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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아랍의 ‘별’이 된 난민청년 아사프

‘아랍 아이돌’, 지친 아랍인의 영혼에 힐링이 되다

[월드리포트] 아랍의 ‘별’이 된 난민청년 아사프
지난 토요일 밤 아랍 전역에서 2억명이 넘는 시청자들이 TV 스크린 앞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전 세계적인 오디션 프로그램의 열풍 속에 지난 2년간 아랍권 전역을 들썩거리게 만들었던 오디션 프로인 ‘아랍 아이돌’의 최종 결승이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랍 지역의 오디션 프로그램은 국경과 인종의 장벽을 뛰어넘어 엄청난 인기를 과시합니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언어적 동질감과 무슬림은 모두 형제라는 유대감이 있는 데다, 각 가정마다 일반화된 위성 TV를 통해 다른 아랍권의 문화와도 일상적 교감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랍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결선 진출자들

이런 최고의 프로그램에 나선 결선 진출자들의 면면은 그저 우연이라기엔 너무도 정확히 분쟁과 반목에 지쳐가고 있는 아랍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시리아 출신의 홍일점 도전자였던 파라 유세프양은 다마스쿠스 출신입니다. 다마스쿠스에서 결선이 열린 레바논 베이루트까지 육로로 이동하다 여러 차례 총탄세례를 받고 불귀의 객이 될 뻔 했다고 합니다.

결선을 앞둔 인터뷰 내내 희망을 잃은 조국의 현실을 이야기하며 자기 노래가 시리아 사람들에게 웃음을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눈물을 멈추지 못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또 다른 결선 진출자는 이집트 청년 가말이었습니다.

이슬람 세력과 비이슬람세력간의 반목과 극한대결로 시민혁명 이후 민주주의가 안착하지 못하고 있는 이집트의 현실에 가말은 ‘음악은 그런 구분이 없다. 음악이야 말로 우리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밝혔습니다.

누구보다 시선을 끈 결선 진출자는 팔레스타인 출신의 모하메드 아사프 였습니다. 여차하면 로켓포와 미사일이 난무하는 격렬한 독립투쟁이 계속되고 있는 가자지구 칸 유니스 지역의 난민 캠프 출신이라는 것 자체가 눈길을 끌었고 유럽의 영화배우 같은 훤칠한 외모에다 어느 자리에서나 당당하게 팔레스타인 독립의 당위성을 당차게 얘기하는 당당함에 많은 아랍 여성들이 매료됐습니다.

특히 무대에서 과거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 의장이던 아라파트가 즐겨 입던 격자무늬 스카프를 둘러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 의지를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오디션 참가비 조차 마련하지 못해 발을 굴렀지만 딱한 사연을 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십시 일반으로 카이로에서 열린 예선에 참가할 수 있었고, 결국 결선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해 냈습니다.

'아이돌'이 된 난민청년…'무기를 들어야만 혁명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치열한 경합 끝에 최종우승은 예상대로 팔레스타인 난민 청년 아사프에게 돌아갔습니다. 아사프는 우승이 확정되자 무릎을 꿇고 넙죽 절을 하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아사프는 곧바로 가자지구의 유엔 명예 대사로 위촉됐고 최고급 스포츠카를 부상으로 받는 등 평생 경험하지 못한 부와 명예가 뒤따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깊었던 건 아사프의 수상 소감이었습니다. ‘꼭 무기를 들어야 혁명을 하는 게 아니다. 화가는 붓으로, 작가는 글로 혁명에 동참하듯 자신도 노래도 팔레스타인을 대표해 싸우겠다는 것’이었죠.
무함마드 아사프
한’을 담은 아랍 음악…노래로 분노와 울분을 달래는 아랍인

아사프는 노래를 무기로 얘기했지만, 끝없는 분쟁과 반목에 지친 아랍인들에겐 음악이 유일한 ‘위안’이자 평화를 갈구하는 ‘메시지’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아랍 아이돌 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저의 정서를 자극했던 그들의 음악은 묘한 선율의 단조음악에 수많은 기교가 들어간 독특한 색깔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랍 전역에서 수천 년 넘게 뿌리내리고 있는 이슬람사원의 꾸란 낭송과도 닮아 있고요 마치 우리 선조들이 읊던 시조의 선율과도 닮아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됩니다.

‘타랍’이라 불리는 이들의 전통음악인데, 이번 아랍 아이돌 참가자 대부분은 바로 아랍 전통 음악인 ‘타랍’을 바탕으로 한 노래를 불렀습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한국의 슈스케 참가자들이 ‘목포의 눈물’과 ‘동백 아가씨’ 같은 트롯. 소위 말하는 뽕짝을 부른다고나 할까요?

이들의 무거운 단조선율과 독특한 창법엔 우리의 트롯과 마찬가지로 깊은 ‘한’이 서려 있다는 느낌입니다. 수 많은 외침과 내전으로 갈갈이 찢긴 가족들, 나라를 잃고 떠돌아야 하는 비참한 현실이 계속되는 지구의 화약고 중동의 민중들이 느끼는 슬픔과 고통의 정서가 고스란히 음악에 반영돼 있고, 아직도 진행형인 그런 ‘한’의 정서는 젊은이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져 세대를 넘어 타랍 속에 담겨져 온 것이죠.

여하튼 이번 아랍 아이돌 무대는 난민청년의 스타탄생이라는 극적인 스토리와 함께 고통스런 아랍의 현실과 그들의 동질감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줬습니다. 무엇보다 끊임없는 정정불안과 극심한 경제난 속에 지쳐 있는 아랍 시민들에게 잠시나마 웃을 기회를 준 작은 ‘힐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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