상 딜러이며 강남에서 부동산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경찰이 조사를 계속하다 보니 지금은 하는 일이 없고 범죄와 연관된 송사에도 얽혀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3억원, 누군가는 평생을 땀 흘려 일해도 모으기 어려운 가격의 차입니다. 20대에 이런 차를 끌고 다니면 세상이 쉬워보일까요? 하지만 두 사람이 이번 일의 대가를 치르는 것은 쉽지만은 않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