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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불꽃놀이의 과학…과학의 예술

[취재파일] 불꽃놀이의 과학…과학의 예술
저는 불꽃놀이를 매년 즐길 줄만 알았지, 그게 뭘 터트리는 건지는 늘 의문의 대상이었습니다. 그저 해변에서 밤하늘로 쏴 올리는 폭죽 닮았겠거니, 짐작해왔을 뿐입니다. 한강 바지선에 올라가, 불꽃의 재료가 되는 화약을 처음 봤을 때는 그래서 어색했습니다. 그렇게 못 생겼을 줄이야. 불꽃의 아름다운 이미지가 그것의 본디 모습을 상상하는데도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화약은 ‘타상연화’라고 부릅니다. 수박 같습니다. 그저 둥그렇습니다. 추진제 화약 때문에, 구의 아래쪽은 약간 불룩합니다. 이게 빛은 내지 않고, 가스 추진력만 내면서 밤하늘을 올라갑니다.

한강에서 터트릴 수 있는 가장 큰 타상연화는 12인치짜리입니다. 발사대에 12라고 적혀 있습니다. 지름이 30cm 정도 됩니다. 10kg이 조금 더 나간다고 합니다. 더 큰 화약도 많아서, 지름이 80cm가 넘는 것도 있습니다. 이런 건 터트리면, 지름이 무려 500m에 달하는 불꽃이 만들어집니다. 바람이 불면 구경꾼들이 위험해지기 때문에 한강에서는 터트리지 못합니다. 부산 앞바다에서 펼쳐지는 불꽃의 향연에는 아마 가능할 것입니다. 한강용 12인치짜리는 지름 250m 정도로, 불의 꽃을 수놓습니다.

불꽃이 터지는 높이도 계산돼 있습니다. 12인치짜리는 고도 250m 정도에서 터진다고 합니다. 고도 250m에서 지름 250m의 불꽃이 생기면, 우리 눈으로부터 100m 이상 안전거리가 확보되는 셈입니다. 불꽃이 그 높이에서 터지는 비밀은 타상연화에 들어가는 도화선의 길이에 있습니다. 타상연화가 하늘로 펑 솟아오를 때 도화선도 타들어가기 시작하는데, 이게 길면 그만큼 늦게 터지고, 짧으면 금방 터지는 겁니다. 도화선은 타상연화 겉으로는 보이지 않고, 안에 묻혀 있습니다.
불꽃_500
타상연화를 만드는 건 아직도 수작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내부를 보여주려고 이곳저곳 알아봤지만 국내에는 만드는 곳이 없습니다. 100% 수입입니다. 서울 불꽃축제에 쓰인 타상연화도 그렇습니다. 일본과 중국에서 들여온 것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화약을 함부로 분해하지 못하고, 내부 모습을 CG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겉모습은 수작업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게 사실입니다. ‘옥피’라고 부르는 종이를 덕지덕지 발라놨습니다. 이게 화약을 단단하게 감싸고 있어야, 화약이 폭발할 때 반작용의 힘으로 불꽃이 크고 동그랗게 됩니다.
불꽃_500


타상연화 안에는 낭만적이게도 ‘별’이라고 부르는 작은 화약이 또 있습니다. 새끼 화약입니다. 별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불꽃의 모양이 결정됩니다. 8뉴스에서는 구의 형태로 2중 배치한 별이 두 겹의 국화 불꽃을 내는 사례를 소개했습니다만, 불꽃의 모양은 훨씬 다양합니다. 일본은 별을 정교하게 배치해서 유명 캐릭터 ‘헬로키티’를 똑같이 흉내 낸 불꽃도 만들었습니다. 놀랄 정도로 닮았습니다. 헬로키티 수염도, 리본까지 나타납니다. 정말 아름답습니다. 다만 화약이 터지면서 사람 눈에 헬로키티 얼굴이 정면으로 나오도록 하는 것은 아직 우연에 의존하는 것 같았습니다. 상당수가 비스듬하게 터져서 얼굴을 100% 감상할 수 없습니다.

이 문제는, 한국 특유의 불꽃놀이를 개발 중인 사람들에게도 고민거리일 것입니다. 한화는 태극, 저고리, 부채, 호랑이 불꽃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아직 완성 단계는 아닙니다. 제가 봤을 때 태극과 저고리, 부채 불꽃은 그럴싸하고, 호랑이는 가다듬어야 할 것 같습니다. 호랑이가 토끼처럼 보입니다. 문제는 헬로키티처럼 관객 눈에 목표한 이미지가 정면으로 보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꽃으로 ‘글자’를 만들 때 더욱 중요해집니다. 한화는 내년 아시안게임을 목표로 ‘아, 시, 안, 게, 임’이라는 한글 불꽃을 개발하고 있는데, 지금은 글자를 똑바로 세우기가 힘든 상태입니다. 글자가 밤하늘에서 막 드러누워서, 금세 사라지는 불꽃 글자를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별의 성분도 재미있습니다. 좁쌀과 열매 씨앗이 주재료입니다. 여기에 화약을 섞어서 반죽합니다. 연출하고 싶은 색깔에 맞게 금속 성분을 배합합니다. 요즘에는 분홍색이나 보라색도 쉽게 만들어냅니다. 이론적으로는 이것저것 섞으면 모든 색깔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것이 하늘에서 터질 때 안정적인지가 검증되지 않아서, 색깔은 사실 제한돼 있습니다. 별에 마그네슘이나 철 같은 조명제를 섞으면 한층 눈부신 빛을 연출할 수 있고, 알루미늄 가루나 과염소산나트륨을 넣으면 폭발음이 웅장해집니다. 여의도에서 터트리는 불꽃 소리를 직선거리로 5km 떨어진 SBS 사옥에서 들을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불꽃을 음악과 버무리는 과정은 컴퓨터로 제어됩니다. 음악을 먼저 선택하고, 그 다음 다양한 불꽃을 음악 박자에 맞춰 배열하게 되는데, 폭발 시점을 100분의 3초까지 정교하게 맞춘다고 합니다. 불꽃놀이 디자이너가 이걸 총괄합니다. 불꽃놀이가 일단 시작되면, 이분들은 팔짱 끼고 지켜봐도 됩니다. 전용 프로그램이 음악과 함께 돌아가면서, 예정돼 있던 타상연화가 하늘로 착착 올라가 꽃밭을 만듭니다. 알고 보면 그 꽃밭은, 타상연화 속에 별을 정교하게 배열해 폭발시키는 물리와, 다양한 금속을 조합해 눈부신 빛을 직조하는 화학이 결합한, 과학의 예술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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