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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얼굴이 사라진 특파원들

점입가경…재갈물린 이집트의 언론들

[월드리포트] 얼굴이 사라진 특파원들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이 쫓겨나고 거리를 피로 물들인 학살의 기억이 벌써 가물가물해 지고 있습니다.
이집트 무르시 대통령 축출 2개월이 지났고 탱크와 장갑차로 무장한 이집트 군은 ‘질서’와 ‘치안’을 위해 이집트 전역을 강력히 통제하고 있습니다.

이집트 군부가 대통령을 끌어내린 쿠데타를 단행한 가장 큰 명분은 국가를 위기에서 구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명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민주주의의 척도로 평가되는 가장 일반적인 잣대는 ‘언론의 자유’입니다. 거창하게 언론의 사명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언론의 자유는 누구나 자기 생각을 말할 자유를 지칭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집트의 언론 현실은 군부가 내세웠던 명분과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고 있습니다.

얼굴이 사라진 알 자지라 특파원들

중동의 CNN이라 불리는 알 자지라. 이집트 사태 내내 군부의 쿠데타를 가장 강력한 어조로 비판해 왔습니다. BBC와 CNN 등 내로라 하는 곳에서 스카우트된 영어채널 기자와 앵커들은 군부 동조자들을 위성을 연결해 직설적이고 성역없는 질문으로 곤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군부의 기자회견 장에서는 일부 이집트 기자들에 의해 취재진이 쫓겨나는 일까지 벌어졌죠.  군부와 지지자들에겐 눈엣가시 같은 존재들인게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현장을 누비던 알 자지라 기자들이 사라졌습니다.  저의 트친들이자 가끔 취재현장에서 마주치기도 했던 샤린 타드로스와 니콜 존스턴 등 유명한 알 자지라의 여성특파원들은 요즘 SNS는 물론 방송에도 얼굴을 내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신 요즘 알 자지라 방송을 보면 카이로 특파원들의 안전을 고려해 이름과 얼굴을 공개할 수 없다며 전화 목소리로만 간신히 현장 상황을 리포트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단엔 특파원 이름 대신 “VOICE OF CORRESPONDENT” (특파원 음성) 라는 자막이 박혀 있습니다.

이집트 군부는 무르시 정권을 지지했던 이슬람 계열의 방송국들을 대거 폐쇄 조치 했습니다. 이 때 알 자지라의 카이로 사무실까지 한꺼번에 폐쇄명령을 내렸고 기자 등 3명을 추방하기도 했습니다. 군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실제 군부는 이집트 곳곳에서 알 자지라의 위성신호를 방해해 시청 자체를 차단하기도 했다고 알 자지라는 폭로했습니다. 

군사정권의 입이 된 이집트 언론들

윤창현 취파 시리아
반면 이집트 언론들을 보면 마치 9.11 테러 직후의 미국 주류 언론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당시 부시 독트린을 철저히 옹호하며 우리 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논리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을 게임처럼 생중계하며 부추겼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때 CNN과 FOX 등 대다수 미국언론들은 “AMERICA UNDER ATTACK” 이라는 자막을 사용하고 이라크 전선을 비춰주며 화면에 성조기를 배치하는 등 이른 바 ‘국익’ – 그게 과연 궁극적으로 미국의 국익이었는 지 부시정권의 이익이었는 지 여부의 질문은 주류언론에선 철저히 배제됐었습니다.-을 내세운 전쟁 마케팅으로 톡톡히 재미를 봤죠.

지금 이집트 방송들 보면 기가 막힙니다. 국영방송인 나일 TV엔 “EGYPT FIGHTING TERRORISM” 이라는 자막이 고정돼 있고 민영방송들도 하나같이 “EGYPT UNDER ATTACK”같은 자막으로 권력을 박탈당한 이슬람 정권 인사들을 테러분자로 여론몰이하고 있습니다.

윤창현 취파 시리아
실제로 이집트에선 최근 시나이 반도에서만 70여명의 군경이 무장세력에게 희생당하고, 카이로에서도 내무장관의 목숨을 노린 폭탄테러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겉만 보면 이집트 군부가 주장하는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이 그리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집트 내 테러공격은 무르시 정권을 무력으로 끌어내린 지난 6월 군부 쿠데타 이후 급증하고 있습니다. 무르시 집권 1년 동안 시나이 반도에선 그 흔하든 가스관 폭파 조차 거의 일어나지 않았죠.

스스로 재갈을 문 이집트 언론…질식하는 민주주의

윤창현 시리아
군부 스스로 초법적 행위를 통해 테러를 불렀고 이제는 자신들이 불러들인 것이나 다름없는 그 테러와 전쟁을 하겠다며 앞으로 오랫동안 극단과 극단이 부딪히며 이집트를 짓누를 수 밖에 없는 형국입니다.  보석 같은 나일강물 위의 유람선과 최고의 고대유적 피라미드 주변을 뒤덮었던 관광객들의 발길과 미소 대신 삼엄한 군과 경찰의 경계가 빈 자리를 채울 겁니다. 

많은 이집트 언론인들은 무르시 집권 시절의 낙하산 인사와 급격한 이슬람화에 불만을 드러내며 권력과 충돌해 왔습니다. 그래서 군부의 무르시 정권 축출에 많은 언론인들이 동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합니다. 자유로운 말과 글로 먹고 살아야 할 언론들이 스스로 재갈을 물고 앵무새가 돼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지난 달 14일 라바광장의 대학살에 많은 이집트 언론인들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뿐입니다. 이미 언론은 장악당했고, 수많은 거리의 죽음은 행위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새로운 권력의 입맛에 맞는 철저한 이중잣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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