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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메르스 걸리면 공짜?"…논란의 메르스 안심보험

[취재파일] "메르스 걸리면 공짜?"…논란의 메르스 안심보험
저는 아침마다 그 날 하루의 뉴스를 미리 정리해 보내주는 SNS 서비스의 알림음에 눈을 뜨곤 합니다. 요즘은 누구나 그렇듯 메르스 환자가 몇 명이나 더 늘었는지, 어느 지역으로 퍼져 나갔는지가 가장 큰 관심사라 눈길이 가더군요. 그만큼 이 생소한 아라비아 반도의 괴질은 시민들을 지배하고 위축시키는 일상의 공포가 돼 버렸습니다. 사는 사람들이 이 정도인데, 여행객들은 오죽하겠습니까?

● 메르스 직격탄 맞은 관광업계

지난 주말 이미 한국 관광을 취소한 여행객이 10만명을 넘어섰고, 메르스 확산 추세가 좀처럼 멈추지 않으면서 성수기인 7~8월에도 심각한 영향이 우려되는 수준입니다. 문체부 김 종 2차관은 “중국 쪽의 영향이 심각하다. 여행취소도 문제지만, 중국에서 한국 방문 비자발급 건수가 평소의 30% 수준으로 급감했다고 한다”고 상황의 엄중함을 설명했습니다. 특히 다음 달 열리는 광주 유니버시아드 대회는 이대로 사태가 지속된다면 큰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문체부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는 아예 선수단 파견을 취소하기로 했고, 북한도 아직까지 선수단 및 응원단 파견과 관련해 명단을 보내오지 않고 있어 불참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북한은 정치적 변수도 있고 하니 그렇다 치고 메르스 발병의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선수단의 한국파견을 취소할 정도라면 외국인들이 느끼는 한국의 메르스 사태에 심리적 공포감이 어느 정도인지를 미루어 짐작해 볼 만 합니다.

● 급박한 정부 대책…”메르스 안심 보험” 내놓겠다.

상황이 이 지경이니 정부 입장에서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문체부는 15일 긴급 브리핑을 통해 메르스 사태로 타격을 입고 있는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한 여러 대책들을 내놨습니다. 관광객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관광업계에 대한 금융지원 강화와 위생관리 강화 같은 예상 가능한 대책들과 함께 관심이 집중된 것은 이른바 ‘외국인 관광객 메르스 안심 보험’이었습니다. 오는 22일부터 1년간 한국을 찾는 모든 해외 관광객을 대상으로 입국과 동시에 자동으로 가입되고, 감염되면 3천만원, 사망 시 1억원까지 보상하는 보험 상품을 설계해 시행하겠다는 게 핵심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메르스 안심 보험’인 셈입니다.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문체부는 여행객은 별도의 절차없이 자동가입되니 편하고 혹시라도 메르스 감염되면 보상까지 받는 보험을 정부가 대신 들어 주겠다는 것인데, ‘한국 정부가 이렇게까지 보장을 하고 있으니 안심하고 여행 오시라는 프로모션의 성격’이라고 부연했습니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별로 손해볼 게 없는 데다, 회사 광고까지 되니 몇몇 회사들이 관심을 갖고 실제로 상품 개발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고요.

● 쏟아지는 비난들…”메르스 공화국 광고하나”

하지만 이런 ‘메르스 안심 보험’과 관련된 내용이 기사화되자, SNS 상에서는 엄청난 질타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예 메르스 공화국이라고 광고를 해라”라는 조롱부터 “천박한 대응”,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는 비판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누리꾼은 “차라리 외국인이고 싶다”며 사태 초기 안일한 대응으로 자국민은 10여명의 사망자까지 발생하고 격리자가 수 천명에 달하도록 일을 키운 정부가 혈세를 동원해 외국인에게는 대신 보험까지 들어주는 성의를 보이는 데 대해 허탈함과 배신감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정부의 다급함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명동 거리를 뒤덮었던 중국인 관광객들의 만다린 억양이 끊기고 관광업계 전체가 카운터 펀치를 맞은 권투선수처럼 휘청이고 있으니 뭐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기도 했을 겁니다.

하지만 메르스 안심보험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 여전히 돌팔이 의사를 보는 듯한 찜찜함을 지울 수 없습니다. 메르스 사태로 인한 관광업계의 타격을 만회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사태의 조기종식과 추가확산 방지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근본적인 처방에는 미숙함과 불투명함을 지속적으로 노정하면서 ‘걸리면 돈으로 보상해 줄 테니 관광은 오라’는 식의 싼 티 나는 대증요법이 먹힐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 입장 바꿔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외국인이라면…

아무리 좋게 설명하더라도 ‘한국에서 메르스에 걸리면 보험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는 조치는 질병 발생 이후 사후 조치에 불과합니다. 입장 바꿔 생각해 봅시다. 저는 지난 2011년부터 지난 해 여름까지 이집트 카이로에서 중동 특파원으로 일했습니다. 시민혁명 이후 정정불안으로 테러와 납치가 잇따랐고, 실제로 제가 일하는 동안 이집트 시나이 반도에서는 한국인 관광객들에 대한 납치와 폭탄테러로 안타까운 희생이 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정불안과 테러, 납치 등으로 관광산업이 위기를 맞고 있는 중동 어느 국가가 테러 당하면 보험으로 보상해 줄 테니 안심하고 관광오라 한다고 해서 그 나라로 여행갈 간 큰 여행객들이 몇 명이나 될까요? 이른 바 ‘메르스 안심 보험’도 외국인 관광객의 입장에서 보면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황당한 대책입니다.

시민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다시 여행객들로 거리가 활기를 되찾으려면 ‘내가 안심하고 돌아다녀도 되겠구나’라는 안전에 대한 신뢰, 정보에 대한 확신이 필요한 것 아닐까요?

● 양치기 소년이 된 정부…기본으로 돌아가야

이런 대응을 보면서 많은 분들이 다시 지난 해의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의 모습이 떠오른다고 말씀하십니다. 참사의 원인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아무런 대책도 없이 유족들에 대한 보상금 운운하며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하던 그 모습과 중동발 괴질의 확산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과 불신이 만연한 상황에서 근본적인 해답 없이 병 걸리면 돈으로 보상해 주겠다는 발상은 정부가 과거의 행태와 사고방식에서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관료들이 연일 시장과 극장과 야구장을 찾아가서 ‘괜찮으니 일상으로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던져도 시민들이 반응하지 않는 것도 양치기 소년에게 더 이상 속지 않는 양떼들 같이 돼 버린 ‘불신의 학습효과’ 때문 아닙니까?

답은 명확하고 간결합니다. 나에게 닥친 위험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가능성에 있는 위험에 대한 통제와 그에 대한 신뢰의 재구축입니다. 그것이 세월호 참사 같은 재난이건, 메르스 같은 질병이건 건강한 사회라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복원하고 안착시켜 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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