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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장관님의 전화는 구명(求命)일까? 항명(抗命)일까? 요청일까?

박명진 문화예술위원장 선임…인사권자는 책임을 잊지 말아야

[취재파일] 장관님의 전화는 구명(求命)일까? 항명(抗命)일까? 요청일까?
● 박명진 문화예술위원장 선임…문화예술계의 반발과 문체부의 반박

이번 정권에서 인사를 둘러싸고 잡음이 가장 컸던 부처를 꼽으라면 아마도 문화체육관광부가 아닐까 싶습니다. 전임 유진룡 장관 시절 벌어졌던 정윤회 파동과 인사개입 의혹을 포함해 산하, 소속 기관장 인사를 놓고 조용히 넘어갔던 사례가 몇이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바람 잘 날이 없었던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번엔 1천억원이 넘는 지원금을 문화예술인들에게 교부하는 권한을 지닌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선임을 놓고 또 잡음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박명진 전 서울대 부총장을 신임 문화예술위원장으로 임명했습니다. “‘강한 추진력’과 ‘통찰력’을 기반으로 문화예술분야 지원사업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문화예술 현장과 소통을 강화하는 등 문화예술계의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는 게 문체부가 밝힌 선임 이유입니다.

이미 여러 언론에 기사화 됐지만 지난 달 파행 속에 마무리된 서울연극제를 포함해 입맛에 맞지 않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에 대한 손보기 차원에서 지원사업을 운영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온 문화예술위원장 인사여서 안팎의 시선이 집중됐고 박명진 교수 선임 소식에 여기저기서 ‘그럴 줄 알았다’는 반발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문화예술계 내부에서는 박 신임 위원장이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박사학위 논문 지도교수로 사제지간이었다는 특수 관계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심과 함께 언론학자로 문화예술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점, 또 후보자 접수와 심사과정이 박 전 부총장의 선임을 염두에 두고 불공정하게 진행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물론 문체부는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 나름의 논리로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습니다. 박 교수는 김장관의 논문심사 교수 여러 명 중 한 명이었을 뿐이고, 과거 문화예술 관련 자문 활동과 저술활동을 활발히 해 왔으며, 최종 후보자 3명 중 적임자 1명을 장관이 임명하도록 한 법률에 따랐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 청와대로 걸려온 장관의 전화...정부 관계자 "청와대 검증라인 부적격 판정에 항의"

몇몇 정부 관계자들은 박명진 문화예술위원장 임명을 둘러싼 뒷얘기들을 제게 전해 줬습니다.

복수의 관계자들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박명진 교수를 포함한 최종 후보 3인을 골라 청와대에 보고했고 청와대 민정라인에서 이들 후보자들에 대한 인사검증 작업을 벌였다고 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문체부는 1순위로 박명진 교수를 후보에 올렸고 당연히 청와대의 인사검증도 박 교수의 과거 방송통신 심의위원회 위원장 시절 활동 등에 대해 집중됐다고 합니다. 당시 같이 근무했던 직원과 간부들을 포함해 광범위한 정보수집이 이뤄졌다고 합니다.
박명진
언론계에서는 박명진 신임 문화예술위원장을 문화예술 전문가보다는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이명박 정부 시절 방통심의위원장으로 보다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시 광우병 촛불집회 사태와 관련해서 MBC PD 수첩 ‘광우병’ 편, YTN 파업 과정에서 벌어진 블랙투쟁 등에 대한 중징계와 정권편향적 방송심의를 주도해 물의를 빚었고, 방통심의위 내부적으로는 사상 초유의 파업사태가 벌어지고 심의위원들 사이의 불협화음으로 논란을 빚다가 당시 여당 추천 위원들까지 동조해 결국 불신임을 당하고 중도에 물러나는 불명예를 겪었습니다.

이번 문화예술위원장 임명을 앞두고 박 교수의 이런 과거 경력과 조직 관리 능력에 대한 주변인사들과 정권 안팎의 부정적 평가들이 접수됐고 인사검증을 담당했던 청와대 민정라인은 박 교수가 문화예술위원장으로 부적격이라는 의견을 관련 인사 결정권자들에게 전달했다고 이 정부 관계자는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부적격 의견에 대해 김종덕 문체부 장관이 청와대 인사 검증 담당자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강력히 항의했고, 낙마할 뻔 했던 박명진 교수가 결과적으로 김 장관의 뜻대로 문화예술위원장에 임명됐다는 것입니다. 이 정부 관계자는 누구를 임명하라는 외압도 아니고 해당 기관장으로 업무를 적절히 수행할 수 있는 지를 평가하는 정당한 인사검증에 대해 장관이 강력히 반발하자 청와대 내부의 담당자들이 몹시 불쾌해 했다고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 장관님의 전화는 구명(求命)일까? 항명(抗命)일까? 요청일까?

이런 이야기를 전해듣고는 몇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우선 ‘정윤회씨 파문’에서 보듯 청와대가 일개 부처의 말단 과장 인사까지 좌지우지할 정도로 부당한 외압이 횡행하던 정부의 인사관행을 뒤집을 정도로 김종덕 장관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인지, 아무리 그렇다 해도 김장관이 자칫 ‘항명’으로 비칠 수도 있는 전화를 해 가면서 까지 박명진 교수를 문화예술위원장에 임명하려 했던 까닭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 완벽히 인사권을 장악한 기운센 장관님(?)

첫 번째 의문은 어느 정도 납득이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사실 김종덕 장관은 정윤회씨와 관련된 문체부 인사 외압 파문으로 유진룡 전 장관이 물러난 뒤에 임명됐습니다. 이 때문에 지난 해 하반기 국회에서 문체부 인사 외압 의혹이 집중적으로 거론됐을 때 자신의 취임 전에 벌어진 일들에 대해 해명하느라 진땀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인사 외압 논란이 오히려 김 장관에게는 득이 된 측면이 적지 않았습니다. 우선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청와대의 인사 개입이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줄어들었고 김종덕 장관의 인사 권한이 대폭 확대됐다는 평가들이 여기저기서 나왔습니다. 이후 문체부 1급 실국장 인사를 포함해 1급 실장 가운데 가장 고시 기수가 낮았던 박민권 현 1차관을 발탁한 것도 김 장관의 작품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청와대 담당자들에게 걸려온 김 장관의 전화는 장관의 고유한 인사권을 존중해 달라는 어쩌면 있을 수 있는 요청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대목입니다.

2> 보은인사(?) 아니면 고르고 고른 최적의 인물(?)
문화체육괸광부 캡쳐
그런데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김 장관이 왜 ‘항명’으로 비칠 수도 있는 전화까지 해 가며 발벗고 나서서 박명진 교수를 문화예술위원장 자리에 앉히려고 했느냐는 점입니다.

가장 쉬운 추론은 문화예술계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것처럼 김 장관이 자신의 박사논문 지도교수였던 은사인 박명진 위원장에 대한 보은인사라는 주장입니다. 문체부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여러 지도교수 중 한 명일 뿐이었다며 김 장관과 박명진 위원장 임명 사이에 무슨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김장관의 항의 전화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또 하나의 가정은 박명진 교수가 청와대 인사 검증 담당자들이 미처 알아채지 못한 특출한 업무능력을 갖고 있어 온갖 파열음을 만들어 내고 있는 문화예술위원회의 난맥상을 바로 잡을 둘도 없는 인물이라는 강한 믿음을 김 장관이 갖고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아직 제대로 업무를 시작하지도 않았으니 박명진 신임 문화예술위원장이 그런 능력이 있는 지는 평가가 이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 인사 검증 과정에서 부적격 판정을 내린 결정적 요인 중 하나가 과거 방통심의위원장 시절 현 집권세력인 여당 추천 인사들과도 마찰을 빚을 정도로 불통의 리더십이었던 점으로 미뤄볼 때 문체부 설명처럼 강한 ‘추진력’과 ‘통찰력’으로 문화예술계의 난맥상을 헤쳐 나갈 인물인 지 의구심을 갖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과거 과도한 정치심의, 보수편향성 등으로 방송통신심의 과정에서 불공정성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으로 국민들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했다는 거센 비판에 직면했던 박명진 신임 위원장의 성향으로 볼 때 ‘말 안듣는 놈 손보기 차원’으로 진행된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문화예술위원회의 편향성이 더 강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갖는 게 당연해 보입니다.

● 논란속 임명…막중해진 인사권자의 책임

여하튼 이미 박명진 교수는 문화예술위원장에 임명됐습니다. 물론 여러 우려들을 뒤로 하고 잘했으면 합니다만 이후 문화예술위원회 활동과 관련해 벌어지는 마찰과 불협화음, 그리고 그로 인한 가늠하기 힘든 문화예술계의 손실이 발생한다면 박명진 위원장은 물론이고 청와대 인사 담당자들의 ‘부적격’ 의견을 뒤집어가면서 까지 박명진 카드를 밀어부친 김종덕 장관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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