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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추석 꽉 막힌 고속도로…집에 빨리 가려면?

[취재파일] 추석 꽉 막힌 고속도로…집에 빨리 가려면?
추석입니다. 비행기나 기차, 배가 아니라면 고속도로를 타야 합니다. 막히는 줄 알면서도, 그래도 빠르다는 생각,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출퇴근길 막히는 길도 그렇습니다. 막혀도 거기로만 몰립니다. 진짜, 그나마 빠르기 때문입니다. SBS 보도국이 있는 서울 목동과 제 출입처가 있는 과천정부청사를 오간 경험칙도 마찬가지입니다. 막혀도 올림픽대로, 노들길이 낫습니다. 이유는, 신호등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호등은 도착 시각을 생각보다 꽤 늦추게 만드는 주범입니다. 차가 미적미적 30~40km/h로만 달려도, 신호 대기 시간 2분이면 1km~1.2km를 갑니다.

고속도로도 신호등이 없어서, 국도보다 어쨌든 빠릅니다. 물론 차로도 많습니다. 막히는 길, 굳이 돈 내고 타는 이유입니다. 근데 정체는 늘 희한한 현상입니다. 병목 구간이나, 통행량 많은 분기점도 아닌데, 잘 가다가 막힐 때가 있습니다. 가다 보면 또 어느 순간, 스르륵 정체가 풀리곤 합니다. 머릿속으로 사고 실험을 해봅니다. 한 차로에 차량이 아무리 늘어나도, 모두 같은 속도로 마음을 모아 달린다면 막힐 일이 없습니다. 물론 차간 거리가 줄어드니까, 그만큼 속도는 느려질 테지만 말입니다. 이건 이론이고, 실상은 꼭 막힙니다. 도대체 정체의 원인이 모호하다는 뜻에서, 이런 현상에는 ‘유령정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유령정체는 오래 전부터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어왔습니다. 한때는 도로의 차량 흐름을 액체로 간주해 연구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가상의 도로에 차량 대수를 변수로 넣어가면서 언제부터 정체가 시작되는지 연구가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이현근 연구교수가 2011년 이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궁금했던 것이니, 생활 밀착형 연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도로 정체의 과학입니다.

지난 10일 고등과학원을 찾았습니다. 논문을 썼던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 다행히 남아있었습니다. 컴퓨터 화면을 가로지르는 선들이 많습니다. 가상의 도로라고 했습니다. 60km 길이의 1차로 고속도로입니다. 물론 신호등은 없습니다. 연구진은 여기에 도로 1km당 차량을 10대, 20대, 30대 이런 식으로 투입할 수 있습니다. 차량을 투입하면 결과가 나와야겠죠. 결과는 1차로의 도로가 1시간에 몇 대의 차량을 통과시킬 수 있는지가 나옵니다.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차량은 도로 1km에 20대를 투입했을 때 가장 많은 통행량이 나타났습니다. 1시간에 2,200대 정도 됩니다. 이상적인 통행량이고, 설계상 고속도로의 최대 통행량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고속도로에 나가서 통행량을 계산해 보면, 1시간에 2,200대 보내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역산하면 2초에 1.2대 꼴인데, 차량들이 아주 규칙적으로 70~80km/h 정도 달려줘야, 2,200대에 달할 수 있게 됩니다. 이건 1차로 도로의 시뮬레이션이어서, 현실의 차로 변경은 반영되어 있지 않습니다.

[취재파일] 추석


그럼 차는 언제부터 막힐까요. 1km당 34대까지는 괜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론이 아닌 현실에서, 모두가 한 마음으로 등속 주행을 하는 게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차량을 한 대씩 늘릴수록, 시간당 통행량 그래프는 급전직하로 떨어집니다. 차가 막히기 시작한다는 얘기입니다. 1km당 차량이 35대를 넘어서기 시작하면, 모두 함께 하는 등속 주행은 희망사항이 됩니다. 컴퓨터 화면에서는 일부 구간에 빨간 줄이 생기기 시작하고, 한 번 시작된 가상의 정체는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차량이 km당 50대에 달하면, 통행량은 1시간당 1,000대를 조금 넘습니다. 최대 통행량의 절반도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차는 거북이 걸음을 하게 됩니다.

의문은 남습니다. km당 34대는 안 막히고, 35대는 막히는 이유가 뭐냐는 겁니다. 비밀은 운전 습관에 있습니다. 모든 운전자가 고속도로에서 전방을 주시하며 매끄럽게 등속 주행만 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입니다. 누군가는 꼭 차 안에서 한눈을 팔게 마련입니다. 전화 통화는 예사고, 옆 사람 보고 대화하기도 하고, 용감하면 면도도 하고, 한 손으로 SNS도 시도합니다. DMB도 조작해보고, 운전하다 보면 내비게이션도 꼭 만져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연구진은 그래서, 시뮬레이션에 투입하는 가상의 차량에 이러한 인간의 현실적인 특성을 반영했습니다. 차가 잘 달릴 때는 덜 하지만, 속도가 느려지면 딴짓을 더 많이 하도록 설계한 것입니다.

km당 34대와 35대의 차이가 그것입니다. 가상의 차량은 엉뚱한 짓을 하다가 실제 운전자처럼 앗, 하면서 브레이크를 갑자기 밟게 마련인데, 후방 차량으로 퍼지는 그 감속의 파동을 흡수할 수 있느냐의 여부입니다. km당 34대는 살짝 밀렸다가 풀리면서 정체로 이어지지 않는 반면, km당 35대는 감속의 요동이 파도처럼 뒤로 확산되는 것입니다. 그 확산은 도로 정체로 직결됩니다. 정체 구간의 선두 차량이 앞으로 빨리 빠져나가면 정체가 자연스럽게 풀리는 것 아닌가? 싶겠지만, 뒤따라오는 차량이 신나게 정체 구간에 새로 진입하므로 정체 구간은 잘 없어지지 않습니다. 시뮬레이션에서도 한 번 생긴 빨간 줄은 사라질 줄 몰랐습니다.

진단을 했으니 처방할 차례입니다. 관건은 정체 구간에 신규 진입하는 차량을 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체는 그래야 풀리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운전자가 전방 500m에, 1,000미터에 꽉 막힌 구간이 있는지 없는지, 현재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는 겁니다. 만약 500m 앞이 막힌다는 걸 알면, 운전자는 액셀을 밟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고 절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당장 손해 보는 것 같아도, 실은 내 앞에 뭉친 도로를 풀어 모두가 씽씽 달릴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지금은 신나게 달리다가 빨간 미등이 잔뜩 몰려 있는 구간이 나타나면, 앗 비상등 깜빡 깜빡하고, 정체 구간과 한 몸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과학계에서는 바로 앞 전방의 정체 정보를 운전자에게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고속도로 정체 캡쳐


1차로 정체 시뮬레이션이 고려하지 못한 게 있습니다. 차로 변경입니다. 차로 변경은 운전자가 한눈을 팔다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는 것만큼, 도로 정체를 유발하는 운전 습관입니다. 내가 지나쳐가는 차량은 눈에서 금세 사라지고, 나를 앞서가는 차량의 잔상이 눈에 남기 시작하면, 이거 나만 손해 보는 거 아냐? 사람 심리가 그렇습니다. 당연합니다. 4차로인 고속도로에서 여러분이 달리는 차로가 가장 빠를 가능성은 1/4입니다. 반면 여러분의 차로가 가장 빠른 차로가 아닐 가능성은 3/4입니다. 3배나 높습니다. 운전자들은 그래서 손해 심리에 사로잡힐 가능성이 높고, 좌로 갔다, 우로 갔다, 그 1/4의 가능성을 위해 차로 변경에 열중하는 것입니다. 결과는 끔찍합니다. 갑자기 감속하는 차량이 시뮬레이션이 가정한 것보다 훨씬 늘어나면서, 푸른색 도로는 새빨간 도로가 되고 맙니다. 한 명의 이기심은 모두의 손해로 직결됩니다.

추석 때 고속도로 1km당 차량을 34대 이하로 제한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명절을 대비해 차로를 대폭 늘리면 좋겠지만 그건 또 낭비입니다. 도로는 보통 1년 가운데 85번째 통행량이 많은 날을 기준으로 설계한다고 하는데, 추석을 기준으로 설계하면 평소엔 다니는 차가 너무 적어서 예산을 낭비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그래서 정체를 피할 수 없다면, 운전할 때는 되도록 운전에만 집중하고, 실천이 어렵겠지만, 차로 변경은 자제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연히 1/4의 가능성에 당첨됐다면 그 순간을 최대한 즐기고, 3/4의 상황이라면 뭐 당연히 그런 거지, 자기 합리화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차가 잘 빠져도, 정체 구간의 꼬리에 새로 들어가게 될 수 있으니, 과속도 삼가야겠죠. 그게 가족을 만난 뒤 다 같이 집에 빨리 가는 길이라고, 과학은 알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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