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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21년간 아이 키운 대가가 383만 원?

[취재파일] 21년간 아이 키운 대가가 383만 원?
아이 한 명을 대학 졸업시킬 때까지 드는 돈이 2억6천만원 이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한국노동연구원, 2011) 물론 금전적인 비용만 계산한 것이고, 시간적인 부분은 빠져 있는 금액입니다. 사교육을 어느정도 시키느냐에 따라 차이가 좀 날 수는 있겠지만 어쨌든 생각보다 양육에 드는 돈이 큰 건 사실이죠. 

하지만 21년 간 혼자 아이를 키운 대가로 383만원을 받게 되었다면, 기분이 어떠시겠습니까?

양육비
제가 만난 여성은 결혼 2년 만에 남편 외도로 이혼해, 돌쟁이였던 아들을 혼자 키워 왔습니다. 그동안 양육비는 한 푼도 받지 못했습니다. 아이 아빠는 양육비는 못 주겠다고 하면서 친권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돌쟁이 아들을 업고 시장에 김밥 장사를 다니고, 안 해 본 일이 없이 억척스레 살면서 그 아들을 23살 청년으로 키워 냈습니다.

최근에야 시민단체 도움을 받아 양육비 청구 소송을 했는데, 판결된 금액이 고작 383만원. (무슨 근거로 책정된 금액인지 모르겠지만 월 30만원씩 1년여 치를 계산한 거라고 합니다)  이마저도 전 남편은 차일피일 미루며 주지 않았습니다. (지방에서 한부모지원, 독거노인 돕기 등 사회복지사업을 한다는 전 남편은 정작 자기 아들은 모른 척 해 왔다는군요) 결국 이행명령을 받아낸 뒤에야 세 번에 나눠 받을 수 있었다는데, 그 돈은 고스란히 아들의 학자금 대출 일부를 갚는 데 들어갔습니다.   

이 분은, 판결 금액도 어처구니가 없지만, 소송하는 과정에서 받은 상처가 너무나 커서 후회 막심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무료 법률 상담은 다 찾아다니며 소송을 문의하는데 어느 누구도 따뜻하게 의논해준 사람이 없다고.. '그냥 안 주면 그만이니 포기하라'는 말도 듣고, 어렵게 국선 변호사를 선임해 재판을 하게 되었지만 변론 기회가 왔을때 변호사는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소송을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겪은 몇 년간의 마음 고생 끝에 그냥 3백83만원 받고 끝내기로 했다면서도, 이런 경우를 다른 사람들은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취재에 응했다고도 했습니다. 

양육비
아이 하나 제대로 보기도 어려울 텐데, 하루아침에 육아와 생계를 떠맡게 된 막막한 상황에서 이 분이 어떤 마음 고생을 했을지, 상상조차 할 수는 없겠지만, 제게도 그 지나간 세월의 무게가 전해져 왔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분은 올해 초 갑상선암 수술을 받고 치료를 받느라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요즘은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편견 섞인 시선이 가장 힘들었다며, 아들이 혼란을 겪을 때 너무 힘들었다며, 대학 다닐 땐 나도 꿈 많은 사람이었다며, 담담하게 과거를 풀어내던 이 어머니는 결국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저도 눈물이 나서 참느라 혼났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손을 꼭 잡아드리는 것 뿐.

서울에 있는 10가구 중 1가구는 한부모가정(아빠나 엄마 혼자서 미성년자녀를 키우는 가정)입니다. 양육하는 쪽은 생활비도 벌어야 하고 양육도 책임져야 하니 부담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이혼이나 미혼 부모의 경우, 양육을 맡지않은 쪽이 양육하는 부모에게 일정한 양육비를 지급하도록 되어 있는데, (보통 월 30-50만원 정도가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실제로는 제대로 지급되는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옛 배우자로부터 양육비를 한 번도 받지 못한 가구가 무려 83%입니다.  양육비 청구소송 특성상 소액을 장기간 (자녀가 성년이 되기 전까지,최대 18년) 지급하는 것이다보니 이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이혼하면서 아이 양육을 맡는 쪽이 '덤터기'를 쓰는 셈이죠.

하지만 이렇더라도 양육비 청구 소송을 하는 경우는 4.6%에 불과합니다. 절차가 너무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아이 돌보며, 돈 벌어 살림해야 하는 빠듯한 생활 속에서 일일이 찾아다니며 자문을 구하고, 소송을 진행하기는 쉽지 않은데다 무료로 법률 도움 주시는 분들도 그리 협조적이지 않다고 하네요. 제대로 된 변호사를 선임하는 일은 꿈 같은 이야깁니다.

외국의 경우에도 이렇게 양육비 다툼이 발생하는 건 마찬가지인가봅니다. 하지만 국가가 나서서 양육비 지급이 반드시 이행되도록 강제하고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양육비가 곧 아동의 생존권과 직결된다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합의됐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식을 나몰라라 하는 부모는 '나쁜 부모'로 여기는 여론도 한 몫 한답니다.) 국가가 양육비를 대신 지급하고, 상대 배우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해 받아내는 방식을 쓰거나, 양육비를 지급하도록 강제 조치를 쓰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양육비'는 이혼한 부부들 간의 문제, 개인적인 채권 채무 관계로 보는 인식이 강합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양육비 상담과 소송 지원, 판결 이행을 전담하는 기관을 설치하자는 법안이 올해 초 발의됐지만, 국회에 발이 묶여 있습니다. 부처 간, 정당 간 입장 차이가 있기 때문이겠지만 당사자들의 현실을 헤아려 하루빨리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원스톱 서비스 센터가 생겨야 할 것 같습니다. 단순히 이혼한 부부 간의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그 자녀들의 생존권 보장 차원에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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