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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애 낳다 숨진 산모에게 무슨 일이?

진료 기록 전산화를 의무화 해야

[취재파일] 애 낳다 숨진 산모에게 무슨 일이?
1년 전 ‘만삭 부인 사망 사건’을 접했습니다. 아이를 낳기 위해 수술실로 걸어 들어간 산모가 2시간도 안 돼 숨진 사건이었죠. 사인은 양수색전증. 양수가 정맥을 타고 폐로 들어가 호흡 곤란을 일으키는 증상인데요, 분만하던 산모가 사망했을 때 병원 측이 공식적으로 밝히는 사인 중에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현대 의학에서는 양수색전증을 의사가 손 쓸 수 없는 증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가족이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명백한 의료 사고이자 의료 과실이라면서 말이죠. 사건 당일 진료기록과 며칠 뒤 다시 작성된 진료기록을 얻어냈고요, 의사의 동선이 담긴 병원 내부 CCTV도 확보해 시간대별로 꼼꼼히 분석했더군요. 출동한 119 구급대원을 만나 구급일지를 챙겼고, 병원 측과 통화한 녹음 파일을 정리하는 등 망자의 ‘진짜’ 사인을 밝히기 위해 그들은 생업을 뒤로 한 채 눈물겨운 사투를 벌였습니다.

저는 당시 이 과정을 모두 취재했었지만 결국 보도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당시 병원도 극구 부인했고, 경찰 역시 병원이 잘못했다는 심증은 있지만 확실한 물증이 없다며 조심스러워 했기 때문입니다. 유가족의 상처만 헤집고 취재를 접었던 부채 의식이 이번 ‘의료 사고 시리즈’를 탄생시킨 중요한 밑거름이 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병원에 가서 몸이 회복돼 돌아옵니다. 그러나 일부는 외려 병을 더 얻거나 심지어 사망까지 합니다. 의사는 신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의료 사고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분노하고 원망할 수는 있지만 병원과 의사를 향한 맹목적인 비난을 삼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문제는 의료 사고에 대처하는 병원과 의사들의 태도입니다. 내부적 매커니즘으로는 의료 사고의 원인을 분석해 과실 여부를 자체 판단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대외적으로는 대부분 ‘수술은 잘 됐는데 환자가 문제였다’는 식으로 결론을 내리지요. 바로 이때부터 병원 혹은 의사와 사고 당사자들 간의 기나긴 공방이 시작됩니다.

이들의 싸움은 그러나 공평하지 않습니다. 축구 경기로 치자면 평평한 그라운드가 아니라 경사진 그라운드에서 높은 쪽의 골문은 병원 측이, 낮은 쪽은 사고 당사자들이 지키는 형국입니다. 왜 그럴까요? 의료 사고의 원인을 밝힐 수 있는 기초 자료인 진료 기록을 살펴보겠습니다. 의료법엔 진료 기록을 수정, 보완할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고의’가 아니라면 말이죠. ‘고의’로 고쳤을 경우엔 3년 이하의 징역을 살게 할 정도로 중대 범죄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의성’은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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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례가 있습니다. 뉴스에서 보도한 대로 어느 대형 병원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6살 난 어린이가 복통 등의 이유로 이 병원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당시 담당 의사는 뇌수막염 징후로 판단했습니다. 어른도 5분을 못 버틴다는 요추천자(척추에 주사기를 꽂아서 척수액을 뽑는 행위)를 무려 2시간 반 동안 진행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척수액에서 감염 흔적은 없었습니다. 뇌수막염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아이는 이후 간질 증세를 보이다 뇌성마비에 걸렸고 몇 년 뒤 결국 숨지게 됐습니다. 부모는 아이가 뇌성마비에 걸리자 병원 측에 항의했습니다. 처음 작성된 진료 기록을 확보해 소송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병원은 1년이 지나서 추가 작성한 진료 기록을 증거로 제출했습니다. 당시 기록이 미비했기 때문에 보완했다는 이유를 댔습니다. 추가 작성된 기록은 1년 전 아이에게 약을 몇 밀리그램 투약했는지, 당시 열이 얼마나 있었는지 등 마치 어제 일어난 일을 적은 것처럼 자세했습니다.이 기록대로라면 의사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법원은 어떻게 판단했을까요. ‘진료 기록을 추가 작성해 보완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고의로 조작했다고 보긴 어렵다’며 병원 측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어디까지가 적절한 수정과 보완이고 어디까지가 고의성을 갖는 조작일까요.

경사진 그라운드를 조금이라도 평평하게 돌려놓으려면 국가가 나서야 합니다. 현재 거의 모든 병원은 진료 기록을 전산화 해놓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은 로그인을 통해 들어가기 때문에 언제, 누가, 왜 기록을 고쳤는지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완벽하진 않다고 합니다. 전직 대학병원 출신 병원 관계자가 “그래도 조작하려면 한다. 진료나 수술에 참여한 각 과들이 모두 나서 고쳐야 하는 대공사가 되겠지만…”이라며 알려준 내용입니다. 지금은 병원이 이 시스템을 사용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입니다. 자율입니다. 이걸 의무 사항으로 바꿔야 그나마 진료 기록 조작 논란이 조금이나마 줄어들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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