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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경주 첨성대 안전한가? 지진 실험해봤더니…

[취재파일] 경주 첨성대 안전한가? 지진 실험해봤더니…
지난주(9월 23일) 낮 3시 27분, 경주에서 지진이 났습니다. 지질자원연구원 지진연구센터는 지진 규모를 3.6으로 측정했습니다. 진앙 깊이는 10.9km로 추정했습니다. 경주에서는 앞서 9일에도 규모 2.2의 지진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경주 근처인 울산에서도 지진은 잦습니다. 지난주(25일) 울산에서 규모 3.8의 지진을 비롯해서, 올해 울산에서는 지진이 5번 일어났습니다. 진앙의 깊이와 지질에 따라 다르겠습니다만, 지진 규모 2~3 정도면 경우에 따라 화분이 흔들리거나, 집이 부르르 떨린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1,300년을 넘게 버텨온 경주 첨성대가 걱정되는 이유입니다.

첨성대가 얼마나 기울었는지, 최근 문화재청이 공식 자료를 내놓았습니다. 시기 별로 4개의 수치인데, 아래와 같습니다. 단위는 mm입니다. 첨성대 꼭대기에 가상의 중심점을 잡아놓고, 그 중심을 기준으로 어느 쪽으로, 얼마나 기울었는지를 나타내는 숫자입니다.
첨성대











2009년 10월, 첨성대는 북쪽으로 20cm 기운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당시 문화재청은 첨성대를 3D 스캔하는 방법으로, 얼마나 기울었는지 측정했습니다. 3D 스캔 이미지를 컴퓨터에 얹어놓았을 때, Y축을 기준으로 첨성대의 맨 위가 20cm 어긋났다는 뜻입니다. 이게 언제부터 기운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문화재청은 일제 강점기인 1916년, 그러니까 거의 100년 전의 첨성대 사진도 갖고 있지만, 그때의 관측 자료는 없습니다. 문화재청이 조사한 2009년 이후, 5년간은 측정치가 없습니다.

2014년 1월, 첨성대에 다시 관심을 불러일으킨 건 감사원입니다. 감사원이 경주시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면서, 첨성대가 이미 2009년에 20cm나 기운 것으로 확인됐는데, 경주시가 첨성대 주변 땅의 지내력, 즉 하중을 견뎌낼 수 있는 정도를 조사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것입니다. 그러고서 문화재청에 지금은 2009년 이후 5년 만에 얼마나 더 기울었는지 조사를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수치가 20.4cm입니다. 감사원은 그래서, 2009년 이후 “매년 1년에 1mm씩 북쪽으로 기울었다”고 감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첨성대

문화재청은 사실, 감사원 감사 이전에는 첨성대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2009년에 3D 스캔한 뒤로 얼마나 기울었는지 재본 데이터가 없으니까요. 5년 만인 2014년 1월엔 첨성대가 기운 데이터를 재는 새로운 방법을 도입했습니다. 첨성대의 동서남북 네 방향마다 각각 4개의 측정점을 부착한 뒤에, 광파측거기로 그 위치의 변화를 추적하는 것입니다. 총 16개의 측정점 데이터를 갖고 첨성대의 기울기를 계산합니다. 2014년 1월에 나온 20.4cm라는 숫자는 그렇게 나온 것입니다. 2009년 측정법과 다르지만, 기준점을 최대한 맞춰서 두 데이터를 비교해도 무리가 없다고 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설명했습니다.

문화재청은 광파측거기를 도입하고, 첨성대의 기울어짐을 본격적으로 조사하고 있습니다. 분기 별로 한 번씩입니다. 3분기 조사가 9월 15일에 진행됐습니다. 20.39cm 기운 것으로 나타나서, 1월 조사치 20.4cm와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러고서 불과 8일 뒤, 경주에 지진이 났습니다. 경주에 지진 났다고 하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게 문화재연구소 사람들입니다. 첨성대뿐만 아니라 석굴암도 그렇고, 불국사 석가탑도 지금 해체한 뒤 보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랴부랴 지진 다음날, 첨성대 긴급 조사를 벌였습니다. 이번엔 북쪽으로 20.5cm 기운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진 전후 0.11mm 차이가 난 것입니다. 측정 오차를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문화재청은 첨성대가 기울어지는 “진행성은 미미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첨성대가 이렇게 기울어졌다는 게 알려진 건 사실 2009년 이전입니다. 문화재청이 2004년 첨성대 아래 부분 돌들을 조사한 게 계기가 됐습니다. 땅 속에 박혀서 첨성대의 하중을 견디고 있는 지대석, 그리고 첨성대 가장 아래 부분에 정사각형 모양으로 깔린 기단석을 조사한 것입니다. 그때 북쪽 중앙부분이 대략 16cm 정도 주저앉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쉽게 말해 첨성대 지반에 경사가 진 겁니다. 북쪽 중앙으로 일종의 얕은 내리막길이 생겼으니까, 첨성대가 그쪽으로 기우는 건 당연합니다. "첨성대가 기울었다"는 걸 간접적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문화재청은 이런 사실을 알고도, 지난 10년간 첨성대가 얼마나 기울었는지 정밀 조사를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2009년 3D 스캐너 방식으로 한 번, 그리고 올해 감사원 감사를 받고서야 사방에 측정점 16개를 달아 광파측거기로 조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첨성대는 ‘머리’가 기우뚱거리는데, 문화재청은 ‘다리’만 보고 있으면 되겠지 생각한 겁니다. “지대석과 기단석에 큰 변화가 없으면, 첨성대 위도 괜찮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건 오판으로 드러났습니다. 실제로 2004년부터 지난 10년간 첨성대의 북쪽 중앙 지대석과 기단석은 16cm 낮아진 상태가 거의 변하지 않았던 반면, 첨성대 상단은 슬금슬금 기울어졌습니다.
첨성대
대체 왜 북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인지, 문화재청이 2011년 조사를 벌였습니다. 첨성대 근처 2곳에 구멍을 뚫어서 지반을 조사한 겁니다. 첨성대 땅은 깊이 약 16미터까지는 퇴적층으로 나타났습니다. 모래 섞인 자갈과 둥근 잡석인 이른바 ‘호박돌’이 깊게 형성돼 있습니다. 깊이 17미터부터는 단단한 기반암이 나타납니다. 화강암입니다. 그런데 당시 조사에서, 첨성대 북쪽은 퇴적층의 성격이 약간 다른 것으로 나왔습니다. 첨성대 북쪽에는 호박돌이 남쪽보다 적게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북쪽 땅은 하중을 견디는 힘이 약해서, 첨성대가 북으로 기울어지는 거라고 문화재청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성격의 땅은 지진이 일어나면 지반의 흔들림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당시 보고서는 밝혔습니다.

그럼 지진에는 안전할까요. 1,300년간 괜찮았으니까, 앞으로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대지의 시간 단위는, 우리 삶의 그것보다 훨씬 깁니다. 화산만 해도 지난 1만 년 동안 분화한 적이 없어야 ‘휴화산’이라고 부를 정도입니다. 대지진이 일어나면 튼튼한 건물도 무사할 수 없지만, 기울어진 첨성대 입장에서는 최근 일어난 작은 지진도 부담스럽습니다. 일단 첨성대 생김새가 궁금합니다. 2009년 문화재청이 촬영한 내부 사진을 참고할 만합니다. 첨성대 겉이 어떻게 생긴지는 다 알아도, 속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아직 못 보셨을 겁니다.
첨성대
사진을 보시면, 첨성대 속은 텅 비어 있습니다. 바닥에는 자잘한 돌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안쪽 돌은, 매끈하게 다듬은 바깥쪽과 달리 울퉁불퉁합니다. 자세히 보면, 돌 사이사이에 흙과 잡석이 들어 있습니다. 첨성대는 기단과 상층부를 빼고 모두 27단으로 되어 있는데, 맨 아래 1단부터 12단까지는 이렇게 돌 틈이 흙과 잡석으로 성기게 메워져 있습니다. 틈을 흙으로 꽉꽉 채워 넣은 건 아니라서, 이것 때문에 지진에 더 탄탄하게 견딜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제 더 위로 13단부터는 그냥 돌만 착착 쌓아 올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돌이 모두 401개, 9.17미터의 천문대를 올렸습니다.

401개의 돌 가운데, 지진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중요한 돌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첨성대 가장 위에 우물 정(井)자로 올려진 정자석, 그리고 기다란 돌(부재)입니다. 문화재청이 2011년에 실시한 첨성대에 대한 가상의 지진 실험에서는 정자석과 긴 돌이 '있고 없고'에 따라,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잘 드러나 있습니다. 사진에서 위에 2개는 실제 첨성대처럼 정자석과 함께 긴 돌이 놓인 모델A입니다. 첨성대 실제 크기의 15분의 1로 제작되었습니다. 아래 사진 2개는 긴 돌 부재가 없는 가상의 첨성대 모델 B입니다.
첨성대
당시 카이스트 지오센트리퓨지실험센터가 지진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경주에서는 서기 779년, 그리고 1036년에 큰 지진이 일어났다는 문헌 기록이 있지만, 실험에 필요한 지진파 기록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연구진은 일본에서 실제로 일어난 지진 기록을 활용했습니다. 1978년 6월 12일 일본 미야기현 앞바다에서 발생한 규모 7.4의 지진, 그리고 1968년 3월 16일 토카치 앞바다에서 발생한 규모 7.9의 지진입니다. 경주에서 그 정도 지진이 난다고 가정하고, 첨성대 모델을 세워놓은 실험기구에 진동을 가했습니다. 한반도에 500년에 한 번 정도 올 수 있다고 하는 지진 크기입니다.

결과는 사진에서 보다시피, 둘 다 와르르 무너지지는 않았습니다. 상단 정자석 부분은 모두 많이 흔들렸습니다. 눈에 띄는 건 흔들린 정도에서 모델 A와 B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실제 첨성대처럼 정자석을 가로지르는 부재를 걸쳐놓은 모델 A는 정자석 하나가 아슬아슬하게 걸쳐있기는 하지만 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부재가 없는 가상의 첨성대 B는 정자석과 상단의 돌 몇 개가 떨어졌습니다. '첨성대 붕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연구진은 그래서 첨성대의 정자석과 긴 모양의 돌이 내진 성능을 높이고 있다, 선조들의 뛰어난 내진 설계 기술을 엿볼 수 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하지만 500년이 아니라 1,000년에 한 번 꼴로 오는 대형 지진을 가정한 실험에서는, A와 B 모델 모두 돌의 일부가 무너졌습니다. 
첨성대
"500년에 한 번 오는 지진은 어떻게 견뎌냈지만, 1,000년에 한 번 오는 지진에는 붕괴됐다. 첨성대는 1,300년이 되었고, 지금도 미세하게나마 조금씩 기울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재청이 기자들을 불러놓고, 첨성대가 지금은 구조적으로 안정된 상태라고 발표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핵심은 감사원이 경주시에 대한 감사에서도 밝혔듯이, 첨성대 북쪽 땅이 앞으로 하중을 얼마나 견뎌낼 수 있는지, 그걸 알아야 합니다. 이른바 '지내력'을 조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첨성대가 앞으로도 계속 기울 것인지, 아니면 이제 기우는 현상이 멈출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고, 만일의 지진에 대비해 첨성대를 석가탑처럼 분해했다가 다시 올려야 하는지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첨성대 북쪽 지반이 정말 약해서, 점점 더 기울어질 것 같다면, 지금은 괜찮아도 첨성대의 전면 보수를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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