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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명품 칫솔과 보석 바비인형'이 말해주는 것들

글로벌 부자 겨냥한 '수퍼리치 마케팅'의 어두운 그림자

[월드리포트] '명품 칫솔과 보석 바비인형'이 말해주는 것들
1997년 'IMF사태'의 후폭풍은 한국 국민들에겐 가혹한 것이었다. 튼실한 중견기업이 순식간에 도산하고 중산층 가정이 수없이 무너졌다. 반면 폭락한 부동산을 현금으로 사들이고 바닥을 친 주식을 싼값에 거머쥔 사람들은 술자리에서 '이대로'를 외쳤다. 자산 시장의 급등락은 누군가에겐 더 없이 좋은 기회가 된다. 쑹홍빈의 '화폐전쟁'에 나오는 유대인 금융가문들 뿐 아니라 한국 내의 적지 않은 부유층도 외환위기의 과실을 한껏 즐겼다.

 2008년에 세계를 강타한 리만브라더스 사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월가의 탐욕을 비판했던 미국 사회는 여전히 건재하고 더 강해진 투자은행과 금융자산가들을 목격하며 역부족을 실감하는 모습이다. 오바마가 지휘한 진보세력의 담대한 희망은 제도화된 정치 로비와 기득권의 저항 앞에서 애초 불가능에 대한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 일부 개혁적인 월가 견제 법안이 통과됐지만, 좌절된 것이 더 많았다. 미국은 여전히 '기회의 땅'이다. 하지만, 희망에 부푼 이민자들로 넘쳐나던 19세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모든 이에게 기회의 땅이 아니라 단단한 밑천을 갖춘 이들에게 그렇다는 것이다.

 월급쟁이 직장인들도 동네 골프장에서 2,3만 원에 라운딩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이지만, 이곳 저곳 녹지 깊숙히 자리잡아 내부를 들여다보기 힘든 비싼 '프라이빗 클럽' 문화의 높고 두꺼운 장벽은 미국 사회의 또 다른 큰 부분이다. 언젠가 구경했던 뉴욕 외곽의 프라이빗 클럽은 이방인에겐 중세 귀족 사회를 떠올리게 하는 '별천지'였다. 미국의 부유층은 폐쇄적인 교류와 기회 나누기로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를 이어가고 있다.


매물이 달리는 수십억대 고가 아파트 시장

 맨해튼의 아파트 시세는 지난해 사상 최대폭으로 올랐다.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이 토대를 만든 뉴욕의 재개발 붐은 현대적이고 세련된 고급 아파트의 대거 신축으로 이어졌다. 월가에 신축된 고급 아파트에 카메라 기자와 들어가기 위해선 예상보다도 긴 섭외가 필요했다. 정화된 공기를 공급하는 중앙시스템과 보안이 철저한 입구의 경비원들, 헬스장과 주류 바, 옥상 정원도 화려했지만 자유의 여신상과 허드슨 강, 센트럴 파트를 내려다보는 전망이 영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방 2개 짜리가 4백87만 달러, 우리 돈으로 53억 원이다. 가격 때문에 도대체 누가 사겠냐 싶지만, 오히려 수요가 너무 많아서 물량이 모자란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뉴욕의 고가 건물과 아파트 중개인으로 굵직한 거래를 잘 성사시키는 것으로 이름이 알려진 중개인의 말을 들어보자.

 "고가 부동산 시장은 완전히 회복됐어요. 2008년 사태를 잊은지 오래됐습니다. 금융위기 전보다 더 잘 팔리죠. 보통 매물 호가보다 단지 1% 정도 낮춘 가격에서 거래가 이뤄집니다. 임대용 투자 매물 같은 경우엔 호가보다 더 비싸게 나갑니다. 상당히 럭셔리한 시장이죠. 구매자 중에는 아시안계, 중국인, 한국인, 유럽인들도 많습니다. 미국에 자녀를 유학보낸 뒤 자녀들을 위한 아파트를 사는 경우도 많아요. 완전히 공급자 주도의 시장입니다." 미국에서 세번째로 높고, 주거용 가운데 가장 높은 건물로 공인돼 올 봄 완공되는 432 파크애비뉴 타워의 거래가는 지난해 내내 화제가 됐었다. 꼭대기 층의 거래가가 1천억원이 넘는다는 보도도 나왔다. 인근 고급 아파트의 펜트하우스는 무려 780억 원에 팔렸다. 허리케인 샌디 당시 건설 중인 맨해튼 초고층 아파트 옥상의 크레인이 부러진 모습으로 피해상황 화면에 나오기도 했었다.


● 호황 누리는 수퍼부자 마케팅…업계도 '반색'

 부의 상징인 전용 제트기와 요트 시장에선 요즘 고급형, 대형일수록 더 잘 팔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엔 지구 반 바퀴를 급유없이 갈 수 있는 16인승 최신 전용제트기가 기업가들과 자산가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데, 주문 물량이 몰리는 바람에 길게는 1년까지 인도를 기다려야하는 상황이다보니 누군가 소유했던 중고 비행기 가격이 신제품보다 높아져서 화제가 됐다. 운항 횟수가 어느 정도 쌓인 비행기가 더 안전하다는 심리도 작용한 모양이다. 이 비행기 가격은 6천만 달러, 우리 돈으론 650억 원이 넘는다. 많은 날은 하루 200건의 주문이 들어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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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자들만을 상대로 한 이런 '리치 마케팅'은 갈수록 확대되는 모습이다. 최근엔 우리 돈으로 5백만 원짜리 명품 티타늄 칫솔이 등장했다. "의학적 기능과 미학의 개념을 결합했다"는 이 칫솔 광고를 보면  귀금속이나 명품 시계 광고와 분위기가 비슷하다. 박테리아 생성을 막도록 특수 처리됐고 일정 기간마다 솔 부분을 교체해주며 평생 보증이 된다는 것이다. 음식과 식재료 시장에서도 이런 현상이 확대되고 있는데 일본 청주와 맥주를 먹여서 키운 쇠고기 요리와 우스꽝스럽지만 식용 금가루를 넣은 컵케익 광고도 나온다. 이 컵케익은 개당 1천달러라고 한다. 아이들 장난감도 마찬가지로 진짜 보석 장신구를 갖춘 바비인형까지 광고에 등장했다.

 이런 마케팅은 업계 입장에선 경영 이론적으로도 전혀 엉뚱하지 않다. 구매력이 풍부한 고객들인만큼 영업을 집중하면 단기간에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개별 소비자의 성향을 파악하고 접근할 수 있는 '빅 데이터' 마케팅이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그 수가 한정돼있는 이런 수퍼 리치 고객들만 사전 분석하고 접근하는 것은 오히려 영업력을 집중할 수 있어 효과적이란 것이다. 한마디로 신 부가가치 산업인 셈이다. 취재 중 만난 미국 업체 직원은 이런 말을 했다.  "수퍼 리치 마케팅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오히려 대기업들입니다.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VIP고객에 대한 정보 파악력이 이런 시장에선 가장 중요한 영업력이기 때문이죠."


30년 만에 가장 벌어진 빈부격차…머나먼 성장의 열매

 세계의 불황 역사를 살펴보면, 과거에는 경제 공황과 전쟁이 인생역전의 기회로 재분배에 적지않은 역할을 했지만, 현대로 갈수록 자본력을 갖춘 부유층에 유리해지고 있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다. 21세기의 소득상위 계층과 자산가들은 단지 부를 소유하고 불려가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자신과 가문의 부를 유지하는데 유리한 제도와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더 관심이 높고 실제로 여력을 투자하고 있다. 미국 진보 경제학계에선 최근 세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의 일방적 집중 현상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프랑스 소장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몰고 온 21세기 자본 신드롬은 이런 반전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미국의 사회분야 민간연구기관인 '퓨 리서치 센터'는 지난 달 발표한 분석 결과에서 미국의 빈부 격차를 조사하기 시작한 1983년 이후 2013년의 격차가 가장 심하다고 밝혔다. 부의 기준으로 활용하는 가구당 순 자산을 분석한 결과, 미국 중산층은 평균 9만6500달러, 상류층은 63만9400달러로 2010년의 6.2배에서 6.6배로 격차가 벌어졌다. 저소득층의 평균 가구당 자산 9천300달러와 비교하면 무려 70배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UC버클리대가 최근 발표한 논문에선 금융위기 이후 미국 소득 상위 0.01%의 자산은 2배 이상 불어나 평균 1천2백억 원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는데, 소득 상위 1%의 자산 증가율이 3.9%인 것과 비교하면 '가진 자 중의 가진 자'가 등장한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지식인들은 최근 심화되는 빈부격차에 대한 우려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부자들이 무조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이런 식으로 가면 인류의 미래는 더 어둡다는 것이다. 보수 경제학자들의 일관된 논리 방어는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빈부격차의 심화는 다름 아닌 자본주의 체제를 위협한다. 글로벌 경제의 가장 큰 동력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는 최근 미국 경제의 완연한 회복세는 세계적으로 심화되는 과도한 불평등의 원인이 '시장의 권력적 성격'에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분위기이다. 중산층 이하 미국인들은 오랜 시련에도 불구하고 최근 하락한 주유소 기름 값 정도인 한 달 수십 만원의 온기만 누리고 있다는 푸념은 새해 글로벌 경제 전망의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다.     

▶'칫솔 하나에 500만 원'…美 '수퍼리치'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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