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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北가족에 샴푸 건네니 "이게 뭡네까?"

①이상가족 상봉 마무리… 슬프고 아름다웠던 상봉 순간 에피소드

[취재파일] 北가족에 샴푸 건네니 "이게 뭡네까?"
① 이상가족 상봉 마무리… 슬프고 아름다웠던 상봉 순간 에피소드

 이산가족들이 상봉한 금강산에는 한국의 기자 10여 명이 갔습니다. 북한과의 조율이 필요한 행사이기 때문에 원하는 모든 기자가 현장에 갈 수 없었지요. 저는 남북회담본부에서 북한에 있는 기자들이 보내오는 현장 상황을 읽었습니다. 기자 10여 명이 취합한 내용을 팩스로 받아보는 것이지요.

비록 현장에 가지 못했지만 제가 읽은 팩스의 내용은 한 편의 소설 같았습니다. 짐작키도 어려운 60년간의 생이별이 주는 슬픔, 꿈이 아닌 현실로 만나게 된 이들의 기쁨 등 갖가지 감정이 섞여 있었지요. 이번 취재파일에서는 슬프고 아름다웠던 상봉의 순간에 있었던 갖가지 에피소드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영상이 없어서 방송 뉴스에는 못 다뤘던, 시간 제약 때문에 소개하지 못한 내용입니다. 어쩌면 신기하고 재밌게도 보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슬펐던 사연들입니다.

“저게 무슨 동작입니까?”..“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18살 때 동생과 헤어진 이명호 할아버지는 82살이 돼서야 동생 리철호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64년, 긴 시간은 13살 동생을 77살의 노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명호 할아버지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 내내 밝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작별의 순간이 되자 이 할아버지는 동생의 손을 잡고 “나 안 울려고 했다. 살아줘서 고맙다. 몸 건강히 지내라”며 울먹였습니다. 이 할아버지의 부인은 “실은 오늘 아침부터 방에서 계속 우셨다”고 말했습니다.

작별의 순간, 이 할아버지는 남쪽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창밖으로 계속 손동작을 취했습니다. 북측의 가족들은 “저게 무슨 동작이냐”라며 옆에 있는 기자들에게 되물었습니다. 하트 모양이었지요. 손과 팔로 이 할아버지는 크고 작은 하트를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계속 만들었다고 합니다. 기자가 “사랑한다는 의미에요”라고 전하자, 북측의 가족들은 어설프지만 그 모양 그대로 하트를 따라 만들며 울었습니다. 눈물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샴푸? 그게 뭡니까?”..‘환갑 사진’은 합성?

북측 가족들에게 아쉬움을 느낀 분도 계셨습니다. 남측 가족들은 대부분 대형 여행 가방에 선물로 옷가지나 의약품, 생활용품 등을 한도인 30kg까지 꽉 채워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북측 가족의 상당수는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니 걱정 말라. 북에도 많다"는 이유로 사양했지요. 89살 이명한 할머니도 북측 동생을 위해 초코파이 16상자와 샴푸 등을 준비했습니다. 북한에서 초코파이가 인기 있다는 것을 알고 준비할 수 있는 대로 모았다고 합니다. 이 할머니 가족은 "북측 가족에게 샴푸가 뭔지 아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저었다"며 "펌프식 샴푸는  맨 처음에는 꼭지를 빼서 써야 한다는 걸 여러 차례 설명했는데도 이해를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유용할 것으로 예상했던 대일밴드를 큰 통으로 주니 "오징어 가루 바르면 되는데 이런 거 필요 없다"고 답했다고 전했지요. 이 할머니 가족들은 북측 가족이 자꾸 '수령 이야기'를 해서 아쉬웠다고 말합니다.

북에서 취재한 기자들도 현장에서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북측 가족들이 가져온 사진 때문이었지요. 71살 최선득 할아버지는 동생 61살 최영철 할아비지를 만났습니다. 최영철 할아버지는 40년 전 홍어 잡이를 하다가 북한의 함포 사격을 받은 후 북에 끌려갔었지요. 동생인 영철 씨 가족은 환갑 때 사진과 조카 돌잔치 사진을 가져왔습니다. 옆에서 사진을 지켜본  기자는 합성의 느낌이 강하다고 말했지요. 북측 가족이 그랬을지, 아니면 북한 당국이 그랬을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었습니다.

한 남측 이산가족은 현장에 있는 취재기자에게 “북측 가족들은 열흘 전에 모였다고 하더라.”며 “평양의 좋은 곳들과 스키장을 다 데려가서 보여주고 우리가 이렇게 잘 산다며 체제선전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많은 북측 이산가족들은 “하루 빨리 통일 돼야 한다”, "원수님  덕에 우리가 만났다",“비방 중상하지 말아야 한다” 등 북한 당국의 입장을 전하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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