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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아직도 '밉상 여행객'이…당신의 여행은 안녕하십니까?

[취재파일] 아직도 '밉상 여행객'이…당신의 여행은 안녕하십니까?
혹시 인터넷 하다가 '정x주니어 1승'이라는 우스개 소리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요즘 네티즌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기억하실 겁니다. 지난 6. 4지방선거 당시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한 정몽준 전 후보는 큰 곤욕을 치렀습니다. 정 전 후보의 아들이 자신의 SNS에 세월호 사태와 관련해 '국민이 미개하다'라고 표현을 해 큰 물의를 일으켰기 때문이죠. 당시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비판받았던 이 '미개하다'라는 표현이 시간이 흐르면서 인터넷상에서는 일종의 유행어처럼 쓰이기 시작을 한 모양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라네요.

<'배달음식 쓰레기'에 한강공원 몸살>, <길거리에 담배꽁초 무단투기>같은 일부 사람들의 몰상식한 행동을 지적하는 뉴스나 게시물을 보면서 네티즌들은 선진시민의식이 실종됐다며 냉소적인 표현을 쏟아낸다는 것이지요. 그런 냉소적 표현의 하나로 정몽준 전 후보 아들의 '미개'라는 표현이 (비록 그것이 부적절한 발언이었다 하더라도) 인용되곤 하는데, 그럴때 '정x주니어 1승' 이라고 표현한다는 겁니다. 뭐, 최근에는 '땅콩 회항' 사건 뉴스에 달린 댓글에 이 표현이 정말 많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 수영장에 오줌 누는 아이…웃으며 바라보는 부모

오늘은 제가 경험한 낯뜨거웠던 일을 하나 올리려 합니다. 몇 달 전 동남아를 다녀왔습니다. 몇년 만의 가족여행이었습니다. 저희가 묵은 숙소엔 '유아 수영장'이 꽤 크게 마련돼 있었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이 유아 수영장에 갔다가 눈을 의심하는 장면을 보게 됐습니다. 서너살 쯤 된 사내아이가 수영장 입구에 서더니 수영복 바지를 훌렁 내리고 소변을 보기 시작하더군요. 뭐, 아이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제가 놀란 것은 그 아이 부모님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아이 바로 뒤에서 아이의 아버지가 지켜보고 있었는데, 아이가 소변을 보는 내내 제어를 하기는 커녕 미소를 띄고 격려를 하더군요. "야야~ 다했어?" 하면서요. 아이가 소변을 마치자 바지까지 올려줬습니다. 저만 놀란줄 알았는데 수영장 안의 다른 손님들도 모두 놀라긴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아마 그 가족이 같은 한국인이다보니 더욱 민망했던 것 같습니다.
취파

● 임산부도 있는데…유아 수영장에서 버젓이 흡연

이런 일도 벌어졌습니다. 유아 수영장이다보니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임산부들도 두세 명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담배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한 남성이 담배를 피고 있더군요. 수영장 의자(선베드) 한가운데 앉아서 담배를 피우다보니, 그 연기가 온통 양옆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 옆에 앉아있던 임산부, 그리고 바로 앞에서 수영을 하던 아이들은 담배 냄새에 눈살을 찌푸렸고, 일부는 급기야 자리를 피했습니다.

물론 수영장 여기저기에는 'No Smoking' 표시가 선명하게 붙어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흡연남'도 한국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사진만 보고 어디인지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 숙소 자체가 한국인들 사이에 인기가 많은 곳이어서 투숙객 대부분이 한국인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수영장 안전요원을 포함한 직원들은 모두 현지인들이었고, 손님 중에도 외국인이 꽤 보였습니다. 괜히 부끄러워 지는 것은 어쩔 수 없더군요.
취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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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이야 어떻든…'수영장 의자는 모두 내것'

하나만 더 적겠습니다. 수영장에 가보면 '선베드'라 불리는 의자가 주욱 놓여있습니다. 누울 수 있는 기다란 의자의 일종이지요. 그런데 이 선베드를 한꺼번에 8개, 그러니까 한 줄을 통째로 맡아놓은 가족이 있었습니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는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보통 수건을 올려서 자리를 맡았음을 나타내는데, 5개까지는 수건이 올라가져있는데 나머지 3개는 수영장 입구에서 나눠주는 손바닥만한 엽서가 한장씩 덜렁 올라가 있었습니다.

자리를 맡은 건지 만 건지 애매할 정도였지요. 알고보니 5명이 놀러 온 가족이, 욕심을 부려 선베드를 8개나 맡아놓은 것이었습니다. 수건을 1인당 한 장 밖에 빌려주지 않자, 엽서를 이용해 무리하게 자리를 맡은 거더군요. 당연히 선베드가 모자라 다른 손님들은 빙 둘러 먼 곳에 자리를 맡아야 했습니다. 이 5명 가족도 한국사람들이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호텔 투숙객 대부분이 한국인이다보니 유독 한국인들이 눈에 띌 수도 있었겠습니다.)

기억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1년 전 이런 뉴스를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옮겨보겠습니다.

도 넘은 밉상 짓에 '한국인 출입 금지'…나라 망신 - 2013. 11. 17. 8뉴스 김종원 기자의 생생리포트 (기사 보러 가기)

지난 여름휴가 때 비행기에서 겪은 일을 생각하면 이 30대 주부는 아직도 황당하고 불쾌합니다.

[비행기 '밉상 고객' 피해자 : "되게 화가 많이 났죠. 지금 얼굴 빨개지지 않았나요? 처음에는 너무 화가 났는데…"]

비즈니스석을 구매했는데 자기 자리에 웬 아기가 앉아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까 이 옆자리에 앉았던 승객이 자기 아이를 남의 자리에 무단으로 앉혀 놓은 것이었습니다. 비켜달라고 요구를 아무리 해도 꼼짝도 안 했고, 이때부터 비행기 안에서 소동이 시작됐습니다.

만 2세 미만의 유아를 옆자리에 앉혀도 된다고 항공사 직원이 말했다는 게 아이 엄마의 주장이었습니다. 승무원이 50분이나 설득했지만 막무가내였습니다. 좌석 주인은 결국 자리를 포기했고 이코노미석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항공기 출발은 50분이나 지연됐습니다.

[비행기 '밉상 고객' 피해자: (승무원들이) 무릎 꿇고 계속 이야기하고, 다른 승객에게 '정말 죄송하다, 죄송하다'고 말하고, 다른 승객 항의도 다 받으시고. 그 여자분(좌석 무단 점유 승객)은 '나는 못 일어난다'고 승무원 사무장한테 큰소리쳤어요.]

인터넷에선 이런 사람들이 스스로를 '스마트 컨슈머'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똑똑한 소비자라는 말뜻과 달리 사실은 밉상 짓으로 이익을 챙기는 사람입니다. '비행기 타면 챙겨야 할 물건'이란 글입니다. 담요와 쿠션, 포크와 나이프를 훔쳐 나오는 법을 설명합니다.

심지어 화장실에 있는 로션과 반납해야 하는 헤드폰을 챙기는 방법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11만 원어치까지는 능히 챙길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항공사 직원 : 예전에는 담요나 헤드폰 같은 게 많이 없어졌는데, 요즘은 그것뿐 아니라 식기류까지 많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황당했던 건, 구명조끼 있지 않습니까? 그 구명조끼를 들고 나오다가 보안검색대에 걸려서 문제가 됐던 적이 있습니다.]

동남아에서는 일부의 이런 밉상 짓이 한국인 여행객 전체 피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행사 가이드 : 호텔보면 해변가에 정자들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도 이제 공유를 합니다. 카페에다 '정자를 하루 종일 사용하는 법'. 그러면 다른 외국인 손님들이 전혀 정자를 사용하지 못해서 결국 호텔에서 유료로 전환을 하고요. (그러다보니) 한국인은 악질적이다 라는 이미지가 생기고 있어요. 모든 여행자가 다같이 피해를 입는거고요.]

최근 해외에선 아예, 한국인의 출입을 금지하는 업소까지 등장했을 정도입니다

[이영애/인천대학교 소비자아동학과 교수 : '체리피커'들인 거예요. 맛있는 체리 열매만 따먹는 소비자들인 거죠. 자기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그 어떤 행동도 불사하겠다. 다수의 선량한 소비자에게 추가적인 피해가 발생 될 가능성이 있고요.]

남의 불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만 편하고, 이득 보면 된다는 밉상 고객이야말로 스마트 컨슈머가 아니라 또 다른 의미의 블랙 컨슈머입니다.


이 보도가 나간 직후 정말 많은 분들이 공감을 해 주시면서 화제가 됐습니다. 일부 라디오 프로그램에선 이 소재를 갖고 꽁트를 만들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인터넷 상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면서 해외 여행 문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는 목소리도 커졌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사실 이번 취재파일을 쓸까 말까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우리 국민의 시민의식이 십수년 전에 비해 정말 많이 발전했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꼭 선진국 국민이라고 해서 모두가 부러워 할만한 시민의식을 보이는 것도 아니란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이런 에피소드 몇개를 엮어서 일반화를 시키고 '우리 나라 사람들은 예의가 없어'라고 매도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아서일까요? 요즘은 이런 말 하는 분들도 많이 계시더군요. '한국은 안돼'가 아니라, '내가 이러면 안돼'라고 생각을 해야한다고요. 외국의 미담사례(지갑을 떨어트렸는데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다는 따위)를 소개하는 글이나 게시물에는 이런 댓글이 빠지지 않고 달리죠. '한국이었다면 어땠을까?' 우리나라였다면 미담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라는 자조섞인 질문인데, 이 역시 '저게 나였다면 어땠을까?'라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자고 주장하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맨 처음 언급한 '정X주니어 1승'이라는 시니컬한 자기 평가를 반대하는 목소리로 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좋은 면만을 보자고 생각하다가도, 제가 경험한 것 같은 상식을 벗어나는 '꼴불견' 행태를 볼 때면 한숨 나오도록 실망을 하게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극단적 이기주의의 표출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우리 행동에 대해 더욱 철저히 자성하고 성찰하는 목소리가 어느때보다 높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이것이 한 발 더 발전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안돼'가 아니라, '나부터 잘하면 돼'라는 는 생각을 한다면, 조금 더 남을 배려하는 시민의식을 보일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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