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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내 차에 도청장치?"…미국 차 운행기록정보 논란

에어백 장착차량의 EDR 기록은 사생활 정보일까?

[월드리포트] "내 차에 도청장치?"…미국 차 운행기록정보 논란
    차 주인도 몰랐던 사고기록저장장치 'E.D.R'

  2년 전 메사추세츠 부주지사인 '티모시 머레이'는 차량 충돌사고를 냈다. 그는 경미한 부상을 입었다. 사고당시 과속은 아니었고 안전벨트도 매고 있었다고 경찰에 말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경찰은 머레이 부주지사가 사고 당시 100마일이 넘는 과속으로 달렸고 안전벨트도 미착용 상태였다며 벌점과 벌금을 부과했다. 증거로 제시한 것은 차량 계기판 뒤에 달려있는 작은 금속상자 안에 담긴 메모리 칩이었다.

  이 사례를 계기로 존재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게 된 장치는 바로 E.D.R (Event Data Recorder)이다. 논란이 시작되자 CNN은 폐차장에 있는 충돌사고 차량들에서 이 박스를 꺼내 분석작업을 해봤다. 전문가가 컴퓨터에 연결하니 사고 직전 수 초, 수 분 동안의 차량의 속도와 브레이크 작용 여부, 연료분사, 즉 가속 정도같은 자세한 운행정보가 구체적인 그래프로 표시됐다.

  이 장치는 '에어백 센서'라고 쓰인 상자 안에 포함돼있는데 바로 에어백이 터지기 위한 조건, 그러니까 사고 상황을 감지하는 센서 기능에 달린 메모리칩에 당시의 차량 상태가 저장되도록 한 부가적 장치로 출발한 것이다. 차량 소유주, 즉 소비자들 가운데 이 장치의 존재를 아는 경우는 많지 않았고 실제로 미국에서 팔리는 신형차의 96%에 달린 사실도 뒤늦게 알려지며 관심과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내 차에 달린 E.D.R 기록의 주인은 누구인가?

  문제는 대부분 차 주인들이 이 장치가 차 안에 있다는걸 모르는 상황에서 사고 발생 시 경찰과 보험사는 이 자료를 수집해 사고 정황을 파악하고 운전자의 과실을 따지는 증거로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차 주인이 스스로 이 장치의 기록을 해독하는 것도 역시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미 교통당국의 입장은 이 정보는 각종 교통사고 원인의 근거를 찾기위한 '공적 정보'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차 주인이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를 숨겨서는 안되니 경찰 등 공권력이 요청하면 공개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때도 각 주정부의 법에 따라 영장이 필요한 경우, 필요없는 경우로 구분하면 된다는 주장이다.

  소비자의 입장은 다르다. 일단 자신의 차 안에 있는 기록이니 차주인에게 소유권이 있는 것은 분명하고 공권력이 당사자에게 불리한 정보를 공개하라고 강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논란이 되는 것은  EDR 저장기록의 신뢰도이다. 저장된 기록이 반드시 맞다고 말할 수 있느냐는 문제이다. 법정에서 이 장치의 증거능력이 상황에 따라 논란이 될 수 있다. 미국 소비자단체는 "EDR 정보 사용에 법적, 제도적 제한장치가 없다는 점에서 사생활 침해의 문제가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했다. 결국 "이 기록의 주인은 과연 누구인가?"가 논쟁의 한 축을 이룬 가운데 '모든 차량에 EDR의 장착을 의무화하겠다'는 美 정부의 입장은 "달고 안 달고는 차주인의 자유가 아니냐?"는 또 다른 논란을 불렀다.

수입차 수리 블러


   비행기 블랙박스처럼 진화?…불붙는 감시논란

  EDR의 진화도 관심거리이다. 일부 차종의 경우엔 저장용량이 더 확대돼 수 초 동안이 아닌 장시간의 운행기록, 게다가 차량의 GPS 정보까지 저장되는 경우까지 발견된 것이다. 차 주인이 언제 어디로 차를 운전해갔다는 정보까지 기록된 셈이다. 해당 자동차업체는 '차량의 기능을 좀 더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기술적 목적을 위해 장착했다'는 주장이지만 차 주인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면 방대한 사생활 정보가 담긴 부품이 어디론가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이런 경우, 운전자의 음성이 녹음되지 않을 뿐 사실상 비행기 블랙박스와 유사한 기능을 하게 된다. 만약 누군가가 다른 의도로 내 차에 이런 장치를 달아놓았다면? 사생활 감시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고 있는 미국에선 이른바 '스파이 카(Spy Car)', '차량에도 블랙박스'란 제목의 보도가 이런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다.

 국내에도 에어백이 장착된 차량에선 사고 직전 5초 정도의 차량운행기록이 자동저장되는 장치가 달려있다. 단지 '5초'라는 것은 업계의 설명인데, 언젠가는 실제 5초가 맞는지 검증이 필요할 수도 있다. 미국처럼 실제로 재판 등에 사용되는 경우가 알려지지 않아서 그동안 그 존재는 부각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과거 이 장치가 관심을 끈 것은 이른바 '급발진'사건의 원인 규명에 활용할 수 있지 않느냐는 의견 때문이었는데 자동차 업계는 이 기록을 100% 신뢰할 수는 없다는 취지로 비적극적인 태도를 보였었다. 교통사고의 원인 조사가 더 과학화되고 있는 지금 한국에서도 E.D.R은 언제든 비슷한 논란을 부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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