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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스릴러 뮤지컬, 4·50대 남성도 사로잡다

[취재파일] 스릴러 뮤지컬, 4·50대 남성도 사로잡다

연말에 공연이 확 몰려서 이것저것 볼게 많다가, 연초에는 일종의 '휴식기'라고 볼 공연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많으실 겁니다. 새로 바뀐 환경에 적응하는 직장인들,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야 하는 부모들도, 학원을 다니느라 정신없는 학생들도 모두 마음의 여유가 없기는 마찬가지일 겁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럴 때일수록 시간 내서 공연 한 번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마침 재밌는 공연들이 꽤 있으니 다행입니다.

뮤지컬 극장에 가면 2,30대 여성들과 이들을 따라온 남성 관객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좀 다릅니다. 4,50대 아저씨들도 많습니다. 직장에서 동료들과 단체로 오거나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온 아저씨들도 있습니다. 남자들끼린 공연을 보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고 온 남-남 커플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장면은 '스릴러물'공연에서 두드러집니다. 

개막 이후 꾸준히 예매율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오페라의 유령>이 대표적입니다. 25년 기념 내한 공연이라는 타이틀 만으로도 국내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영국의 오래된 극장에서보다 무대 연출이 화려하고 극 중에서 오페라를 연기하는 가수들의 가창력이 관객들을 쥐고 흔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국내 관객들에게도 잘 알려진 음악, 팬텀이 등장할 때마다 나오는 긴장감 넘치는 음악이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선과 악이란 인격을 동시에 소화하는 연기가 백미인 <지킬 앤 하이드>, 주인공의 이중인격이 다른 이들에게 들통나진 않을까 관객들의 긴장이 극에 달합니다. 게다가 '지금 이 순간(This is the momen)', '한때는 꿈에(Once upon a drea)' 등 뮤지컬 음악이라면 한번 씩은 꼭 들어보게 된다는 이 곡들 덕에 관객들은 이미 뮤지컬과 돈독해져 있습니다. 이 두 뮤지컬은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진데다 입소문이 좋다보니 올해 공연에서는 연일 매진은 물론, 남성 관객 비율이 전체의 3분의 1을 넘어섰습니다. 

올해 처음 한국에서 공연하는 <레베카>가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소설 원작에 스릴러의 대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로 제작됐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관심 갖는 매니아들이 있다고 합니다. 극 중에서 남녀 주인공보다 돋보이는건 '집사'역의 조연으로, 가는 곳마다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면서 시종일관 긴장을 유발하는 역할입니다. 무대는 좀처럼 밝은 조명을 쓰지 않고, 배우들의 노래는 갈수록 절규에 가까울 정도로 긴장이 치열해집니다. 영화와 서스펜스의 포인트는 좀 다릅니다. 영화가 표현할 수 있는 배우들의 디테일한 표정 연기나 장소가 주는 압박감이 아무래도 뮤지컬 무대에서는 어렵기 때문인지, 스토리 전개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영화와 다른 뮤지컬 <레베카>의 장점으로 이런 배우들의 감정들이 음악으로 전달되는 과정에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무대에 몰입하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는데, 연출가가 정확하기 이 부분을 노렸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좀 놀라기도 했습니다. 

연말엔 로맨스, 코미디 장르의 공연이 많습니다. 현실에선 좀 고달프고 팍팍하더라도 공연을 볼 때만큼은 밝고 신나는 기운을 받고 싶어하는 관객들의 바람입니다. 그런데 관객들의 취향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무대 속 이야기' 보다, 나 자신이 무대에 서 있는 것처럼 몰입할 수 있는 공연을 찾는 사람들도 많이 늘고 있습니다. 한 세대의 특별한 취향이라기 보다는, 뮤지컬 시장이 그만큼 다양해 지다보니 관객들 수준도 그만큼 성장했다고 해야겠습니다. 이런 관객들의 바람이 창작 뮤지컬로도 이어지고 있다고 하는데요, 기대해 볼만 할 것 같습니다. 

공연 시작에 앞서 한 50대 아저씨가 극장 로비에 앉아 베이글에 커피를 마시고 있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됐습니다. 대단히 낯선 장면이었습니다. 평소 주말저녁 TV 시청할 시간에, 식사치고는 너무도 부실해 보이는 빵을 아쉽게나마 드시는 모습입니다. 제 아버지도 떠오릅니다. 뮤지컬엔 익숙지 않은, '간단한 이야기를 노래로 질질 늘여서 하는 공연이 어색하기만 한'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저씨입니다. 그런 저희 아버지에게도 어색할 거란 걱정 걷어 버리시고 한번 추천해 드리고 싶네요. 뮤지컬에는 아버지가 푹 빠져서 볼 수 있는 이런 장르도 있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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