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데스크칼럼] 반년 전 '멋진 승복'은 어디갔나?

[데스크칼럼] 반년 전 '멋진  승복'은 어디갔나?
선거에는 졌지만 나라를 바꾼 인물들이 꽤 많다. 이른바 '대통령이 될 뻔한 사람들'(Almost President)인데, 미국 작가 스콧 패리스는 이들의 중요성을 패배 승복에서 찾았다. "사회 양극화가 심각하고 국민이 분열돼 있을수록 사람들은 상대편의 말을 일절 믿지 않으려고 귀를 막는다. 이럴 때 선거에서 패배한 후보의 승복 연설은 지지자들의 마음을 돌리는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훌륭한 승복이 국민 통합을 위한 다리를 놓아줄 수 있다는 얘기다.

문재인
지난 해 12월 19일 밤 11시55분.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국민들에게 멋진 승복 연설을 했다. 문 후보는 "패배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저의 실패이지 새 정치를 바라는 모든 분의 실패가 아닙니다. 박근혜 후보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국민들께서도 이제 박 당선인을 많이 성원해 주시길 바랍니다"라며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금껏 우리나라에 없었던 진정한 승복 연설의 새장을 열었다는 평가가 이 때 나왔다. 

박 당선인
박근혜 당선인은 다음 날 오전 당사 기자회견에서 "저나 문 후보 모두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한 마음만은 같았다고 생각한다. 국정운영에서 이 마음을 늘 되새기겠다"고 말했다. 이어 오후 5시쯤 문 후보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치열하게 선거를 치렀지만 다 국민의 삶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선택받고자 함이 아니었겠느냐"며 "앞으로 국민을 위해 협력과 상생의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강조했다. 이에 문 후보는 "기대가 크고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화답했고, 다음 날 영등포 민주통합당사에서도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저는 지금 받은 사랑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한국의 역대 대선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과거의 패배 인정 연설은 자기 변명과 합리화에 가까웠다. 눈물 흘리면서 정계은퇴 선언을 했다가 결국 다시 돌아오는 식이었고, 승리 후보에 대한 진정함이 깃든 축하의 모습도 찾기 힘들었다. 선거로 인한 분열을 통합하자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세력으로 고착화시키고 전투 모드를 다지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국민통합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랬기에 문 낙선자의 깨끗한 승복은, 절차적 민주주의에 있어서 한국이 한층 더 세련되고 승패에 승복하는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평가를 불러왔다. 당시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지지자들의 아픔을 다독이는 '힐링'의 역할도 톡톡히 했다. 패자의 품격이 돋보였다. 그런데 불과 반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승복은 다시 불복으로, 치유는 아픔과 상처로 덧나는 형국이다.

훌륭한 패배는 더 나은 정치적 발판이 될 수 있다. 의연하고 담담한 모습이 유권자들에게 각인되면 정치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2008년 민주당 경선에서 패배한 힐러리 클린턴은 "나는 민주당원으로서, 상원의원으로서, 무엇보다 자랑스러운 오바마 후보의 지지자로 이 자리에 섰다"고 연설해 환호를 받았다. 주기적 '역병'처럼 도지는 대선 '불복병'의 치료 특효약은 반년 전의 멋진 승복 정신 뿐이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