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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독소조항 시행령 바로잡겠다"던 박 대통령의 변신

▲ 지난 2005년 5월 14일 상임운영위원회 발언 영상

● 설전에 사퇴요구까지…난타전 벌어진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

각 정당은 오전마다 회의를 합니다. 주요 당직을 가지고 있는 의원들이 자신의 정견을 펼치는데, 그날 정치부 기사의 주요 주제가 됩니다. 이런 발언들은 대게 여당 야당 갈려서 공격하는 경우는 있어도 아군을 공격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게다가 앞서 발언한 사람의 말을 맞받아 치는 경우는 더욱 드뭅니다.

어제(4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메르스 사태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여야 비방이나 정치공세를 자제하자"는 김무성 대표의 발언으로 말싸움이 벌어지는 드문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당내 최다선이자 친박계의 큰형님이라고 할 수 있는 서청원 최고위원이 정치공세 금지령에 발끈한 것입니다. 서 최고위원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싸움을 일으키는 사람이라고 나무라지 말라"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의외의 난타전을 어떻게 봐야할지 기자들도 당황하고 있는 사이 김태호 최고가 공격에 뛰어들었습니다. 김 최고위원은 "말 하나에 오해를 할 정도로 감정의 골이 있는 것이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청와대가 당정청을 사실상 보이콧했다"며, "유승민 원내대표 체제를 청와대가 받아들일 수 없다는 해석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습니다.

김 최고위원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정치는 책임지는 모습이 필요하다"며 "이번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용기 있는 결단으로 결자해지해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김 최고위원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는 유승민 원내대표에게 사실상 물러나라고 대놓고 내지른 것입니다. 국회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여당에서 찾아보기 어렵던 난타전 회의가 펼쳐졌던 것입니다.

● "국정은 마비상태가 되고 정부는 무기력화"…아른거리는 거부권 그림자

여당 내부가 이런 전쟁 상태로 빠져든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한 발언 때문입니다. 박 대통령은 공무원연금개혁과 연계해서 여야가 합의했던 국회법 개정안에 불만이 컸습니다. 행정입법을 국회가 합의하면 수정, 변경을 요구할 수 있게 국회법을 바꿨는데, 박 대통령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박 대통령은 "공무원연금과 관계없는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문제를 연계시켜서 위헌 논란을 가져오는 국회법까지 개정했는데, 이것은 정부의 기능이 마비될 우려가 있어서 걱정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가뜩이나 민생법안, 경제 살리기 법안도 통과 안 되는 상황에서 "정부의 시행령까지 국회가 번번이 수정을 요구하면, 정부의 정책 추진은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간다"고 주장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국정은 마비상태가 되고 정부는 무기력화 될 것"이라며 "이번 국회법 개정안은 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단호하게 밝혔습니다. 박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정치적인 최강수인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 10년 전에는 "독소조항이 들어간 시행령을 바로잡기 위해 강력 대처"

하지만 행정입법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생각은 10년 전에는 지금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지난 2005년 당시 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상임운영위원회에서 했던 발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당시 신문법 시행령 개정안을 두고 여야가 대치상태였는데, 논란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시행령에 신문발전기금의 우선 지원 대상으로 독자권익위원회 운영, 편집위원회 마련, 연간 평균 광고 지면이 50%를 넘지 않는 경우 등을 명시하면서 불거졌습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법률과 행정입법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명확하게 드러냈습니다.
 
= 어제 문광위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문제제기를 했습니다만, 신문법 시행령에 대해서 문광위에서 시행령을 만들면서 우리 한나라당이 신문법 개정안과 관련해서 독소조항이라고 반대해서 삭제됐던 조항을 버젓이 시행령에 넣어놨습니다. 이것은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는 어이없는 일입니다. 편집위원회 구성을 자율에 맡기는 법정신을 무시한 것은 경영권 침해도 되는 것이고 편집위원회 구성을 해야만 광고 지면이 50% 이하인 곳에만 우선 기금을 주는 것은 명백히 언론자유 침해입니다. 한나라당에서는 독소조항이 들어간 시행령을 바로 잡기 위해서 강력히 대처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 해당 영상 보러가기

이 발언은 정부부처가 시행령이라는 행정입법을 통해서 법에서 삭제했던 독소조항을 마음대로 집어넣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더 나아가 이런 문제의 시행령은 국회에서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됩니다.

● 더 강력한 국회법 개정안에 찬성했던 박 대통령
[취재파일] 김수형

박 대통령의 생각은 지난 1998년에 발의됐던 법안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당시 안상수 의원(현 창원시장)이 발의한 국회법 개정안이 있는데(15대 국회 회기가 끝나면서 폐기됐습니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국회법 개정안보다 더 강력합니다.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대통령령 등 행정입법이 법률에 배치되거나 법률의 위임범위를 일탈한다는 등의 의견이 제시된 때에는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이에 따라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제 98조의2 ③) 수정 변경을 요구하는 수준이 아니라 의견만 제시되면 부처 장관은 정당한 이유 없이는 따라야하는 강력한 내용이었습니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15대 국회에 처음 들어간 박 대통령이 서명만 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런데 국회법은 79조에 <10인 이상의 찬성으로 의안을 발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단순히 서명만 한 것이라는 해명은 궁색해보입니다. 박 대통령의 찬성이 법안 발의 요건이 됐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 의회주의자였던 박 대통령의 변신을 어떻게 이해해야하나

박근혜 대통령은 오랜 의정 활동을 토대로 누구보다도 국회 의정 시스템을 잘 이해하는 정치인으로 평가받습니다. 고비마다 위기에 빠진 당을 구했고,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새누리당에는 아직까지 깊게 각인돼 있습니다. 그런 박 대통령의 과거 발언과 찬성한 법안을 통해서 보면 의회를 통한 행정 통제는 정치적인 철학으로 해석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이번 사안에 대해 거부권이라는 정치적인 승부수를 던지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승부수가 실제 던져진다면 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도 큰 지각 변동을 겪게 되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생각이 왜 변했는지 설명이 부족해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앞으로 여당 내부에서 타협점을 찾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의 생각이 왜 바뀌었는지에 대해 청와대도 적절한 설명을 제시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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