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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허위 항해사 주의보

[취재파일] 허위 항해사 주의보
“고속버스 운전 경력만 있는데 항해사 자격증을 받았습니다.”

엔진 소리는 꽤 컸습니다. ‘낚싯배가 크면 얼마나 크겠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64인승 낚싯배의 조타실엔 키와 무전기, 물고기나 암초를 감지하는 레이더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전자 장비가 널려 있었습니다. 지난 7개월간 낚싯배를 운항한 선장은 수많은 장비 중 딱 세 가지만 알고 있었습니다. 앞뒤로 움직일 수 있는 기어와 좌우로 움직일 수 있는 키, 육지에서 항해 정보를 알려주는 무전기가 전부였습니다. 5급 항해사 자격증을 가졌지만 고속버스 운전 경력이 전부였기 때문이지요.

항해사 자격증은 기능 시험 없이 필기를 통과하고 승선경력만 인정되면 취득할 수 있습니다. 1급부터 6급까지 있는데 100인승 안팎의 바다 낚싯배, 즉 유선은 5급이나 6급 자격증을 가져야 운항할 수 있습니다. 5급 항해사 자격증만 해도 30톤 이상의 선박에서 1년 이상 직원으로 일하거나 5톤 이상 30톤 미만의 선박에서 2년 이상 직원으로 일한 경력이 있어야만 취득할 수 있습니다. 배를 운항할 수 있는 선장 자격증인 만큼 꽤나 긴 ‘바다 경력’을 요구하는 겁니다.

문제는 고속버스 기사 경력만 있는 제보자가 항해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었던 것처럼 승선 경력 위조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겁니다. 유선 부두를 찾아가 여러 선장들을 만나보니 이런 일은 일종의 ‘관행’이라고 말했습니다. 급하게 유선을 사고 팔 때 당장 배를 운항할 수 있는 항해사 자격을 갖춘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이런 매매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자격증 위조가 만연하다는 겁니다.   

위조는 운항 절차의 허점에서 비롯됐습니다. 30톤 이상의 선박은 출항할 때마다 어디로 가는지, 누가 배에 타는지 등을 해양항만청에 보고해야 합니다. 하지만 20톤 이하의 소형 선박이나 인천항, 목포항 등 근해 안에서만 운항하는 배들은 이런 보고 없이 아무 때나 바다로 나갈 수 있습니다. 집 앞에서 고기 조금 잡는 배들까지 보고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승선 경력 위조는 이런 선주들에게 돈을 주고 인감증명과 경력확인서를 받아 이뤄집니다. 승선 기록 자체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잡아내려 해도 잡아낼 수가 없는 것이지요.

해양대학교의 한 교수는 자격증 시험에 선박 조정 시뮬레이션을 도입하는 게 한 방법이라고 말했습니다. 해양대학교와 해양연구원 등 여러 기관에 이 시뮬레이션 장비가 도입돼 있다고 합니다. 승선 경력을 문서로만 확인할 게 아니라 이런 장비를 통해 직접 시험해 보고 자격증을 교부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겁니다. 실제로 지난 한해에만 백 대가 넘는 유선이 사고가 나 천여 명의 사상자가 났습니다. 이 사고가 모두 위조 자격증 때문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선박 사고는 대게 큰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위조 취득 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덧) 제 보도로 인해 예상치 못한 피해가 생겼습니다. 출항 보고 시스템의 허점을 말하는 과정에서 부두에 정박한 배들을 보여줬는데 모자이크를 했음에도 ‘송도호’가 비춰져 오해를 빚었습니다. 송도호의 선장은 항만청에서 인정받은 승무경력으로 정당하게 항해사 자격을 취득해 기사와 같은 위조 자격증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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