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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유족의 아름다운 기부…대성당의 타이타닉호

뉴욕을 슬프게 한 美애스터 가문의 안타까운 자취

[월드리포트] 유족의 아름다운 기부…대성당의 타이타닉호
뉴욕의 친절한 부자..애스터 가문

뉴욕 맨해튼에서 '월도프 아스토리아'는 VIP들이 이용하는 특급호텔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방미 중 이곳에서 머물렀다. 이 고급 호텔의 주인은 미국의 오랜 부호 가문인 애스터 가문이다.  17세기 독일계 이민자인 '존 제이콥 애스터'는 당시 북미 대륙의 최고 특산품인 모피 무역을 통해 엄청난 부를 긁어모았고 후손들은 뉴욕 부동산 투자를 통해 그 부를 이어갔다.

많은 미국 부호가문이 그렇듯 애스터 가문도 서민들의 인심을 얻는데 소홀하지 않았다. 애스터 가문의 마지막 장손인 빈센트 애스터는 1959년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부인 '브룩 애스터' 여사는 남편의 유지를 따라 활발한 기부와 사회봉사로 뉴요커들의 칭송을 받았다. 브룩 여사가 사회에 환원한 재산만 2억 달러로 우리 돈 2천2백억원을 넘는 규모였다. 하지만 미국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상징이던 애스터 가문은 최근 큰 추문에 휩싸였고 오랜 명예에 손상을 입고 만다.

상속을 둘러싼 음모..무너진 명가의 전설

이달 초 미국과 뉴욕 언론은 연일 톱뉴스로 애스터가의 비극을 보도했다. 바로 브룩 여사의 아들인 앤서니 마셜이 89살의 나이로 징역형을 살게 된 것이다. 어찌된 일일까? 얘기는 약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앤서니는 따지고 보면 애스터가의 직계 후손은 아니다. 어머니 브룩 여사는 빈센트 애스터와의 결혼이 3번째였고 앤서니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다. 하지만 앤서니는 수동적 인생을 살지 않았다. 그는 미국의 대사로 여러 국가에서 근무했고 브로드웨이의 공연 제작자로 토니상을 받기도 했다.

비극은 브룩 여사가 알츠하이머 병에 걸리면서 시작된다. 아들 앤서니는 변호사와 공모해 어머니의 재산을 노렸다. 정신이 혼미한 어머니를 난방이 안되는 허름한 아파트로 옮기고 심지어 의사의 진료도 가로막은 사실이 재판에서 드러났다. 그리고 2004년 변호사와 짜고 어머니의 유언장에 손을 댔고 1억9천8백만 달러 규모의 어머니 재산의 관리자로 애스터 가문의 상속자가 된다.

그의 패륜적 행동은 다름아닌 자신의 아들의 고소로 드러나게된다. 뉴욕데일리뉴스의 보도로 재판이 시작됐고 어머니 브룩 여사는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2007년 쓸쓸히 생을 마친다. 3년 여의 법정공방 끝에 앤서니는 지난달 21일 유죄가 확정돼 법정구속됐다. 징역 3년 형, 뉴욕주 교도소에서 4번째로 나이 많은 수감자가 되며 애스터 가문의 명예도 큰 손상을 입었다.

100년 전 타이타닉호 참사와 애스터 가문의 자취

이번엔 다시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앤서니 마셜의 의붓 할아버지인 존 제이콥 애스터 4세가 살던 시대이다. 선조들의 부를 이어받아 뉴욕의 최대부호로 꼽히던 애스터 4세는 부인과의 사이가 좋지 못했고 결국 이혼하고 만다. 그런데 재혼한 여인은 겨우 18살의 마들랜 애스터였다. 그녀는 당시 애스터 4세의 외아들인 빈센트 애스터보다 한살이 어렸다. 뉴욕 사교계의 구설에 오른 애스터 4세는 아름다운 새 신부와 유럽 장기여행에 들어간다. 그러던 중 부인 마들랜이 아이를 갖게 됐고 '아이는 미국에서 낳고 싶다'는 부인의 희망에 귀국길에 오르는데 이때 부부는 타이타닉호에 탑승한다. 엄청난 비극에 휘말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운명의 순간, 애스터 4세는 여자와 아이만 구명보트에 탈 수 있다는 규칙에 따라 임신한 마들랜을 대피시킨 뒤 자신은 최후를 맞았다. 서른 살이 넘는 나이 차이로 눈총을 받았었지만 마들랜은 남편 애스터가 남긴 유산도 물려받는다. 전처와의 사이에 낳은 빈센트 애스터가 최대 상속자였지만 그 유산의 일부라고 해도 엄청난 재산이었다. 그녀는 자신 만의 방식으로 남편을 기리게 된다. 바로 당시 건립 중인 뉴욕 맨해튼의 최대 성공회 성당에 엄청난 건립자금을 기부한 것이다.

대성당에 새겨진 타이타닉..아름다운 기부의 흔적

'세인트 존 더 디바인 성공회 대성당', 뉴욕 최고의 명문대학인 컬럼비아대 근처에 자리잡은 이 성당은 성공회 성당으로는 세계 최대규모를 자랑한다. 이 성당은 1892년에 지어지기 시작했는데 1941년에 공사가 중지되었다. 그후 다시 1979년부터 조금씩 공사비를 모금해 천천히 공사가 진행됐지만 2001년엔 큰 화재가 발생하고 만다. 지금도 성당의 하단 부분에는 검게 그을린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공사는 비잔틴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시작됐지만 크고 웅장한 스타일이 유행하던 시기여서 중간에 설계가 고딕양식으로 바뀌었다.

성당 외경을 천천히 감상해보면 아름다운 고딕양식에 로마식의 아치까지 만들어져 '미국 스타일 건축의 종합판'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많다. 미국적인 느낌은 바로 이 성당의 진수라 할 수 있는 스테인드 글라스에 녹아있다. 성경의 내용을 그림으로 쉽게 전달하는 목적과 함께 미국 역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함께 녹여낸 것이다. 이 스테인드 글라스에는 미국 독립과정의 유명한 전투,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모두 등장한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성당 중간 쯤 위치한 스테인드 글라스의 오른쪽 하단 귀퉁이에 부채꼴 모양으로 숨어있는 타이타닉호의 모습이다. 바로 존 제이콥 애스터 4세의 어린 부인 마들랜이 이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 전체를 기부하면서 유일하게 요구한 조건이었다. 수십명의 예술가들이 도제 형식으로 수년 동안을 작업한 창문들인 만큼 제작 비용도 천문학적이있다. 요즘 가치로는 아마도 수백만 달러가 될 것이라는게 성당 측의 설명이다. 그런 자금을 선뜻 지원하는 미망인의 바람을 뿌리칠 수 없었음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마들랜은 이렇게 자신 만의 방식으로 멋지고 아름답게 자신을 살리고 먼저 떠난 남편을 추모한 것이다. 이 타이타닉호 그림을 이 성당 스테인드 글라스의 형식인 미국 역사 담기의 한 부분으로 알고 지나치는 관람객들이 대부분이지만, 혹시 설명을 듣게되는 사람들은 기부자의 개인적 소망이 반영된 것에 부정적인 반응보다는 아름다운 기부의 흔적으로 안타깝게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최근 불거진 앤서니 마셜의 징역형은 뉴요커들에게 화제보다는 씁쓸함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 아들에게 재산을 빼앗긴 브룩 애스터 여사의 아들 앤서니 마셜에게, 타이타닉호에서 숨진 존 제이콥 4세는 의붓 할아버지, 애스터 4세의 아들이자 어머니 브룩 애스터의 남편 빈센트 애스터는 의붓 아버지가 된다. 대성당에 타이타닉 그림을 새겨넣은 마들랜 애스터도 배 침몰 당시 뱃속에 아이가 있었고 이 아들은 빈센트 애스터의 이복 동생이 되며 따로 유산을 상속받았다. 결국 마들랜은 앤서니 마셜의 새할머니가 된다. 뉴욕 언론은 앤서니의 징역형 확정기사와 함께 이 복잡한 가계도를 함께 보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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