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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그놈 목소리에 진짜 선수들은 없다

[취재파일] 그놈 목소리에 진짜 선수들은 없다
보이스피싱, 즉 전화 금융사기범들의 실제 목소리가 공개됐습니다. 금융감독원과 경찰청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보이스피싱 지킴이 홈페이지에 가면 <그놈 목소리>란 코너가 있습니다. 여기에 21개 음성 파일이 있는데, 모두 전화 금융사기범들의 목소립니다. 금융당국은 실제 녹취 내용을 국민들이 한번 들어보면, 이런 사기 전화가 왔을 때 반사적으로 알아차리고 속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사기범의 전화를 녹음해 신고할 수 있는 코너도 마련했습니다. 녹음·신고하는 분들께는 소정의 사은품도 드린다고 합니다. 관심을 유도하고, 또 새로운 수법이 등장하면 공유해서 대비하자는 것이니 취지는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21개 녹취 파일을 하나하나 듣다 보면 보이스피싱 수법의 큰 틀이 변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먼저 검찰이나 경찰, 금융감독원을 사칭합니다. 그리고 '최근에 거대한 금융사기 조직을 적발했는데 당신이 거기에 연루된 증거가 나왔다'고 겁을 줍니다. 그러니 '조사를 해야겠다거나 안전조치를 취해야 한다'면서 개인정보를 요구하고 결국은 돈을 빼가는 거죠. 대부분 이런 패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번에 공개된 <그놈 목소리>들이 그저 그렇다는 겁니다. 말투가 어눌하거나 장황하고, 논리적이지 못해 대부분의 사람이 듣는 순간 '사기'라는 걸 눈치챌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이없는 대화도 있고 실소가 터지는 대목도 있습니다. 한 사례를 보실까요?

사기범 : 지금 A은행하고 B은행 계좌가 발견돼서 조사를 해야 하는데요.
시민 : 네? 제가 A은행 직원인데요.
사기범: 뭐라고요?
시민 : 제가  A 은행 직원이라고요. (장난이 아니라 실제 직원이랍니다.)
사기범: 아 그래요? (체념한 듯 태도 돌변) 잘났다. 끊어!!!

또 심지어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사기범 : 000 님 이시죠? 저는 000라고 하는데요.
시민 : 당신 혹시 며칠 전에도 나한테 사기 전화한 사람 아냐?
사기범 : 아~~~! (뒤늦게 생각난 듯)
시민 : 어떻게 또 전화하냐??
사기범 : 네.. 그만 둘게요.

왜 이런 서투른 사기범들의 목소리가 많을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서투르기 때문에 전화 받는 사람들이 사기라는 걸 직감하게 되고 증거를 남기려고 녹음버튼을 누르기도 쉬운 겁니다. 그래서 자료도 많지요. 반면에 진짜 선수들, 꾼들의 목소리는 별로 없습니다. 진짜 선수들에게 당하는 사람들은 이게 사기라는 걸 느끼지 못하니까 녹음할 정신도 없는 겁니다. 이번에 공개된 <그놈 목소리>가 가진 한계라고도 할 수 있겠죠.

결국 최신 수법은 말로 설명하고 조심하시라고 말씀드리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1. 상황극에 주의하십시오.

당신이 거래하는 00은행 직원이라면서 전화를 겁니다. 은행 객장을 연상시키는 소리들, 도장을 찍거나, 순서를 알리는 종이 울리거나, 고객을 부르는 소리 등을 치밀하게 깔아놓고 "당신 신분증으로 누가 돈을 찾아가려 한다. 경찰에 신고해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경찰이란 자가 전화를 겁니다. 물론 타이핑 소리나 동료 형사를 부르는 소리 같은 배경음을 준비한 상태에서 말이죠. 그리고는 범인을 잡기 위해 거래 내역을 추적해야 한다면서 '사기 작업'을 시작하는 방식입니다. 2단계 3단계 거치면서 의심을 풀도록 하는 겁니다.

2. 보이스피싱 + 피싱사이트가 결합하고 있습니다.

전화를 걸어 범죄 연관 운운하는 건 전형적인 수법과 같은데 안전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검찰청 사이트로 유인한 뒤 정보를 빼내는 수법입니다. 범인들이 불러준 사이트는 검찰청 사이트처럼 생겼지만 실제는 피싱사이트, 가짜 사이트입니다. 피해자 입장에선 개인정보가 암호화 처리되니까 직접 불러주는 것보단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범인들은 다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3. '돈을 찾아서 보관하라'도 의심해야 합니다.

당신 계좌가 위험한 상태니 잔액을 얼른 찾으라고 말합니다. 피해자 입장에선 개인정보를 불러준 것도 없고 내 돈 내가 찾아온 것이고, 돈이 나가지도 않았으니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범인들은 피해자가 돈을 어디에 두는지 확인한 다음 그걸 훔쳐갈 수 있습니다.

피싱에 누가 당하나 싶으시죠? 하지만 매년 피해액과 피해자 수는 늘고 있습니다. 내게 갑자기 닥치면 판단이 잘 안 될 수 있습니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고, 그래도 헷갈리면 경찰(112)이나 금융당국(1332)에 도움을 청하시는 게 안전합니다. 

▶ 피싱 사기범 '그놈 목소리' 공개…"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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