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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뉴스센터 이야기 - ③ 일곱 글자의 미학, 제목 달기

[취재파일] 뉴스센터 이야기 - ③ 일곱 글자의 미학, 제목 달기
앵커가 뉴스를 소개할 때 화면에 나타나는 제목, 우리끼리는 '어깨걸이'라고 부르는 이 효과의 이름은 DVE(Digital Video Effect : 실제의 화면에 여러 가지 효과를 부가시켜 새로운 영상으로 변형을 주는 것)입니다. 방송기자들은 보통 기사를 작성할 때 어깨걸이에 어떤 그림을 넣을지, 제목은 어떻게 할지도 함께 작성합니다. 물론, 감수는 뉴스PD가 하는 일이지요.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시청자였던 시절의 저는 뉴스를 볼 때, 앵커가 하는 소개 멘트와 어깨걸이 제목 위주로만 기사를 봤던 것 같습니다. 기자가 된 뒤에는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기사 본문의 단어는 물론 접속사와 조사까지 하나하나 신중하게 골라서 쓰기는 합니다만, 사실 1분 반짜리 방송 기사라는 건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리기 때문에, 어깨걸이가 주는 인상이 기사의 대부분을 결정한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기사를 기획하는 단계에서부터 제목은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선배 한 사람은 심지어 제게 '일곱 글자짜리 기사 제목이 생각나지 않으면 그 기사는 쓸모없다'라고까지 가르쳐줬습니다. 취재를 할 때 나름 좌우명삼아 요긴하게 활용했던 그 말이, 뉴스PD를 하고나니 더욱 피부에 와 닿습니다. 짧은 제목으로 압축되지 않는 기사는, 기자가 하려는 말이 분명하지 않은 것이고, 그러므로 방송 기사로서는 실격인 셈이니까요.

처음부터 일곱 글자라고 말은 합니다만 요즘은 DVE의 크기가 다양해져서, 많게는 열 두자 이상을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8시 뉴스나 모닝와이드를 봐도, 글자를 화면 양 옆으로 가득 채워야하기 때문에 이럴 때는 오히려 글자 수가 적으면 화면이 텅 비어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말이 길어지게 되는데, 개인적으로는 짧고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는 작은 크기의 DVE를 더 좋아합니다.

제목을 다는 데 특별한 원칙 같은 것은 없습니다. 기사 내용을 압축해서 잘 전달하면서도 미리 모든 결론을 다 알려줘서 김빠지게 만들 필요까지는 없는... 그런 '간단한' 제목을 달면 됩니다. 참 쉽죠? 함께 일했던 데스크 한 분은 젊은 사람다운 감각적인 제목을 요구하기도 하셨는데, 이게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뒤 현지에 남아있던 우리 국민을 탈출시키는 '십자성 작전'을 다룬 리포트의 제목을 <한국판 '아르고'>라고 지어놓고 혼자서 굉장히 뿌듯해했었지만, 방송 내기 전까지 찜찜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내용도 유사하고 - '아르고'가 먼저냐, '십자성 작전'이 먼저냐, 를 찾아보기까지 했습니다. 먼저 일어난 사건을 두고 한국판, 운운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 최근에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이기는 하지만, 국내 개봉 관객 수가 그리 많지도 않았는데, 시청자들이 바로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밤새 머리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뭐, 상관없습니다. 제목에 들인 노력이 아깝긴 했지만, 아침뉴스에서 그 리포트는 방송 안 됐으니까요.

대체 왜 그렇게 하는지, 처음에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켰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제목을 쓸 때 관행적으로 사용하는 몇 가지 기호가 있습니다. 먼저, 홑따옴표(' ')는 '이른바'의 의미로 쓰거나, 강조할 때, 의성어나 의태어를 쓸 때 주로 사용합니다. <'원전 비리 책임' 줄줄이 면직>, <삼성, '애플 안방'에서 판정승>, <7개월 보관해도 '사각사각'> 같은 제목들이 그 예입니다. 또, 겹따옴표(" ")는 직접 인용을 할 때 씁니다. 예를 들어, <"연예병사 제도 폐지까지 검토"> 같은 제목에서는 겹따옴표를 씀으로써 이 말은 국방부가 한 말이라는 점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제목에 느낌표나 물음표는 잘 쓰지 않는데, 아무래도 담담하게 사실을 전해야하는 뉴스에서 감정을 과하게 드러내는 일을 삼가자는 취지가 아닐까한다고, 혼자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저는 물음표를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내용을 압축적으로 잘 전달하지 못하는 내공 부족 때문이라고 자책하고 있습니다.

가장 오묘하고 알 수 없는 부분은 다름 아닌 말줄임표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제목이 길어지면서 서로 다른 두 개의 어구를 이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데요. <경보 상향 조정..'전력 공룡'에 SOS>, 이 제목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원래는 점 여섯 개를 찍어야 하는 말줄임표가, 줄여서 써도 점 세 개라고 학교에서 배운 그 말줄임표가, 방송에서는 왜 점 두 개인 것일까요. 게다가, 왜 가운데 부분에 점을 찍지 않고(‥) 아래쪽에 쓰는(..) 걸까요. 답을 알면 퀴즈로 내 드리겠지만, 사실 저도 답을 모릅니다. 세상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방송사에서도 이렇게 뜻 모르고 습관적으로 하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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