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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스키장 인공눈…눈 와도 또 만드는 이유는?

[취재파일] 스키장 인공눈…눈 와도 또 만드는 이유는?
스키나 보드를 즐기는 눈(雪)에도 취향이 있습니다. 물기를 머금지 않은 폭신폭신한 ‘파우더 스노우’가 있는가 하면, 적당한 수분을 가진 촉촉한 눈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건조해서 건설, 습해서 습설이라는 표현도 쓰입니다. 일본 홋카이도에 가면 넘어져도 아프지 않다는 파우더 스노우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떤 느낌인지 가보고 싶습니다. 다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 이런 눈을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약간 물기를 머금은 습설, 잘 뭉쳐지는 눈이 스키 타기에 좋다고 생각하는지, 스키장은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눈의 습도를 적당히 유지하는데 꽤 공을 들입니다.

최근 곤지암리조트 스키장을 찾아갔습니다. 인공눈을 만드는 풍경은 생각보다 멋졌습니다. 슬로프 양편에 도열한 제설기가 굉음을 내면서 내부 프로펠러를 돌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강풍에 몸을 싣고 날아가는 인공눈은 20~30미터 멀리 떨어졌습니다. 제설기는 꼭 항공기 엔진처럼 생겼습니다. 새벽 3시부터 게속 돌렸다고 했습니다. 슬로프에는 누군가의 발자국 하나 없이 눈이 쌓이고 있었고, ‘정설차’라고 부르는, 포클레인처럼 생긴 차량이 왔다갔다 눈을 아래 위로 뒤섞고 바닥을 다졌습니다. 그렇게 5시간 정도 눈을 만들면 최적의 기상 조건에서는 50~60cm까지 쌓인다고 했습니다. 하늘에서 내렸다면 비닐하우스까지 무너트릴 만한, 폭설 중의 폭설인 셈입니다.

인공 폭설을 만드는 데는 만만치 않은 돈이 듭니다. 제가 본 제설기는 미국의 ‘super polecat’ 이라는 제품입니다. 수입 제설기는 한 대에 4~5천만 원에 달한다고 제설기 수입업체 측은 설명했습니다. 스키장은 이걸 바닥에 고정한 채 쓰고 있었습니다. 제설기에 바퀴가 달려 이곳저곳 이동 가능한 제품도 있습니다. 스키장은 고정식, 이동식 합쳐서 모두 100대의 제설기를 갖고 있으니까, 제설기 값만 해도 일단 억 억 소리가 납니다. 제설기 한 대가 시간당 최대 20톤의 물을 먹어치우니, 여기에 상수도를 쓰면 물값을 감당할 수 없어서, 스키장 입구 한편에 작은 저수지를 운용하고 있었습니다. 지하수를 모아두는 곳입니다. 여기서 1km 넘게 떨어진 슬로프 곳곳까지 전기로 물을 끌어와 제설기에 공급하게 됩니다. 스키장 눈은 지하수 눈입니다.

돈 쓰고, 시간 쓰고. 눈이 온 다음 날에도 인공눈을 굳이 왜 만드나 싶은데, 인공눈의 형성 원리를 알면 그 생고생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원통처럼 생긴 제설기에는 비슷하게 생긴 두 가지 노즐이 달려 있습니다. 하나는 인공눈의 핵을 만드는 노즐, 여기서는 고압의 공기(최고 50기압)를 섞은 물방울을 뿌려줍니다. 공기 중에 퍼진 물방울은 급격하게 팽창하면서 온도가 뚝 떨어집니다. 이걸 단열팽창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눈의 핵, 그러니까 인공눈의 씨앗이 얼어붙습니다. 다른 노즐은 그냥 분무기처럼 미세한 물방울만 뿌리는데, 이 물방울들이 눈의 씨앗에 달라붙어 순식간에 얼면 인공눈이 되는 것입니다. 두 노즐에서 나온 눈의 씨앗과 눈의 원료, 이게 공중에서 서로 잘 만나도록 하는 것이 제설기 기술의 핵심이라고 합니다. 말로는 쉬운데, 만들기는 쉽지 않습니다.

super polecat 제설기에는 눈의 씨앗을 만드는 노즐이 6개, 물방울만 뿌려주는 노즐이 30개 달려 있습니다. 그럼 노즐을 몇 개 여느냐, 하나를 열어도 몇 단계로 여느냐를 결정할 수 있겠죠. 이건 기상 조건에 좌우됩니다. 물방울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얼음이 되려면 온도는 영하 3도 이하, 습도는 70% 이하여야 합니다. 물방울이 증발해 열을 빼앗기면서 눈으로 변신해야 하기 때문에 습도가 낮아야 합니다. 조건이 좋으면 노즐을 잔뜩 열어 폭설을 만들고, 조건이 별로면 최소한만 여는 식입니다. 또 노즐을 몇 개씩 여느냐에 따라 눈의 촉촉함을 미세하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온도와 습도, 바람을 보고, 노즐을 몇 개씩 열어야 할지 결정하는 것이 스키운영팀의 노하우입니다. 슬로프 곳곳에는 기상 상황을 실시간 측정하는 센서가 설치돼 있습니다.

눈의 촉촉함을 직접 결정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어느 정도 마찰력을 가진 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값비싼 인공눈을 굳이 만드는 이유입니다. 스키운영팀 관계자는 눈이 촉촉해야 ‘뽀드득’ 소리도 나고, 잘 뭉쳐지고, 초보자도 스키나 보드를 손쉽게 제어할 수 있어서 좋아한다고 말했습니다. 인공눈을 자연 그대로의 눈과 적당히 섞어준 것, 그걸 결집력 있는 ‘적정설’이라고 불렀습니다. 스키 타기에 가장 좋은 눈입니다. 그래서 겨울에 눈이 많이 오든 적게 오든, 어제 눈이 왔든 안 왔든, 스키장은 기상 조건만 맞으면 인공눈을 만듭니다. 물론 넘어지면 가루 같은 눈보다 엉덩이가 아플 겁니다. 한국인은 먹는 쌀도 그렇지만 눈도 뭔가 차진 것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풀풀 날리는 동남아 쌀로 만든 밥보다 차진 밥을 좋아하는 것, 스키장 눈에도 같은 취향이 반영된 것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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