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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쫓겨난 대통령을 위한 변명

무르시 정권 붕괴 2주…이집트는 지금

[월드리포트] 쫓겨난 대통령을 위한 변명
민주선거로 선출된 이집트의 첫 대통령. 무함마드 무르시는 이제 집권 1년 만에 강제 축출된 뒤 군부에 의해 강제 억류된 상태로 온갖 범죄 혐의로 수사를 받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무르시가 쫓겨난 지 2주가 지난 지금, 지지자들의 저항은 계속되고 있지만 이집트 언론과 시민들 사이에선 그리 주목받지 못하고 있고 갈수록 시위의 강도나 파급력도 떨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대로 라면 무르시에겐 권력독점과 민생파탄으로 축출된 무능력한 지도자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질 게 확실해 보입니다. 그런데 시민혁명 2년 여 만에 다시 시민들의 힘으로 최고권력의 지도가 바뀌는 격동의 파장이 조금씩 가라 앉으면서 특파원으로 상황을 지켜봐 왔던 제 머리 속엔 그냥 지나쳤던 여러 장면들이 하나의 거대한 퍼즐조각이 맞춰지는 느낌이 드는군요. 어쩌면 이집트 국민 절대다수의 지탄과 비난을 받고 있는 실패한 지도자에 대한 변명이 될 지도 모르는 생각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무르시 캡쳐_500


1> 혁명인가? 쿠데타인가?

무르시 집권 1년을 전후한 지난 달 말과 이달 초에 걸쳐 수백만 시민들이 거리에 나서 반정부 시위에 가담했던 상황만 본다면 무르시 정권에 대한 반감이 광범위한 대중 정서로 확산돼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최근까지도 외신기자인 저에게 이번 이집트 사태에 대한 평가를 요구하는 이집트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의 공통적인 질문은 ‘무르시 축출을 혁명으로 보느냐? 아니면 쿠데타로 보느냐?’는 것입니다. 대규모 시위와 민심이반 속에 결과적으로 집권세력이 축출됐으니 혁명이 분명하지 않느냐는 동의를 강하게 구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선거로 선출된 정부가 군부의 개입에 의해 전복됐고, 투표율이 낮았다 하더라도 국민투표로 확정된 헌정질서가 중단된 사태 자체는 분명한 쿠데타 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 지점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시민혁명으로 쟁취한 절차적 민주주의가 시민혁명 2년 여 만에 다시 군의 개입으로 왜곡되고 여기에 많은 국민들이 동조하면서 앞으로 어떤 민선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군의 막강한 영향력을 인정하거나, 타협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게 됐다는 점입니다.

‘투표의 권리’보다 ‘빵의 보장’이 시급했던 대다수 국민들에겐 지도자가 민선이냐, 군이냐는 지금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4.19 혁명 이후 극심한 혼란 속에 일어난 5.16 군사 쿠데타가 남겨놓은 뿌리깊은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떠올려 본다면 무바라크 축출 이후 2년 여만에 임기가 보장된 대통령을 쫓아낸 이집트 국민들의 선택이 만만찮은 역사의 부담으로 작용할 게 분명해 보입니다.

2> 이슬람 독재인가? 과도기적 선택인가?

무르시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이집트는 물론 외부에서도 정치적 기반인 무슬림 형제단을 중심으로 한 광범위한 이슬람 독재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실제로 헌법에 이슬람 색채를 강화하거나 언론과 공공기관을 이슬람 주의자들로 채워가는 등 이런 시도가 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논란의 정점을 찍은 것은 지난 해 11월의 이른바 ‘파라오 선언’이었습니다.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면서 의회의 입법권 등을 장악하려는 것이었는 데, ‘독재 회귀’ 논란을 불러 일으키며 무르시 정권의 신뢰도에 결정적 타격을 준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좀 차분히 돌이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선 반년이 다 되가는 당시 무르시 정권은 사실상 손발이 묶인 상황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최악의 경제난과 과거 청산 요구가 빗발치고 있었지만,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의회는 이미 법원에 의해 불법 판결을 받고 해산된 상태로 입법기능은 완전히 마비된 상황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상황을 풀어나갈 입법기능을 해야 했는 데, 그걸 대통령이 새 의회가 구성될 때까지 임시로 하겠다는 선언이었죠.

사실 당시 무르시의 대통령 권한 강화가 ‘파라오 선언’으로 비판받는다면 무르시를 축출하고 들어선 과도정부 하의 모든 조치 역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헌정질서가 중단되고 입법기능은 여전히 마비된 상태에서 결국은 과도정부가 모든 것을 풀어나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은 무르시 때와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집트 국민들과 언론들은 무르시의 시도는 ‘독재 시도’로, 과도정부의 시도는 어쩔 수 없는 ‘과도기적 선택’으로 인정하는 이율배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비판의 겉모습은 ‘독재 회귀에 대한 우려’ 였지만 속내는 그것의 민주적 집권 여부와는 상관없이 ‘이슬람 세력에 대한 생리적 거부감’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어 보입니다.
무르시 캡쳐_500

3> 무능력의 결과인가? 계획된 혼란인가?

무르시 정권은 시민혁명 이후 극도의 혼란 속에 들어섰습니다. 이집트 경제는 완전히 망가져 있었고 강력범죄가 들끓는 무법천지였습니다. 문제는 집권 기간 내내 이런 상황들이 점점 꼬여갔습니다.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면서 주요 외환수입원인 관광수입이 급감했고, 막대한 재정정자 속에 파탄난 민생을 복원해야 하는 무거운 숙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르시 정권은 숙제를 잘 하지 못했습니다. 정확히는 백약이 무효인데다, 손 쓸 수단도 마땅치 않은 사면초가의 상황이었다고 하는 게 맞을 겁니다.

악화일로의 치안문제는 시민혁명 이후 무바라크 정권 시절부터 권력의 시녀노릇을 해 온 공권력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태에서 경찰들까지 시도 때도 없이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파업에 가담하는 지경이었습니다. 경제 역시 앞으로는 ‘빵을 달라’는 시민들의 민생고에 직면해 있었고, 뒤로는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으려면 서민들에 대한 각종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고 재정적자를 줄이라는 요구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빵을 달라는 시민의 요구를 충족하자니 IMF로부터의 돈줄이 막힐 지경이고, IMF의 요구를 수용하자니 시민의 요구를 배반해야 하는 진퇴양난이었습니다.

이 와중에 결정적으로 무르시 정권에 타격을 준 건 전국적인 전력난과 기름파동그리고 생수파동이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정전과 몇 시간을 기다려 겨우 한 통을 채울 수 있는 기름파동으로 산업생산과 교통이 엄청난 차질을 빚었고 참고 있던 중산층까지 대거 무르시 정권에 등을 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하지만 무르시가 축출되고 난 뒤 이런 전력난과 기름파동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고 물을 정도로 정말 거짓말처럼 사라졌습니다. 파동 당시에도 무르시 정권은 일부 공급업자들의 사재기와 전기 도둑, 또 정부 반대자들에 의한 고의 정전 가능성 등을 거론해 왔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병원등 필수 시설에 무차별적으로 전기 공급을 중단해 환자가 사망하는 사건에 책임을 물어 일부 현장 인력들을 체포하기도 했습니다. 거짓말처럼 전력난과 기름파동이 사라지고 난 뒤 지워지지 않는 의문은 무르시가 물러난 뒤 기다렸다는 듯 갑자기 상황이 호전될 이유가 뭐냐는 겁니다.

여전히 국가부도 위험이 최고 수준이고 경제난도 단기간에 좋아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반 무르시 세력에 의한 조직적인 계획된 혼란이 아니었냐는 의구심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실제 이집트 GDP의 3~40%는 무르시 축출에 결정적 역할을 한 군부에 집중돼 있고, 군은 자체 주유소망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이집트 내 유류 공급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전방위적으로 확산된 이집트 내 시장 혼란은 공급과 유통망을 장악한 이집트 내 자본가들의 음모가 작용한 결과라는 시각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음모론을 접하고 나니 문득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이미지는 무르시 집권 이후 만난 이집트의 사업가들이나 부유층들은 하나같이 ‘머지 않은 미래에 혁명이 다시 날 것’이라고 확신에 가까운 말들을 했다는 점입니다. 그들의 지나간 말들이 무슨 계획을 담고 있었던 것인지는 지금은 알 길이 없지만, 적어도 지난 1년 간의 과도한 혼란이 순수하게 ‘무르시 정권의 무능력’ 때문이었는 지, 아니면 ‘계획된 혼란’이었지는 앞으로 역사의 진전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사실이 드러날 수 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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