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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코레일 사장, 그녀는 정치인이다

[취재파일] 코레일 사장, 그녀는 정치인이다
AI 여파로 우리 농가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카드사 개인 정보 유출로 수천만 고객들의 분노 또한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와중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람이 한 명 있을 것입니다. 철도공사 사장 이야기입니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에게 ‘인사 청탁’을 한 게 들통 나 속된 말로 ‘한방에’ 날아갈 뻔한 그녀였기에 그런 추측을 해봅니다.

철도노조 파업이 한창일 때 TV에서 그녀의 얼굴을 처음 봤습니다. 경찰의 눈을 피해 이곳저곳에서 도피 생활을 하던 노조 지도부에게 인간적인 연민을 느꼈던 것처럼 철마(鐵馬 )와  여성 사이의 이질감을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녀를 볼 때마다 안쓰러움이 느껴졌습니다. 솔직히 그녀는 ‘철도노조 파업’ 사태에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동정표를 얻기에 충분할 정도로 당차고 결연했습니다.

‘철도노조 파업’의 본질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제까지처럼 공영화가 나은 것인지 아니면 민영화 되어 경쟁 체제로 가는 것이 맞는지 정말 잘 모르겠습니다. 철도공사에서 십 수 년 동안 근무했던 그녀조차 공영화가 옳다고 했다가 다시 민영화가 최선이라고 주장하는 형국이니 저 같은 평범한 사람이야 모르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요.

무슨 말이냐고요? 아직까지 ‘철도노조 파업’ 사태에 무관심한 분들을 위해 잠깐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철도공사 사장이 되기 전 그녀가 19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전후로 했던 말들입니다.

-“지금 수서역을 중심으로 한 KTX 부분 민영화에 대해서는 옳지 않다고 보고….”, “KTX를 분리해서 부분적으로 민영화 한다면 상당히 국가적인 전망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 저는 확고히 반대한다”(오마이뉴스 인터뷰 中)
-‘국익에 역행하는 고속철도 민간 개방’(조선일보 기고 제목)
-“아르헨티나는 철도를 포함한 교통 부문이 1990년대 민영화 된 이후 관리가 소홀해지면서 이 같은 대형 사고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그녀의 트위터 中)

이랬던 그녀가 철도공사 사장이 된 후부터 ‘KTX 민영화가 국가와 국민을 위한 길’이라며 180도 말을 바꾸는데 도대체 뭐가 맞는 것인지 혼란스럽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말 바꾸기’에 대해 비판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녀의 변신’까지도 무죄라면 무죄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념은 변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한번 내뱉은 신념이라고 무조건 고수하는 건 더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으니까요. 철도를 둘러싼 시대와 상황이 그녀의 신념을 바꿨다고 가정한다면 그 신념을 표출하는 건 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돌 맞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녀에 대한 연민이나 이해에는 전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직원 7천8백43명을 직위해제하면서 주장한 “어머니의 마음으로 회초리를 들었다”는 그 신념에 진성성이 있느냐 여부입니다.

그녀가 지난 16일 새누리당사를 찾아가기 전까지만 해도 그녀의 ‘어머니론’은 유효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대변인까지 동원해 황우여 대표를 공식 방문한 뒤부터 그녀의 진정성은 무너졌습니다. 그날은 그녀 말에 따르면 ‘자식’이나 다름없는 철도노조 지도부가 구치소에 수감될 지 말 지를 놓고 법원에서 심리를 받고 있을 때였습니다. 당시 상황을 취재해보니 그녀는 ‘하하 호호’ 함박웃음까지 터트리며 당사를 돌아다녔다는군요. 황 대표를 왜 찾아왔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새해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라고 둘러댔고요. 분위기를 심상치 않게 느낀 출입기자의 끈질긴 취재 덕분에 그녀의 진짜 방문 목적이 드러났지요. 인사 청탁.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여당 대표를 공사 사장이 직접 찾아가 인사 청탁을 할 정도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혹자들은 철도노조 파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공로에 스스로 도취된 나머지 상식 밖의 ‘지분 청구권’을 행사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하긴 합니다. 그러나 그 부분은 차치하고 그녀의 ‘어머니론’만 놓고 보더라도 세상에 어느 어머니가 ‘자식’이 그런 상황에서 정치권을 기웃거릴 수 있을까요.

그렇기에 지금 그녀를 향한 비난의 상당수는 일리가 있습니다. 그녀가 철도공사 사장으로서 외친 줄로만 알았던 진정성이, 사실은 정치인으로서 주판알을 튕겨가며 나온 손익계산서에 불과했다는 비난 역시 그녀는 오롯이 감수해야 합니다.

그녀는 ‘다음 총선에서 불출마 하겠다’며 이번 파문을 서둘러 진화해보려 했습니다. AI와 정보 유출이라는 병풍 뒤에서 ‘이번 파문 또한 지나가리라’ 주문을 걸며 숨죽이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불출마’ 선언이 영 꺼림칙합니다. ‘KTX 민영화’ 발언처럼 언제든 손바닥 뒤집듯 뒤집힐 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녀는 정치인이니까요.

※이 글은 신념에 따라 국익과 국민을 위해 불철주야 일하고 있는 정치인들과는 전혀 무관한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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