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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일거양득'일까, '봉이 김선달'일까

복합할부금융 이야기

[취재파일] '일거양득'일까, '봉이 김선달'일까
자동차를 사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수천만 원짜리 고가의 상품인만큼 지난해 현금으로 자동차를 산 사람은 전체의 8.6%에 불과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용카드를 쓰거나(42.1%), 캐피탈회사 등을 통한 할부(34.5%)를 이용합니다. 나머지 14.8%는 이렇게 합니다. 신용카드로 결제한 다음, 할부금은 캐피탈회사에 갚습니다. 할부금융을 기본으로 하지만, 중간에 신용카드 결제라는 한 단계가 추가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합할부금융'이라는 상품입니다.

최근 국내 완성차업계 5개사를 회원으로 하는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산업통상자원부에 이 상품을 폐지해달라는 공문을 보냈습니다. 이보다 앞서 3개월 전에는 6개 중소형 캐피탈 회사의 대표이사들이 여신금융협회를 찾아가 폐지를 반대해달라고 건의하는 등 복합할부금융을 둘러싸고 자동차, 카드, 캐피탈 3개 업계가 논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업계 안에서는 아주 시끄럽지만 이런 내용이 일반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는 그야말로 '업계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특별히 번거로운 절차가 더 있는 것도 아니고, 신용카드 포인트와 같은 부가 혜택에 일반 할부보다 금리도 낮아서 오히려 더 좋은 조건이기까지 합니다. '소비자 - 캐피탈 - 자동차'에서 '소비자 - 캐피탈 - 카드 - 자동차'로 결제 단계가 하나 더 늘어났는데 어떻게 금리가 낮아질 수 있을까요. 이것이 논란의 핵심입니다. 바로 자동차 회사가 카드사에 지급하는 1.9%의 수수료가 재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 상품이 대동강물을 팔아치운 '봉이 김선달'식 영업이라는 자동차 회사들의 볼멘 소리는 이런 구조 때문에 나옵니다. 카드사들은 결제 후 며칠 이내에 캐피탈사로부터 대금을 모두 회수하기 때문에 그렇게 높은 수수료를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지요. 캐피탈사는 그들 나름대로 주요 수익모델을 포기할 수 없다는 속내가 있습니다. 기업보다 개인을 상대로 하는 금융이 큰 이익은 없지만 부실 위험이 낮은 안정적인 사업이니까요.

시장에서는 복합할부금융의 장점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상품이 처음 나왔던 2010년에는 비중이 4.4%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14.8%로 성장하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자동차 회사들의 카드 가맹점 수수료 부담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164억원에서 872억원으로 5배 넘게 늘었습니다. (참고로 신용카드로만 자동차를 사는 사람의 비중은 같은 기간 37%에서 42%로 비슷했습니다.)
그래픽_운전 습관

일부 전문가는 단기적으로는 소비자에게 유리해보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별로 좋을 게 없다는 의견을 내기도 합니다. 자동차 회사들 또한 수익성을 맞추기 위해 차값에 이런 부담을 다시 떠넘길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지요. 실제로 지난달에 열렸던 토론회에서 한 자동차 업체는 현재 50%인 카드 결제 비중이 만약 65%까지 늘어난다면 적자로 전환된다고 우려했습니다.

복합할부논쟁을 보는 또 하나의 관점은 바로 카드사들의 경쟁 구도입니다. 카드사의 순위는 회원 수가 아니라 카드 사용액으로 따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지난 1분기 기준으로 신한카드가 약 20%로 1위를 차지하고 있고, 10~13% 내외로 국민, 삼성, 현대카드가 다툼을 벌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자동차처럼 비싼 상품이 많이 판매될수록 카드 사용액은 늘어날 수밖에 없겠지요. 그리고, 이들 회사들 대부분은 최근에 대표이사가 바뀌었습니다. 어느 회사나 마찬가지이지만 사장이 바뀌면 성과를 보여주어야 하는 건 당연한 이치입니다.

금융당국은 어떨까요. 일단은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거래 단계는 늘어났지만 소비자들에게 특별히 해로운 것도 없으니 막아야 할 명분도 모자라고, 민간에서 서로 맺는 계약에 어떻게 간섭할 수 있겠냐는 푸념입니다. 취재 과정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습니다. 복합할부금융은 사실상 우리나라에만 있는 상품이라고 합니다. 자동차를 신용카드로 사는 거의 유일한 나라라는 건데, 상품 구조를 잘 살펴보면 기발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기업은 끊임없이 성장해야 하고, 수익을 내야 합니다. 실물에 터잡지 않은 각종 파생상품이 돈을 만들어내는 세상이 마냥 신기한 제 입장에서는 복합할부금융도 흥미있는 취재 소재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생존이 걸린, 아주 중요한 문제이고, 지금도 진행 중인 논쟁인데요. 이 팽팽한 대립의 균형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누가 먼저 팔 걷고 나설지는 대략 짐작은 갑니다마는 지금까지는 '강 건너 불'이었던 상황이 '내 이야기'가 될까봐 걱정입니다. 그 때쯤이면 방송에서도 다뤄볼 수 있겠지만, 기우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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