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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미국은 왜 굴뚝으로 눈을 돌렸나?

미국 제조업의 부활…디트로이트 취재기


  '라인 자본주의'의 요구…미국의 후회

영미식 자본주의와 대비되는 의미로 '라인 자본주의 (Rhine capitalism)'이라는 용어를 쓰는 경우가 있다. 라인강을 따라 위치한 독일과 프랑스, 북유럽 일부 국가의 자본주의를 말하는 것인데 사실 이런 정의는 미국 경제학자들의 시각에서 나온 것이라는 한계가 있다. 자본주의 자체의 뿌리가 바로 유럽이고 라인강이기 때문이다.  금융산업 위주의 경제가 여러가지 부작용을 일으키면서 라인 자본주의는 '주식시장보다는 은행의 힘이 더 크고, 은행과 기업의 관계가 밀접하며, 주주와 경영자의 힘의 균형이 이루어지고 무엇보다 창출되는 부를 노동자들이 공유하는..' 공정한 자본주의를 말하는 개념이 된 셈이다. 최근의 경제민주화 논의와 비슷하다는게 신기하다.

독일은 현재 세계 최고의 제조업 강국이다. 통계로 봐도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수출 총액에서 세계 선두를 달린 것은 중국이 아니라 독일이었다. 3조 달러가 넘는 대외채무를 지고 이마저 매년 큰 폭으로 늘어나는 미국과 달리 독일은 순채권국이다. 2009년부터 중국이 독일을 수출총액에서 앞서기 시작했지만 이것은 유럽의 불황과 유로화 절상의 요인이 크다. 독일과 프랑스를 합치면 역시 중국을 앞선다. 13억의 인구를 가진 중국과 8천3백만의 독일을 총액으로 비교한다는 것도 웃긴 일이다. 독일 경제의 내구성을 실감할 수 있다.

미국 지식인들이 요즘 심각하게 바라보는 나라는 어떻게 보면 중국이 아닌 독일이다. 독일은 미국의 표적시장인 중국을 비롯한 제3국 시장을 말 그대로 신나게 잠식하는 중이다. 미국은 언제부터인가 고품질의 정밀제품을 유럽보다 잘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생산시설의 중국 이전으로 고급기술 노동자들이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수출하는 것은 중국공장에서 만든 IT 제품들 위주가 됐다. 유럽인들은 미국산 자동차를 신뢰하지 않는다. 자국의 기술인력이 더 정교하게 잘 만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미국인들, 그리고 미국의 지도자들은 상당히 갑작스럽게 이런 현황을 절감하게 됐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부터이다. 

디트로이트의 새로운 활기…美제조업의 훈풍

최근 미국의 제조업 경기가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디트로이트를 찾아갔다. 미국의 제너럴 모터스, 포드, 크라이슬러 등 3대 자동차 회사가 모여있어 '미국 자동차의 성지'로 불렸던 곳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강건하다던 3대 자동차 회사들도 재정위기에 직면하면서 큰 위기를 겪었다. GM과 크라이슬러는 파산신고를 내서 사실상 정부관리에 들어가기도 했었는데, 당시 문제는 본업인 자동차 판매가 아닌 이익금을 활용한 과도한 금융투자였다. 공장은 작업을 중단했고 많은 근로자들이 떠났다. 밤에는 맥주와 저녁을 즐기는 근로자들로 붐비뎐 주변 다운타운은 황폐화됐었다.

5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상처는 아물고 있었다. SBS팀이 찾은 곳은 디트로이트 외곽의 레이크 오리온이란 도시의 GM 공장이었는데 상당수 실직자들이 이미 복귀한 상태였고 새로운 조립라인도 개설된 상태였다. 무엇보다 최근 미국내 자동차 판매가 늘면서 작업이 한층 활기를 띄고 있었다.

인터뷰한 근로자는 일을 한다는게 너무 즐겁고 모두가 자기 차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브래드 그랜디씨는 이런 말을 한다.

"확실히 살아나고 있어요. 2008년 만해도 우리가 이렇게 부활할 수 있을 줄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죠. 요즘엔 잠을 깊이 잡니다. 일자리에 대한 걱정을 안하게 됐으니까요. 내일도 다음 주에도 일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고 모두가 표정이 편안해졌습니다."

특히 GM의 경우 최근에 소형차 위주의 시장공략에 집중해왔는데, 미국의 경기회복세와 맞물려 이 전략이 먹혀들었고 올해에는 250명의 신규고용도 이뤄졌다. 이런 일자리 효과는 지역경기에도 온기를 불어넣고 있는데 문을 닫았던 식당과 주점 등에 다시 손님이 몰리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공장 인근의 작은 도시 포니악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로라의 말을 들어봤다.

"많은 사람들이 미시건을 떠났었죠. 하지만 남은 사람들이 큰일을 해냈어요. 일하는 사람들은 작업을 끝내고 앉아서 맥주를 마시고 음식을 먹고 쉴 곳이 필요하죠. 손님이 크게 늘어난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조금씩 숨통이 트이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미국의 지식인들은 왜 디트로이트에 주목하는걸까? 그것은 제조업의 쇠퇴와 부활이 지역경제에 주는 영향을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제조업은 일자리를 만들고 소비를 만들어내고 있다. 구글과 애플에 취직할 수 있는 아이비리그 출신의 재원들의 일자리가 아닌 우리 동네 아저씨들이 일할 수 있게 해주는 기반이 제조업이라는 것이다. 

  '리쇼어링' 미국기업들의 선택

지난해 말에 애플이 1억달러를 들여서 중국 공장의 일부를 미국으로 옮기기로 했고, 구글도 주목받고 있는 신제품 '구글 글래스'공장을 캘리포니아 실리콘 밸리에 짓기로 결정했다. 미국 언론은 근 20년 만에 미국업체의 공장이 본국으로 돌아오고 있다면서 '미국 제조업의 승리'라는 표현으로 이 소식을 크게 보도했다. 또 일본의 렉서스 자동차가 지난 달 미국에 생산공장을 짓기로 결정하는 등, 비슷한 결정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 등 제3세계로 떠났던 생산시설이 다시 돌아오는 이른바 '리쇼어링(reshoring)'이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근 기사에서 이런 흐름을 미국 제조업의 부활과 연결시키면서 리쇼어링으로 새로 만들어진 일자리가
최근 3년 동안 3만5천개에 이른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런 흐름의 배경은 뭘까? 미국기업들이 오랜 불황과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제조업이 뒷받침되지 않은 경제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뚜렷하게 느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미국에서 유통되는 공산품 중 '메이드 인 USA'의 비중은 심각한 수순이다. 미국 제조업계를 대표하는 이익단체 '생산성과 혁신을 위한 제조업연맹(MAPI)'에 따르면 2012년 미국에서 팔린 공산품 가운데 수입품은 39.8%였다. 1967년 통계를 보면 91%가 미국산이었다. 

 또 일자리 창출이 가장 큰 목표인 오바마 정부가 파격에 가까운 지원책을 내놓은 것도 주목할 만 하다. 공장을 옮기는 기업에겐 법인세 인하 뿐아니라 시설 이전 비용의 20%를 정부가 보전해준다는 그야말로 개발도상국에 있을 법한 정책을 펴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도 미국에 공장을 짓는 것이 한층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데, 중국의 임금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데다 미국내 이른바 '셰일가스'라는 새로운 에너지 개발이 성공을 거두면서 국내 생산비용이 크게 감소한 것도 요인이다. 여기에 더 중요한 것은 최근 중국산 등 수입산에 싫증을 느낀 미국 소비자들이 '메이드인 아메리카'제품에 큰 선호도를 보이고 있는 것인데, 최근 많은 업체들이 신문과 TV에 나오는 제품광고에 미국산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미국 제조업의 부활은 여러가지 시사하는 점이 많지만, 일각에서는 미국이 독일의 제조업 번성을 보면서
위기감을 느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에선 제조업이 회복되고 있지만 아직 부활로 보기엔 이르다는 의견도 있는데 제조업 활성화에 걸맞는 기술 노동자의 육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한편으론 미국의 제조업 부활은 자유무역 협정국이자 주요 부품 수출국인 우리 한국기업들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중요해보인다. 아울러 한국 기업들의 리쇼어링 흐름도 나타날 지 궁금하다. 미국의 제조업 귀환 흐름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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