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잿더미에서 세계적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로 우리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축약해서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정작 대한민국하면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나 상징은 딱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현재 운용되고 있는 정부 부처의 심벌마크를 보면 왜 그런 지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현재 입법, 사법, 행정 등 3부를 대표하는 문양의 기본 배경은 무궁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원히 피고 또 피어서 지지 않는 꽃’으로 알려진 무궁화는 숱한 외침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민초들의 꺾이지 않는 생명력과 애환을 담은 민족의 상징이 되었고,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화이자, 정부 상징체계의 기본으로 자연스레 자리 잡아 왔습니다.
하지만 정부 부처의 상징 문양을 들여다보니 상황이 심각합니다.
● 단순한, 그러나 분명하고 뚜렷하게 각인되는 선진국의 상징 체계
위에서 보신 것 처럼 정부부처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중구난방이다 보니 해외에서 대한민국하면 떠오르는 게 뭐냐고 물어보면 요즘은 가장 많이 돌아오는 대답이 “삼성” “현대” “LG”같은 기업 브랜드들입니다. 국가의 정통성과 상징성이 민간 기업들의 이미지로 대체돼버리는 상황이 일반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최근 자체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3.5%가 정부 부처 22개의 상징물 가운데 아는 상징이 전혀 없다고 밝혔고, 22개 부처 상징 가운데 평균적으로 알고 있는 상징물의 수는 불과 0.52개였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없는 것만 못한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 같습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우리 정부도 이런 상징 체계를 대대적으로 정비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달부터 어떤 소재를 상징물로 할 것인가를 정하고 10월에 최종 안을 선정해 내년 3월부터 새롭게 통일된 정부 상징 문양을 각 부처에 적용해 나가겠다는 계획입니다. 작게는 신분증과 안내판, 깃발, 그게는 건물 현판과 표지만, 정부 문서 서식까지 새롭게 도안된 통합 상징 문양을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림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물론 아직 상징 문양이 무궁화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상징 문양이 정해지면 개별부처에서는 단일한 상징문양 아래 각 부처의 이름 등을 표기해 통일성을 기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문양을 정해질 지가 가장 큰 관심거리인데, 지금까지의 분위기로는 국민적으로 인식과 애착이 뿌리깊은 ‘무궁화’와 ‘태극’ 문양을 벗어나기가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국민들에 친근감 있어야 하고 한 눈에 우리 정부를 상징한다는 정서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지금까지 다른 정부에서도 국가 브랜드 위원회 같은 조직을 통해 비슷한 시도가 있어 왔지만 부처간 이견과 국민적 무관심 속에 이런 정부 통합 상징체계 정비는 대부분 용두사미가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번 논의 과정에서도 과거와 비슷한 부처 간 이견에다 ‘먹고 살기도 바쁜 데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애플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기업들은 자기만의 디자인과 상징체계로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생태계를 구축해 어마어마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고, 국가 이미지 자체도 교역과 관광에서 무시할 수 없는 중요 변수가 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언젠가는 한 번 손을 봐도 봐야할 일이라는 게 중론인 듯합니다. 더구나 시각디자인 전문가이자 디자인 학회장 출신인 김종덕 문체부 장관의 전문분야인 만큼 거창하게 시작했다 흐지부지됐던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수 십 년이 흐른 뒤에도 어디서라도 그 문양을 보고 대한민국을 떠올릴만한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들어 내길 기대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