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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언론의 감시와 육군사관학교의 고립

[취재파일] 언론의 감시와 육군사관학교의 고립

7주, 정확히 49일 만에 어머니를 볼 수 있었습니다. 두 달도 안 되는 기간이지만 어머니 얼굴을 보자마자 울컥했습니다. 이등병도 아닌 훈련병 신분으로 49일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새벽부터 시작되는 빡빡한 일정에는 생전 처음 해보는 고된 훈련이 가득했습니다. 화장실조차 제 마음대로 갈 수 없었지요. 사실 다른 동료들에 비해서는 훨씬 빨리 어머니의 얼굴을 본 것입니다. 다른 동기들은 100일 휴가를 나와서야 부모님을 만날 수 있었지만, 카투사로 복무한 저는 논산 육군 훈련소 4주, 의정부 카투사교육대 3주를 거쳐 부모님을 뵐 수 있었던 것이지요.

똑같이 지치고 힘든 4주와 3주였지만 훈련소의 마지막 모습은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미군은 부대를 활짝 열었습니다. 좁은 면회소에서 음식을 나눠먹는 한국군과 달리 잔디밭, 식당 등 부대 어디에서든지 자유롭게 가족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지요. 7주 만에 만남의 장이 마련된 의정부 카투사교육대는 하나의 거대한 축제장이었습니다. 물론 문화 자체가 다르고, 징집이 아닌 지원에 의해 군 생활을 한다는 양국의 차이는 감안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군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보안과 통제를 강조한다는 생각은 군 생활 내내 쉽게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육사 캡쳐_500

9년 전 훈련병 시절이 떠오른 것은 지난 주 육군사관학교 취재때문이었습니다. 내용은 지극히 평범한 것이었습니다. 6.25 전쟁 당시 미8군 사령관이었던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은 육군사관학교 창설에 결정적 기여를 해 ‘한국군의 아버지’라 불립니다. 육사에 거대한 동상까지 세워진 이 밴 플리트 장군의 외손자가 방한해 할아버지 동상에 예를 올린다는 내용이었지요. 육사생도들과 점심식사도 예정돼 있어서 이 오찬 장면과 함께 보도를 하려고 생각했습니다.

시작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취재를 하면서 몇 번이나 내용 설명을 반복해야 했습니다. ‘말한 것과 다르게 보도하려는 게 아니다’, ‘밴 플리트 장군 외손자 방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장군의 외손자와 육사생도간의 오찬 장면도 촬영이 어렵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몇몇 국방부 관계자들과 통화를 해 방송 내용을 수차례 설명했지만 육사 내부의 반대가 거세다는 답변만 들을 뿐이었습니다. 결국 육사생도의 모습은 보지 못한 채 장군의 외손자가 헌화하고 거수경례하는 모습만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육사 비공개’는 지난 5월 육사 남자 상급생도의 여자 하급생도 성폭행 사건부터 시작됐습니다. 이 사건으로 육사 교장이 전역했고, 대대적인 육사 개혁안이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8월에도 4학년 생도가 여중생을 성매매 하는 등 파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국정감사에서도 육사 생도의 도덕적 해이와 군기 문제가 주요 이슈가 됐었지요. 비난 여론이 거세질수록 육사의 언론 공개도 제한돼 갔습니다. 최대한 노출을 줄여 논란을 잠재우자는 의도로 보이는데 자칫 부패와 비리도 덮어버리는 고립에 빠지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 정도였습니다.

언론의 중요한 역할은 ‘감시(watch)’입니다. 국민을 대신해 사회에 정상적으로 작동이 안 되는 게 무엇인지 확인하고 비판해 개선시키는 역할이지요. 하지만 이런 지켜봄을 당하는 입장에서는 종종 감시를 ‘감독과 관리로서의 감시(surveillance)'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개의 기관들은 이런 감독이나 관리가 싫어서 소통의 통로를 봉쇄하고 결국 고립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육사에 대한 비판과 비난을 잠재우려면 육사 스스로 조금 더 공개하고 열어야 합니다.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개선하려는 의지를 알리는 것이지요. 의심과 의혹은 안 보일수록 더 짙어지게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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