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월드리포트] 에르도안을 알아야 터키사태가 보인다

장기화 국면맞은 터키 반정부시위 사태

[월드리포트] 에르도안을 알아야 터키사태가 보인다
‘아랍의 봄’ 으로 수십년간 지역을 호령해 온 여러 독재자들이 쫓겨나거나 물러난 이후 단연 돋보이는 한 사람을 꼽으라면 많은 지역 전문가들은 주저없이 에르도안 터키 총리를 꼽습니다.

지난 50여년 간 IMF로부터 19차례나 각종 구제금융을 지원받아야 할 정도로 엉망진창이던 터키 경제를 연평균 7%의 성장을 구가하는 반석 위에 올려놨고, 올해엔 235억 달러에 달하던 IMF 빚을 모조리 갚아버렸습니다. 또 외환보유고는 260억 달러 수준이던 것을 지금은 천억달러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올려놨습니다.
이런 강력한 경제 개혁과 인상깊은 성공의 발자취는 에르도안에게 10년 장기집권의 길을 열었고, 국제사회에 터키의 위상을 제고하게 하는 동력이 된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런 에르도안이 이끄는 터키에서 벌어진 대규모 반정부 시위 사태는 혼돈을 거듭하고 있는 중동과 이슬람권에서 모델 국가로 주목받던 에르도안식 발전 전략에 심각한 회의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화려한 성장의 이면에 가려진 터키 사회 내부의 그늘이 만만치 않았음을 이번 시위 사태가 증명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르도안 총리는 연일 강경발언을 내놓으면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있습니다. 집권 이후 최대 규모의 반정부시위에 직면하고도 타협의 여지없이 일방통행을 계속하는 에르도안이란 인물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마 터키 시위 사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수성가로 달려온 성공가도, 에르도안 총리

에르도안_500
에르도안은 이스탄불 외곽의 가난한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엔 거리에서 레몬주스와 터키 전통빵 시미트를 파는 행상으로 돈벌이를 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이후 이슬람계열의 중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강력한 사상적 기반을 갖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한 때는 터키의 유명한 축구클럽인 페네르바체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올 정도로 실력이 괜찮은 축구선수였다고 하니 승부욕도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대학 때부터 공산주의와 유대주의에 대항하는 학생조직을 이끄는 등 정치적 기질을 보이기 시작해 80년대 군사 쿠데타 이후엔 이슬람 복지당에서 야당생활을 시작해 본격적인 정치의 길로 들어섭니다.

이후 민선 이스탄불 시장에 당선되면서 강력한 이슬람식 개혁을 단행할 것이라는 우려를 뒤로 하고 상수도와 교통, 대기오염 등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수완을 발휘합니다. 하지만 터키 헌법재판소가 에르도안이 몸 담았던 이슬람 정당을 위헌사유를 들어 해산하자 투옥을 불사하는 강력한 투쟁으로 정치계의 거물로 부상합니다.

이후 에르도안은 직접 정의개발당을 창당했고 2002년 선거에서 전체의석의 2/3를 휩쓸며 집권에 성공합니다. 그 당시까지 정치적으로 복권되지 않았던 에르도안은 현 대통령인 압둘라 귤을 총리로 먼저 내세웠고 복권 이후 보궐선거를 통해 의회에 입성한 이후 드디어 총리로 취임합니다.

이후 앞에서 설명했던 눈부신 경제개발의 성과로 연임에 성공하면서 승승장구합니다.  가난과 역경을 정면돌파하면서 집권한 이후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탄탄한 정치적 기반을 다지면서 뚜렷한 정치적 대항마가 없을 정도로 터키 정치권의 독점적 세력을 형성하게 된 것입니다.

경제는 OK, 민주주의는 글쎄(?)

에르도안 총리하면 가장 강력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지난 2009년 세계 경제 포럼 때일 겁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여론이 비등할 때였는 데 마침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해 이스라엘의 시몬 페레스 대통령과 패널로 동석했던 에르도안은 이스라엘을 거세게 비난하면서 “다시는 이 따위 포럼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 버립니다. 당시 얼떨떨한 표정을 짓던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아직도 기억나는 군요.

국제회의 석상에 상대를 거침없이 비난하고 회의장을 박차고 나간 이 장면에서 어느 정도  에르도안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터키 국내에서도 낙태금지 법안이나 술 판매제한 같은 정책을 추진할 때도 거침없는 입담으로 반대파들을 억누르며 의지를 관철해 왔습니다.  결국 한 번 결정된 정책의 실현과정에선 어떤 반대나 토론도 용납하지 않는 불도저 같은 캐릭터는 이번 반정부시위 사태를 악화시킨 핵심적 요인으로 꼽힙니다. 이런 성격이 다양성과 합의를 존중하는 게 핵심인 민주주의적 가치를 발전 시키는 데 도움이 될 리가 만무합니다.

눈부신 경제성장과는 반대로 터키의 언론자유 지수는 179개국 가운데 154위입니다. 에르도안 집권 이후 수백명의 언론인이 투옥됐고, 반정부 성향의 학생들까지 무더기로 재판에 회부됐습니다. 이 때 터키 정부는 학생들이 던진 계란까지 살인무기라고 우겨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인터넷 검열 등 심각한 언론 통제가 자행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지금도 CNN 터키 등 터키 내부의 주요 언론들은 시위 중심부인 탁심광장을 외면한 채 에르도안 총리의 연설이나 친정부 성향의 시위들을 집중보도하고 있습니다.

에르도안의 위세에 눌린 시위대…게임은 끝났나(?)

[핫포토] 터키 반
이번 주 들어 에르도안은 강경진압을 재개하면서 반정부 시위에 대한 무관용 의지를 천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찰의 강경진압에 겁을 먹은 탓인지 시위에 참여하는 일반시민들의 숫자도 크게 줄어든 모습입니다. 일각에선 결국 에르도안의 강력한 카리스마가 다시 한 번 반대세력을 잠재운 것이라는 조금 성급한 듯한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탁심광장에서 만났던 많은 시민들의 말은 좀 달랐습니다.  시위가 진압됐다고 싸움이 끝난 게 아니란 겁니다. 이 대목에서 전 이명박 정부 초기 한국을 휩쓴 촛불시위 때와의 양상과도 비슷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촛불시위가 강경진압과 언론장악 등으로 사그라들긴 했지만 당시의 시민의 경험은 결국 이후 지방선거에 무서운 심판표로 나타났었습니다.

터키 역시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에르도안 총리 자신도 지방 선거를 자신에 대한 일종의 신임투표로 간주하는 발언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는 뚜렷한 정치적 대안이 없는 터키 내 시민사회 세력이 단기간에 유의미한 정치세력으로 성장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집권 세력의 승리가 유력하지 않겠느냐는 나름의 판단이 작용한 걸로 보입니다. 결국 터키 반정부 시위 사태는 이후 시위를 주도했던 광장의 정치세력이 높아가는 에르도안식 권위주의 정치에 대한 염증을 정치적 대안으로 전환시켜낼 수 있느냐가 관건인 셈입니다.

에르도안의 장기집권은 가능한가(?)

에르도안이 이번 반정부시위를 강경진압한 배경엔 개헌을 통해 장기집권을 노리고 있는 자신의 구상에 걸림돌이 되는 어떤 반대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집권 10년의 눈부신 성과에 찬사가 날아들고 아랍의 새로운 발전 모델이라는 평가에 집권자의 입장에선  자기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을 가질만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가졌던 뛰어난 지도자들이 독재자로 타도의 대상이 되고 비참하게 물러난 예를 우린 지난 ‘아랍의 봄’에서, 그리고 많은 역사를 통해서 목격해 왔습니다.

탁심광장에서 만난 한 터키 기자는 이렇게 진단하더군요.
“전후 프랑스를 재건했던 드골 대통령도 별다른 정치적 과오가 없었지만 대중들은 단지 그가 너무 오래됐다, 식상하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하물며 에르도안은 경제성과를 빼면 질식할 것 같은 그의 독불장군 같은 통치 방식에 사람들이 넌덜머리를 내고 있다. 시간의 문제이지 길은 이미 정해져 있다” 

당장은 시위 진압에 성공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에르도안의 카리스마가 장기집권의 길을 여는 돌파구가 될 지, 아니면 불명예스런 퇴진의 길을 여는 열쇠가 될 지 머지 않아 터키 국민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선택의 순간을 맞게 될 것 같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