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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연극이 몰려온다

3월 유례없는 연극 전쟁

[취재파일] 연극이 몰려온다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좋아하던, 보고싶던 연극이 확 몰려온답니다. 연극은 일단 가격이 비교적 싸고 무대가 가깝죠. 언제든 보러 갈 수 있을 것 같은, 하지만 매번 다른 공연이 펼쳐지는 다른 장르의 공연과는 비교되는 독특한 매력이 있습니다. 화려한 무대, 귀를 사로잡는 노래, 우아한 춤사위...이런 요소가 없더라도 극본과 연출, 연기만 좋으면 쉽게 몰입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런 작품들이 3월부터 약속이라도 한 듯 한번에 개막합니다.

◆ 고전, 신작, 가리지 않고 몰려온다

 고전은 어느 정도 흥행이 보장되는 작품으로 통합니다. 오랜 시간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작품인 만큼, 무대에서도 진가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올해는 특히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인데요, 눈에 띄는건 국립극단의 시즌 첫 작품 '멕베스'입니다. 권력의 욕망에 사로잡혀 결국 파멸하는 인간을 묘사한 작품으로, 2008년 대한민국 연극대상을 수상한 이병훈 연출가가 칼을 빼들었습니다. 셰익스피어 만큼은 아니지만, 국내에서 40년 넘게 무대에 오른 고전 '에쿠우스'와 '관객모독'도 오랜만에 돌아왔습니다. 에쿠우스는 벌써 15번째 재공연으로, 과거와 다른 캐스팅으로 보다 파격적인 무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관객들에게 욕과 물세례를 퍼부으며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파괴하는 관객모독도 이번엔 언어 유희의 맛을 살려 개막을 앞두고 있습니다. 고전은 누가 요리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작품으로 탄생할 수 있다는 게 매력입니다. 여러번 재공연 해온 작품이라도 다시 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이런 고전의 공세 속에서도 신작들의 선전도 기대됩니다. 2012년 나란히 첫 공연을 한 '과부들'과 '엠 버터플라이'가 대표적입니다. 강가에 떠내려온 시체의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벌어지는 마을 여인들의 이야기로, 초연 당시 주요 연극상을 휩쓴 과부들. 프랑스 외교관과 중국 경극배우의 기이한 러브스토리를 김광보의 연출로 만든 엠 버터플라이. 둘다 앵콜 공연으로 초연 당시 배우들이 대거 참여합니다.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나와 할아버지'...가족애를 담은 작품들도 다양한 연령층의 호평을 받으며 다시 개막합니다.

◆ 역시 믿고보는 배우

 3월 연극계에는 낯익은 얼굴들도 많이 돌아옵니다. 개인적으론 톨스토이 '홀스또메르'란 작품으로 무대에 선 유인촌 전 문화부 장관이 가장 눈에 띄었습니다. 1997년 이 작품의 시작을 함께한 만큼 복귀작으로 선택했다고 하는데요.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에는 신구, 손숙 배우가, '나와 할아버지'에는 이희준 배우가 다시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와 그녀의 목요일'에는 조재현, 박철민 배우와 초연에 출연한 배종옥 배우도 함께 무대에 올랐습니다. TV와 영화를 넘나들며 연기력으로 눈도장을 찍어온 배우들이 소극장에서 연기 대결도 벌이게 됩니다.

◆ 그런데 왜 지금일까요?

 3월은 공연계에 비수기 입니다. 학생들의 방학이 끝나는 시기, 연말부터 이어진 작품들이 끝나는 시기, 날이 풀리면서 나들이 가기 좋은 시기...새 공연을 시작하기 앞서 관객들이 어떤 공연을 선호하는지 눈치를 보기에도 좋은 시기입니다. 그런데 왜 3월에 다 몰렸냐고요?

 바로 그 '비수기'이기 때문입니다. 야심차게 공들여 준비한 작품이기 때문에, 보다 돋보일 수 있는 시기를 노린 것인데 어쩌다 보니 다른 작품들도 비슷한 판단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 '비수기'란 말은 작품 수가 적은 시기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대학로에는 여전히 공연이 많습니다. 실제 인터파크에 문의해 보니 이 기간 공연 수는 230여 개, 지난해와 비슷하다는군요. 매 공연마다 관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작품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장르는 죄다 '로멘틱 코메디', 이른바 데이트용 공연 뿐입니다.

 이런 시기라면 로멘틱 코메디가 아닌 작품들은 오히려 주목받겠죠. 스릴러, 멜로, 심리극...인생에 대해 진하게 얘기해보고 싶은 연극, 그냥 지나칠 법한 역사에 확대경을 들이대고 싶은 연극, 남들에겐 보여주기 싫은 인간의 욕망을 낱낱히 드러내보고 싶은 연극. 극본, 배우, 연출의 이름만으로 관객들에게 호응받을 수 있는 그런 작품들 말입니다. 그렇게 다들 저마다 3월을 향해 총력을 다해 달려왔던 겁니다. 
 
◆ 진짜 경쟁도 시작된다

 공연 개막 일정은 개막 최소 1,2년 전에 준비합니다. 이런 우연이 이미 계획되는 겁니다. 하지만 만약 서로가 이런 상황인 줄 알았다면 다들 이 시기에 이렇게 몰려들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느끼셨겠지만, 이런 작품들은 어떻게 보면 '마니아'들의 지지로 무대에 올라가는 공연입니다. 대중적이지 않을 수도, 두세번 볼만한 유쾌한 내용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톱스타가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작품들이 몰리다 보니 흥행은 예전같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마니아들도 분산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우울하지 만은 않습니다. 우선 관객 입장에서는 '3월엔 연극 한번 볼까' 이런 생각이 들게 됩니다. 볼만한 연극들이 많다는 각인이 되는 겁니다. 어떤 공연을 볼까 행복한 고민도 하게 됩니다. 뮤지컬에 비해 홍보가 부족했는데, 이런 연극들이 모여서 유례없는 홍보도 되고 있습니다. (물론, 지하철 입구에서 전단지 돌리는 그런 홍보는 아닌거, 아시죠?) 

 제작진은 어떨까요. 사실 이게 가장 궁금했는데요. 재밌는건 배우들이 이 상황에 민감하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단히 반가워하고 있습니다. 무대에서 직접 관객을 대하는 배우들은 하루 공연으로 평가받기 때문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쟁쟁한 작품들이 경쟁하다보니 관객들과 제대로 소통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해졌습니다. 마니아 뿐만 아니라 이번 기회에 모처럼 극장 찾아온 관객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것도 중요할 겁니다.

 이런 유례없는 이벤트가 반가운건, 확실친 않지만 우리 연극계에도 뭔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일 겁니다. 연극은 뭔가 대사가 어색하고, 단조롭고, 극장은 좁고, 의자는 불편하고...이런 선입견으로 소극장을 찾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다른 공연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이 있습니다. 배우들의 눈빛, 목소리, 손짓...그저 어두운 극장에서 공연에 파묻혀 다른건 보지 않고 오로지 나의 삶이란, 이웃이란, 내가 속한 사회란 어떤 것인지 느껴보는 치열한 시간 말입니다. 이런 공연이 평소 극장을 잘 찾지 않는 관객들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가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다들 좋은 공연 부탁드립니다. 좋은 관객들이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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