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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희망아기, 너를 잊지 않는다" NYPD, 22년의 약속

1991년 뉴욕 장기미제살인사건의 극적인 결말

[월드리포트] "희망아기, 너를 잊지 않는다" NYPD, 22년의 약속
   허드슨강변에서 발견된 아이스박스..부숴진 영혼

박진호 월드리포트
 사건이 발생한 것은 1991년 7월, 뉴욕 맨해튼 서쪽 허드슨파크웨이 고속도로변 강물 위에 아이스박스 한개가 떠내려왔다. 그 안에서 어린 여자아이의 시신이 발견됐다. 성폭행을 당한 뒤 목이 졸려 숨진 것으로 판명됐다. 뉴욕경찰은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지만 그 소녀의 신원을 밝혀내지 못했다. 아이는 영양실조 상태였다. 심한 학대를 장기적으로 당해온 것이 확실했다. 수사 2년이 지나 담당인 맨해튼 34경찰서 형사대는 소녀를 브롱스의 공동묘지에 묻었다. 형사들은 아기에게 '희망아기'라는 이름울 붙여줬다. 주머니 속의 돈을 모아 세운 묘비에는 '희망아기 잊지 않는다'라는 문구와 함께 신고 전화번호를 새겨 넣었다.

  어느 날 걸려온 결정적 제보..충격적인 사건 전말
 
 이 사건은 영구미제 사건으로 뉴욕 경찰의 파일에 계속 남아있었다. 그런데 22년이 지난 지난 주 초에 갑자기 제보가 들어왔다.  경찰에 들어온 신고도 막연한 내용이었는데 "아주 오래전에 친구로부터 자신의 여동생이 살해당한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경찰은 그 말을 했다는 언니를 찾아냈고 결국 살해된 소녀가 당시 4살인 멕시코계의 '안젤리카 카스틸로'라는 것을 밝혀냈다. 제보로 확인된 것은 소녀의 신원 뿐이었지만 수사는 급진전됐다. 경찰이 가족관계를 파악하면서 전모가 들어난 것이다.

박진호 월드리포트
 범인은 어이없게도 소녀의 친척이었다. 안젤리카는 당시 부모가 이혼한 상태에서 사촌 고모집에 맡겨졌는데 바로 사촌 고모의 남동생이 범인이었다. '콘라도 후아레스', 현재는 52살, 당시는 30살의 남성으로 누나집을 방문했다가 안젤리카를 보고 범행을 저질렀고 아이가 소리를 치자 목을 졸라서 살해하고 말았다. 사람들을 더 경악시킨 것은 안젤리카를 맡아 키웠던 범인의 누나인데 동생과 함께 시신을 아이스박스에 넣어서 강에 버렸고, 소녀의 아빠가 찾을 때는 가출했다고 둘러댔다. 생활고에 시달렸던 부모도 실종신고를 하지 않는 바람에 경찰은 소녀의 신원을 밝혀내지 못했던 것이다. 지난 11일에 뉴욕경찰은 용의자 후아레스를 체포했고 범행일체를 자백받았다.

  책임감과 헌신..결국 지켜낸 22년의 약속  

박진호 월드리포트
 당시 발견된 시신의 참혹함에 분노와 책임감을 느꼈던 경찰관들은 그 후 긴세월 동안 소녀에게 한 약속을 지켰다. 시신 발견 지역에서 유인물 살포와 탐문수사를 소규모지만 끈질기게 계속해왔고, 올해 7월에는 다시 우리 돈으로 1천3백만원 정도의 신고포상금을 내걸어서 언론보도로 이어지도록 했다. 이것이 결국 결정적인 신고가 들어온 계기가 됐다. 특히 22년 전 이 사건을 다뤘던 '제리 조지오'형사는 은퇴한 뒤에도 자진해서 영구미제 사건 수사팀에서 계속 일하며 범인을 추적해왔다. 이제 안젤리카의 묘비에는 드디어 본인의 이름이 새겨지게 됐는데 뉴욕경찰은 성명을 통해 '억울하게 숨진 어린 영혼에게 정의가 무엇인지 보여주게 돼 다행'이라고 밝혔다.

박진호 월드리포트
 최근 인종차별적 불심검문과 과잉대응 등으로 숱한 비난을 받았던 뉴욕경찰은 모처럼 박수를 받고 있다. 범죄의 절대량이 많은 미국인 만큼  장기미제 사건도 여전히 많다. 이번 범인검거는 우연하고 극적인 요소가 많기는 했지만 뉴욕경찰의 노력이 뒷받침된 것은 분명하다. 한국과 수사시스템에서 뭔가 큰 차이가 있다기 보다는 범인 검거에 쏟는 노력과 예산, 그리고 체계화된 과학적 수사 시스템이 숨은 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돌아보는 '살인의 추억'..NYPD의 노력

 피해자가 어린 소녀라는 점에서 정의감을 가진 경찰관들이 강한 책임감을 느끼며 수사에 임해왔고, 미제사건이지만 당시의 사건자료를 잘 보존하면서 훗날에 대비하는 시스템, 또 일회성이 아닌 장기미제사건 수사팀을 고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점, 여기에 사건 15년 후, 20년 후 주기적으로 계속해서 피해자의 DNA 샘플을 채취하고, 언론에 공론화시키면서 제보를 유도한 점이 그렇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한국의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2006년 결국 이 사건은 공소시효가 지났다. 최근 5년 동안 공소시효를 넘긴 국내 살인사건은 12건에 이른다. 장기미제사건 해결은 쉽지 않다. 우리 경찰의 시스템과 수사능력을 탓하자는 말이 아니다. 다만 희생자들에게 정의를 보여줄 수 있는 소망을 버리지 않는 것, 이번 사건에 보인 뉴욕 경찰관들의 열정과 인내력을 보면서 범인 검거의 희망을 잃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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