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마술은 눈속임? 마술은 과학입니다

[취재파일] 마술은 눈속임? 마술은 과학입니다
카드 마술을 그렇게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습니다. 사실 눈앞에서 본 것 자체가 처음인 것 같습니다. 마술사가 민망할 정도로 자라목을 흉내 냈습니다. 목을 쭉 빼서 눈을 카드 앞에 댔습니다. 동행한 선배가 선택한 카드 A를 마술사가 받았고, 그걸 여러 카드 가운데 끼워 넣었는데, A는 어느새 카드 뭉치 맨 위에 올라와 있습니다. 카드 뭉치를 뒤섞어서 A카드를 맨 위로 올린 것도 아닙니다. 마술사가 잘 보시라고, 손을 슬로우 비디오로 움직였는데도, 카드가 순간 이동했습니다. TV에서 카드 마술에 입을 쩍 벌리는 아이돌 보고, 리액션 좀 하는데? 생각했는데, 제가 그러고 있었습니다. 박민수 마술사가 취재진을 만나자마자 보여준, 마술계 인사법입니다.

이런 카드 마술은 과학보다는 노력과 기술의 영역 같았습니다. 과학의 영역에 기댄 마술도 상당히 많습니다. 마술사들이 과학을 직접 연구하지는 않지만, 과학적 원리를 누구보다 잘 이용합니다. 마술은 특히 물리와 화학에 친해보였습니다. 각종 물리-화학적 원리가 마술 기법에 녹아 있습니다. 그 과학적 원리는 공연 구석구석에 숨어 있습니다. 관객은 실상 과학적 공연을 보고 놀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마술사들은 자신들의 과학적 방법을 알려주지 않고 관객을 즐겁게 만들 뿐, 관객을 적극적으로 속인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관객을 속이고 기망하는 건, 돈 놓고 돈 먹기의 야바위꾼들입니다. 과학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기 때문에, 마술 문외한도 조금만 연습하면 누구나 멋지게 연출할 수 있습니다.

[취재파일] 마술은


먼저 ‘캔 마술’입니다. 찌그러진 캔을 손을 안 대고 저절로 펴는 마술. 손으로 캔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면 알루미늄 캔이 저절로 쫙 펴지면서 원래 상태로 돌아갑니다. 이거 원리를 모르고 보면, 완전 신기합니다. 캔이 쫙 펴지는 소리에, 소름이 쫙 돋습니다. 최근 TV에서는 한 마술사가 여성 아이돌 앞에서 이 마술을 선보여 신비로움의 아우라를 얻었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일단 캔의 상단 1/3 지점에 작은 구멍을 뚫습니다. 송곳이 필요합니다. 그러고 캔을 눌러 찌그러트리면서 음료를 조금 따라냅니다. 뚜껑 부분은 보드마카로 칠해서 마치 뚜껑을 딴 것처럼 보이게 해야 합니다. 그 다음 관객 앞에 캔을 들고 가서, 손가락으로 구멍을 막고 슬슬 흔들면, 탄산이 팽창고, 캔이 소리를 내면서 펴집니다! 보드마카를 손가락으로 문질러 슬쩍 지우고, 캔을 딱! 소리 내면서 딴 뒤에 음료를 따르면, 오! 뭐야, 뭐야, 너 뭐야, 리액션이 시작될 것입니다.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캔을 너무 많이 찌그러트리면 안 됩니다. 얇은 캔이 찌그러지면서 균열이 생기고 미세한 구멍이 생기기 때문에, 마술을 시연할 때 그 구멍으로 거품이나 음료가 샐 수 있습니다. 실제로 최형배 마술사는 너무 많이 구긴 캔으로 마술을 시연하다가, 카메라 돌아가는 앞에서 음료가 두 번이나 새버렸습니다^^ 마술사도 작은 구멍에서 과학적으로 새는 고압의 탄산을 막지 못하는 겁니다. 또 캔을 너무 빨리 흔들면 구멍을 막았던 손가락이 미끄러지면서 음료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야 합니다. 구멍으로 음료를 너무 많이 따라내도, 팽창할 탄산의 양이 부족하기 때문에, 마술이 친구들 사이의 에피소드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취재파일] 마술은


다음은 숟가락 휘는 마술입니다. ‘마술 사기단’이라는 영화에서는 다른 방식을 쓰지만, 마술사들은 종종 형상기억 합금을 이용합니다. 저온에서는 펴진 상태로 있다가, 실온에서는 휘어진 원래 상태를 기억해 저절로 돌아오는 원리를 이용하는 겁니다. 그러니 과학 공연에 가깝습니다. 마술사들은 형상기억 합금 숟가락을 차갑게 만들어 손으로 펴고, 그걸 아이스박스에 넣어놓습니다. 공연 전에 꺼내서 서서히 온도가 올라가면 숟가락은 그냥 자기 알아서 구부러집니다. 세상을 뜨겁게 달궜던 유리겔라 염력의 실체입니다. 연기력이 일품이죠. 마술사들이 손가락으로 숟가락을 괜히 문지르는 게 아닙니다. 문질러야 온도가 올라가니까, 마술사들은 온도야 어서 올라가라~ 주문을 거는 셈입니다. 단, 숟가락을 너무 차갑게 보관하면, 초능력을 뽐내는데 시간이 지체될 수 있으니까, 적당이 냉각시켜야 합니다.

불을 붙이면 흔적도 안 남기고 타버리는 종이. 이른바 ‘플래시 페이퍼’도 널리 알려진 ‘마술=과학’ 기법입니다. 인화성 강한 용액에 특수 종이를 담갔다가 한 장씩 말려서 사용하는데, 마술사들은 대개 수입 제품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적신 채로 배송되고, 그대로 보관합니다. 말린 종이에 불을 붙이면, 갑자기 불이 확~ 일어나면서 재도 없고, 연기도 없고, 그냥 사라집니다. 유에서 무로. 교과서의 에너지 법칙을 거스르는 것 같습니다. 플래시 페이퍼는 그 자체가 마술이라기보다는, 공연 중간에 양념처럼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갑자기 일어나는 화염 때문에 부상을 당한 마술사도 한 둘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만큼 위험합니다. 정은선 마술사는 종이 재질과 인화성 물질이 뭔지 살짝 귀띔해줬지만, 아이들이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만큼 인터뷰는 사양했습니다.

[취재파일] 마술은


끝으로 마술의 고전 거울 상자입니다. 토끼를 넣으면 없어진 것처럼 보이는 상자인데, 요즘엔 어린이집에서 아이들한테 만들어보라고 하고, 거울의 원리를 가르쳐줄 정도로 널리 알려진 방법입니다. 인터넷에서도 그 원리를 쉽게 검색할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이 거울 상자의 원리를 이용해 대형 금고를 숨기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정도는 영화 예고편에도 나옵니다. 금고 숨기는 원리를 알았다고 영화가 재미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안심하고 보셔도 됩니다. 요즘 마술사들은 토끼를 상자에 넣되, 다른 원리로 숨긴다고 합니다. 진화한 기술은 취재진에게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관객이 열쇠의 비밀을 알아버리면, 마술사들은 새로운 열쇠를 만드는 식입니다.

앞서 캔 마술 정도는 마술 학원에서 ‘중급’ 정도 강의를 들을 때 가르쳐준다고 합니다. 저도 별다른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배운 만큼, 여러분도 무료로 사이버 강의를 들으셨으니, 마음껏 연습하시고 마술의 즐거움을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거울 상자나 플래시 페이퍼, 휘는 숟가락 등은 마술 도구를 판매하는 곳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습니다. 다만 캔 마술을 시도하는 마술사에게, 미소를 지으며, 탄산음료가 아닌 녹차 캔을 건넨다거나, 커피 캔을 건네는 용의주도한 방해는 하시면 안 됩니다. 아이들 앞에서 숟가락을 구부리려는 마술사에게, 집에 있는 놋쇠 숟가락을 주고 염력을 요구하셔도 안 됩니다. 플래시 페이퍼 갖고 나온 마술사에게 A4 용지를 줘서도 안 되겠죠. 마술이 사라지면, 세상은 그만큼 삭막해지고, 즐거움의 총량도 줄어들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