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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에너지 무기화…세계 新가스전쟁 시작되나?

- 셰일가스 수출카드 만지작거리는 미국

[월드리포트] 에너지 무기화…세계 新가스전쟁 시작되나?
  지난 14일 미국은 24년 만에 처음으로 비상 상황에 대비해 저장해놓은 전략비축유(SPR)의 '시험방출' 입찰을 실시했다. 미국은 대형 재난으로 유가가 급등했던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당시와 2011년 리비아 내전 당시 전략비축유를 소량 사용한 적이 있지만, 입찰을 통한 시험방출은 1990년 후세인 정권의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후 처음있는 일이다. 실제로 이 발표 직후 국제유가는 하락세를 보였다.

  묘하게도 크림 반도의 긴장사태와 시기가 맞물려있다. 미 정부는 "지난 여름에 재고량이 많이 늘었고, 원유시장 혼란 사태를 대비해 저장 시설과 파이프 라인 운용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고의성이 다분하다는게 미국 언론의 평가이다. 발표시점은 케리 국무장관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회동하는 시점이었다. 러시아의 가스프롬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천연가스 가격할인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시점과도 일치하고 있다.

  유럽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을 압박수단으로 활용해 온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에서도 에너지를 무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미국 정치권에서도 자국내 넘쳐나는 셰일가스 수출을 허용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4일 존 베이너 미 하원의장도 "러시아가 가스를 무기화하는 것을 방치할 수는 없다"면서 "백악관이 당장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조치는 미국 천연가스 수출을 빨리 허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천연가스 수출을 통해 동유럽은 물론 유럽 선진국들에게도 노골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왔던 러시아에 미국이 역시 가스 수출 카드로 맞불을 놓는 상황이 현실화되는 국면을 맞았다. 8년 전 시작된 미국의 셰일가스 붐이 세계 에너지 지형을 바꿀 것이라던 예측이 들어맞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목덜미 잡고있는 러시아 가스라인

  유럽이 소비하는 천연가스의 3분의 1은 러시아산이다. 또 이 가운데 절반 가량이 우크라이나를 통하는 3개의 가스관으로 공급된다. 러시아 군 병력이 최근 크림 반도와 인접한 가스 플랜트 시설을 서둘러 점령한 것은 유사시 가스공급을 무기화할 것이라는 위협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조치였다.

우크라이나는 가스 소비량의 70%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유럽 1위 경제대국인 독일은 천연가스의 40%, 원유의 35%를 러시아에서 수입한다. 이번 상황을 극한 대치로 가져가기를 꺼리는 것은 모든 유럽 국가들이 마찬가지 상황이다.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가 80%를 넘는 동유럽 국가들이 국제사회에서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유럽국가들의 천연가스 비축량은 45일분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2006년과 2009년 러시아가 가스관을 막으면서 가격이 폭등했던 기억은 EU에는 큰 부담이자 공포이다. 실제로 최근 이른바 '비셰그라드 그룹'으로 불리는 헝가리,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의 미국 주재 대사들이 미국산 셰일가스를 수출해달라고 요청하는 외교서한을 미국 의회에 보낸 것은 유럽을 엄습하고 있는 에너지 대란의 공포를 잘 보여준다.

   셰일가스 쌓여있는 미국…수출단추 누를까?

셰일가스 500
  미국의 셰일가스전에서는 가스와 기름이 함께 나온다. 약간 진득한, 유황 함유량이 많은 질좋은 에너지이다. 러시아산의 성분과 유사하고 유럽의 수요를 곧바로 대체할 수 있다. 2007년부터 본격화된 미국의 셰일가스 생산 유정은 이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미 전역에 무려 5만 곳이 넘는다. 오히려 미국내 천연가스가격이 지나치게 하락해 파산하는 가스업체가 나올 정도이다. 가스 수출에 대한 요구는 미국의 민간업계에선 이미 본격화됐다. 지난해 미국의 하루 에너지(원유와 천연가스) 생산량은 2천2백만 배럴로 러시아의 2천180만 배럴을 이미 넘어섰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과 오일쇼크를 겪은 이후 39년 동안이나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에너지 수출을 금지해왔다. 수출을 위해선 법을 바꿔야한다. 현재 미국은 자유무역협정 체결국인 캐나다와 멕시코에만 가스를 수출할 수 있다. 그동안 요청받은 다른 국가로의 수출 신청 21건 가운데 6건이 승인됐고 실제 수출은 2015년 하반기에 가능하다. 하지만 일단 물꼬가 트이면 그 파장은 가히 짐작할 만하다. '러시아에서 유럽'이라는 일방적 가스공급 구조가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에게 가스 수출 허용은 벅찬 선택일 수 밖에 없다. 러시아는 국가재정의 40%를 에너지 수출에서 충당하고 있다. 미국산 에너지의 방출은 러시아에겐 '전쟁 선포'나 다름없는 조치인 것이다. 극한 대립과 제2의 냉전을 부르는 서곡이 될 수도 있다. 미국이 자국 경제를 위해 순차적으로 수출량을 늘릴 수는 있어도 전면 수출 카드는 현실성이 없다. 그러나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이런 점진적 수출만으로도 제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은 철저한 정치적 계산 속에 가스 수출 카드를 만지작 거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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