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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청와대의 'X파일'…'존안자료'가 뭐길래?

정반장의 삼청동 브리핑

[취재파일] 청와대의 'X파일'…'존안자료'가 뭐길래?
정치부 정준형 기자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명한 장.차관급 이상 고위 인사들이 줄줄이 낙마하면서 빚어졌던 '인사문제 논란'이 4월이 되면서 잦아든 분위깁니다. 물론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와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내정자에 대한 임명 절차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고, 최문기-윤진숙 두 장관 내정자들에 대해서도 장관으로 부적격하다는 자질 시비가 일고 있기는 합니다만, 이미 인사문제가 한창 논란이 됐던 국면은 지나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내정자의 경우 기존의 도덕성 문제와는 또다른 '능력' 문제가 논란이 되면서 최종 임명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 돼가면서 '인사 실패' 논란의 불씨가 되살아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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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지명했다가 낙마한 장·차관급 이상 고위인사들이 몇 명인지 기억은 하시나요? 무려 6명이나 됩니다. 다들 아시겠습니다만, 한번 쭉 거론해볼까요. 김용준 국무총리 내정자,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 김병관 국방장관 내정자,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내정자, 김학의 법무차관이 낙마한 고위 인사들입니다. 낙마한 6명 외에도 비록 장관에 임명되기는 했습니다만, 일반인들의 상식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갖가지 의혹들을 가진 장관급 인사들도 물론 있었습니다.

국회 인사청문회는 지난 2000년 김대중 정부 시절 인사청문회법이 제정되면서 시작됐는데, 그동안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숱한 고위직 내정자들이 도덕성.자질시비에 휘말려 낙마해야했습니다. 5년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당시에도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장관 3명이 잇따라 낙마하면서, 이른바 '강부자' 내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이전 정권들의 인사 실패 사례를 쭉 지켜봤떤 박근혜 대통령은 장.차관 인사를 준비하면서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자신만은 '절대로 실수 없는 인사, 실패하지 않는 인사, 성공한 인사'를 할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신중하게,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면서 인선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역대 최악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받을 정도로 정반대의 결과가 나와버렸습니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흔히들 말하는 허술한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 박 대통령의 폐쇄적 나홀로 인사 방식 등을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박 대통령이 폐쇄적 인사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비슷한 인사 사고가 또 일어날 가능성이 클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궁금했습니다. 청와대 인사,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위의 두가지를 포함해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텐데, 청와대 관계자들로부터 이야기를 듣다보니 한가지 문제가 공통적으로 지적되더군요. 바로 '청와대 존안자료' 문제였습니다. '존안자료'가 뭐냐? 아실 분도 계시겠습니다만, 일반적으로 고위공직자 후보군에 대한 갖가지 정보와 자료를 모아둔 것을 말합니다. 물론 존안자료라는게 반드시 고위공직자 후보군만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경제계와 학계, 언론계, 시민단체를 비롯한 각계 주요 인물들이 대상일 수도 있습니다. 또  '존안 자료'는 국가정보원이나 경찰청, 기무사 등 수사를 하거나 정보를 다루는 정부 기관별로 따로 만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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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청와대 존안자료는 다른 정부기관 존안 자료와 어떻게 다를까요? 쉽게 말하면, 청와대 존안자료는 정부기관별 존안자료를 모두 합친 것에다 청와대에서 별도 조사한 '플러스 알파' 자료가 더해진 개인 인사자료라고 보시면 됩니다. 여기에는 개인의 신상자료는 물론 공직 활동이나 민간기관 업무 활동에 대한 평가와 함께 은밀한 개인비리와 사적 언행, 정치적 성향까지 기록돼있다고 합니다. 청와대 존안자료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관리하는데, 이게 왜 중요하냐면 기초적인 인사 자료로 활용되기 때문입니다.

예로 어느 부처 장관 후보자로 아무개가 어떤지 알아본다고 할 때, 존안자료를 펼쳐보면 아무개가 어떤 사람인 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고, 개인 비리 의혹같은 것도 금방 알 수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인선 여부를 판단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또 그만큼 인사 사고를 예방할 수도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반면 존안자료라는게 개인에 대한 갖가지 세부 정보를 담고있는 만큼 인사와 상관없는 일에 악용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른바 '정치공작'이나 '회유' '압력' 등에 이용될 소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존안자료라는게 이 만큼 중요하다보니 청와대 안에서도 대통령과 비서실장, 정무수석 비서관을 비롯한 일부 극소수의 핵심 인사들만이 존안자료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존안 자료의 규모 역시 사회 각계 인사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다보니 일반인의 생각보다 방대한 규모라고 합니다만, 존안자료 목록에 오른 인사가 정확히 몇명이나 되는지, 정보의 양과 깊이는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하게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국가정보원의 경우 수천명의 존안자료를 관리하고 있다고 알려졌을 정도입니다.

존안자료에 대한 설명을 하다보니 말이 조금 길어졌습니다만, 이 존안자료와 새 정부 인사문제와 무슨 관계가 있길래 '청와대 존안자료'가 이야기가 나왔던걸까요? 문제는 이겁니다. 이명박 정부 때 만든 방대한 존안자료를 박근혜 정부 때 활용할 수 없었다는 것, 아니 활용 정도가 아니라 아예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명박 정부 당시 만들었던 존안자료만 볼  수 있었더라도, 새 정부의 인사 사고를 크게 줄일 수 있었을텐데 그렇게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박근혜 정부는 이전 정부의 존안자료를 볼 수 없었던 것일까요? 그 이유는 이전 정부의 청와대 존안자료의 경우 일반 통치자료와 함께 비밀문서로 지정돼 대통령기록물 보관소로 옮겨져 봉인이 돼버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새 정부가 출범하더라도 이전 정부 청와대 존안자료를 볼 수도, 활용할 수도 없게 되버리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이명박 정부가 출범했을 때 역시 노무현 정부에서 만들었던 존안자료를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전 정부의 존안자료를 밀봉해버리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라고 합니다. 첫째는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습니다만, 고위직 인사에 활용하려는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 그러니까 정치공작 등에 악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두번째는 존안자료를 보면 "이전 정부에서 누구누구를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뒤를 캤구나"라는 것을 알 수가 있기 때문에, 이게 정반대로 이전 정부 인사들을 상대로 악용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론 봉인된 존안자료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법적으로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 의결이 이루어지거나, 관할 고등 법원장이 중요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여 영장을 발부한 경우 등에 열람이 가능합니다만, 그럴 경우 또다른 정치적 논란이 뒤따를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볼 수가 없다고 봐야합니다.

이 때문에 지금 청와대 관계자들은 박근혜 정부의 존안자료를 새롭게 만들어야한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각 기관에 존안자료를 요청한 뒤 자체적으로 수집하고 판단한 정보를 더해서 새롭게 존안자료를 만들어간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런데 5년 뒤에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만든 존안자료는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대통령기록물보관소로 넘겨져 밀봉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다음 새 정부 역시 또 박근혜 정부에서 만든 존안자료를 볼 수도, 활용할 수도 없을 것이고 이번과 비슷한 인사사고가 반복되지 않을까요?

청와대 인사들이 이번 조각 인사와 관련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또하나 있습니다. 너무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들을 검증하려다보니 나름 최선을 다하긴 했지만, 불가항력적 부분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여기엔 이명박 정부 당시 만들었던 존안자료를 활용할 수 있었더라면 인사사고를 줄일 수 있었을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는 속 뜻도 내포돼 있습니다.

사실 대통령직 인수위 당시, 그러니까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남아있을 당시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인사와 관련해 당시 청와대 존안자료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제의를 했지만, 박 당선인이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박 대통령이 당시 청와대 존안자료 활용을 거부한 이유는 크게 두가지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나는,  그럴 경우 인사 명단이 넘어가 보안 유지가 힘들다는 점, 또 하나는 박 대통령이 존안자료 자체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다는 말도 있습니다.

아무튼 청와대가 이번 인사문제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이전 정부 존안자료를 활용하지 못한 점을 꼽고 있는데 대해 자신들의 허술한 인사검증 체계는 생각하지않고, 책임을 엉뚱한데로 돌리는 것 아니냐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도적 개선은 필요한 부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특히 존안자료 뿐만 아니라 5년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인사검증을 맡았던 담당자들까지 모두 새롭게 교체되는 것도 문제라고 합니다. 인사검증에 대한 노하우가 이전 정부에서 새 정부로 전혀 전수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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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런 말을 하더군요. "지금 같은 식이라면 앞으로 5년 뒤에 누가 대통령이 돼서
새정부가 출범하더라도 똑같은 인사 사고가 반복될 수 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존안자료들 가운데 내용 조작이 가능한 개인적 평판이나 검증이 힘든 소문 등을 제외한 기본적 신장자료와 객관적으로 검증된 부분 등은 그대로 남겨서 차기 정부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거나, 인사검증 담당자들이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하면서 차기 정부로까지 검증 업무를 이어갈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관실을 중심으로 인사시스템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있고, 대통령 취임 100일을 즈음해 개선 방안을 발표할 가능성도 있다고 하니, 그 내용이 어떻게 나올지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과거 정부때 부터 낙마한 숱한 고위공직 후보자들을 떠올려보면서 이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우리나라의 50대 이상 세대는 상당 수가 낡은 관행에 따라 별다른 도덕적 죄책감 없이 재산을 증식해온 세대이고, 그러다보니 이런저런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고, 인사청문회에서 제기된 문제들은 비단 고위공직 후보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50대 이상 상당 수가 가지고 있는 '세대차원의 문제'가 아닐까가하는 생각말입니다. 물론 그 당시에도 깨끗하게 사신 분들도 많고 50대 이하 세대에서도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증식한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만, 워낙 낙마인사가 많다보니 이런 생각까지 들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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