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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영화계 사찰하나(?)…"경찰이 전화해 '도와줄 것 없느냐'"

10년만에 다시 집단행동에 나선 영화인들

13일 오전 프레스센터에 모인 60여개 영화인 단체들의 모임인 ‘표현의 자유 사수를 위한 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장에서는 어느 때보다 격앙된 발언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비전문가들이 앉아 가지고 표현의 자유를 억제한다든지 독립영화지원을 차별화한다든지 아니 모르면 가만히 있던지, 그게 아니면 좀 물러나던지 그랬으면 했어요. 이거 정말 부산영화제 위상이 베를린, 칸 세계 10대 영화제에 들 정도로 성장을 했는데 국제적으로 망신입니다.” <민병록/전주국제영화제 전 집행위원장>

“어떤 훌륭한 정책보다도 표현의 자유를 잃고서 영화의 진흥이나 발전은 있을 수 없다는 게 저희들의 아주 기본적인 인식입니다." <임창재/독립영화협회 이사장>

“현장 잘 모르는 그런 분들이 굉장히 영화계를 어떻게 보면 말아먹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에 대해서 영화계는 걱정과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고, 만약에 계속 이런 식으로 영화 진흥이 아닌 영화침체위원회로 간다면 저희 영화인들은 영진위 해체를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정윤철/영화감독조합 부대표>

● “영화계 손보기”… 저의가 의심되는 영화판 흔들기

영화인들이 직종을 불문하고 이렇게 기자회견을 열고 집단행동에 나선 것은 지난 2006년 스크린 쿼터 투쟁 이후 10년만입니다. 영화인들이 이렇게 화가 난 것은 연초부터 영화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상황들이 이른 바 고분고분하지 않은 ‘영화판 손보기’ 같은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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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여러 언론들을 통해 보도된 것 처럼 부산시는 영화제 운영상의 여러 문제점들을 거론하며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사퇴를 압박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계에서는 지난 해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세월호 관련 다큐 ‘다이빙벨’을 상영하지 말라는 서병수 부산시장의 요구를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독립성 침해 등을 이유로 거부한 데 대한 보복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진흥위원회까지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고 말았습니다.
사태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영화제에 출품하는 영화는 지금까지 극장 상영을 위해 반드시 받아야 하는 사전 등급 심의를 면제받아 왔습니다. 영화제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은 물론, 월드 프리미어, 즉 세계 최초 상영작 유치를 원활하게 해 경쟁력을 갖추게 하려는 제도적 장치였는 데, 영화진흥위원회가 갑자기 이런 면제 제도를 없애고 전부 사전 심의를 받게 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관련 제도가 완전히 변경될 때까지는 기존 방침 대로 심의를 면제해 줘야 하지만, 영진위는 명백한 이유없이 심의 면제 서류를 교부하지 않는 바람에 ‘으라차차 독립영화제’와 ‘영화아카데미 졸업영화제’ 등 몇몇 영화제는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등 파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심의 면제 서류를 발급하지 않은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영진위 관계자는 깊은 한 숨을 내쉬고는 새로 온 위원장이 행정 처리 절차를 잘 몰라서 생긴 헤프닝이라고 얼버무렸습니다.

한 술 더 떠 영진위가 최근 자신들이 지정하는 26개 작품을 상영하는 독립영화관에만 지원을 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영화계는 일련의 움직임들이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조직적인 영화계 손보기 아니냐는 의심과 함께 집단행동에 나서게 된 것입니다.

영화계는 일단 영진위와 부산시의 움직임이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는 심각한 상황이라는 인식과 함께 관련기관에 엄정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김종덕 문체부 장관과의 면담을 공개적으로 요청했습니다.

● 영화계 사찰 의혹 증폭…경찰이 전화 “도와줄 것 없느냐”
취재파일
기자회견장에서는 영화계의 입을 막으려는 움직임에 대한 폭로들이 이어졌습니다. 최근 독립영화 지원 차별화 문제로 갈등을 겪는 와중에 임창재 독립영화협회 이사장은 지난 10일 일면식도 없는 경찰청 소속 한 형사로부터 “도와줄 것 없느냐”는 전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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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저것 캐묻고는 영화인들 입장을 “청와대에 전달하겠다”는 황당한 전화를 받았다고 폭로했습니다. 또 다른 독립영화 관계자들도 관할 구역도 아닌 전혀 엉뚱한 지역의 경찰들로부터 비슷한 전화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경찰이 영화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무를 물었다는 증언이 나오자 기자회견장 곳곳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습니다. 민생치안 인력도 부족하다며 앓는 소리하던 경찰이 언제부터 영화계까지 챙기고 있었는 지 모르겠지만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영화인들을 감시하려는 민간인 사찰 의심을 받기에 충분한 상황입니다.

● 웃자는 데 죽자고 덤벼드는…'촌티'를 넘어선 '폭력'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힘있는 사람들의 비상식적 행태가 반복될 때마다 영화는 때로는 국민들을 위로하고 때로는 정치적 갈증을 풀어내며, 현실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유용한 소통의 통로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영화판을 흔들고 있는 논란을 보고 있자면 영화를 영화로 바라보지 않고 정치적 색안경을 끼고 선전물 내지는 선동물로 간주하는 시대착오적인 '촌티'가 중앙과 지방을 막론하고 권력의 언저리에서 마구 뿜어져 나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특히 누가봐도 전문성이나 경력이 일천하고 정치적 배경이 의심되는 인사들이 영화관련 기관들을 장악하자 마자 껄끄럽고 말 안듣는 영화판 손보겠다는 식으로 입을 틀어 막으려는 듯한 행태는 ‘촌티’를 넘어 ‘제도적 폭력’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는 진단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온갖 논란 속에서도 지난 해 연말 취임한 김세훈 영진위원장은 제대로 된 기자회견 한 번 열지 않고 있습니다. 할 말이 없는 걸까요? 기자들의 질문 공세가 두려운 걸까요? 아니면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기가 어려운 걸까요?

답답하고 안타까운 시간들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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