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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 끼 1,500원 어린이 밥 직접 만들어보니…

[취재파일] 한 끼 1,500원 어린이 밥 직접 만들어보니…
여러분 한 끼 식사 준비할 때 돈이 얼마나 들까요. 예전에 고아원이라고 불리던 ‘아동양육시설’ 급식에 정부가 지원하는 금액이 한 끼에 1500원 정도입니다. 요즘 라면이 한 개에 800원 정도 하니까 대략 라면을 두 개 정도 살 수 있는 돈이죠. 그나마 지난해까지는 1420원이었다가 올해 100원이 오른 것입니다.

이 금액이면 한 끼 식사를 준비하기에 충분할까요. 직접 아동양육시설 영양사와 함께 확인해 봤습니다. 15200원으로 10인분의 식사를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식단을 짜는 것부터 쉽지가 않았습니다. 당일 이른 아침부터 메뉴 바꾸기를 수차례, 비교적 재료가 저렴하고 반찬 수가 적은 ‘콩나물 밥’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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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제대로된 콩나물 밥을 만들기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당초 식단은 콩나물밥, 어묵탕, 계란찜, 단무지, 김치 등이었지만 반찬은 커녕 콩나물밥에 들어갈 나물조차 제대로 살 수가 없었습니다. 콩나물, 무, 표고버섯 등 몇 가지 사고 나니 이미 5500원이었기 때문입니다. 본래 소고기를 밥에 얹으려 했지만 정육점 근처에는 가지도 못 했습니다.

오히려 장바구니에 담았던 단무지를 내려놓고, 어묵탕까지 포기했습니다. 대신 단백질이 부족한 아이들을 위해 계란찜 대신 계란탕을 하기로 메뉴를 조정했습니다. 같은 양의 계란으로 찜보다는 탕을 더 많이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계산대 앞에서 물건을 짚었다가 놓았다가 하는 저희 모습을 본 한 가게 주인은 “지금 당근 하나, 송이버섯 한 봉지에 2000원 씩인데 어떻게 15000원으로 열 명이 먹을 밥을 만드냐”며 황당해 했습니다.

결국 만들어진 콩나물밥은 아래 사진과 같습니다. 콩나물 몇 줄기와 당근, 버섯 몇 조각이 고작입니다. 일반 초등학생들이 먹는 식단과 비교해봤습니다. 우측이 일반 초등학생들이 먹는 식단을 촬영한 것이고, 좌측이 1500원으로 만든 아동양육시설 아동들이 먹는 식단입니다. 한 눈에 크게 차이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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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과연 맛있게 먹을까. 부드러운 소고기 반찬을 입에 떠 넣어줘도 조금만 딱딱하면 뱉어내는 조카가 문뜩 떠올라 들었던 의문이었습니다. 지난해 12월 9일에 서울 구산동 아동약육시설에 입소한 여덟 살 짜리 남자 아이에게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아이는 “라면과 김치”라고 답했습니다. 의외의 답이어서 “간식 중에는 뭐가 제일 좋으냐”고 재차 물었습니다. 한참을 생각하더니 아이는 “잘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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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산동의 이 아동양육시설은 기부금을 아이들을 먹이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사용하는데도 매 끼니 영양 균형을 맞추기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게다가 지난해에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기부도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시설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정치인이나 시민단체 등에서 대선 때처럼 민감한 시기에는 오히려 기부를 줄인다고 했습니다. 서울 은평천사원 조성아 원장은 “기부가 많이 들어올 때는 아이들의 식단이 좋아지고, 그렇지 못할 때는 식단이 부실해진다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라고 하소연했습니다.

아이들의 건강 상태가 좋을 리 없습니다. 이 시설에 입소한 80여 명의 아이들 중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이 우울증을 앓고 있고, 철분과 단백질이 부족해 약을 복용해야 한다는 전문의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가뜩이나 이곳에 있는 아이들은 입소하기 전부터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거나 방치돼 영양상태가 나쁘기 때문에 더 잘 먹어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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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아동양육시설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1만 6천 명정도 됩니다. 저소득층 아이들은 한 끼에 3500원 정도 지원을 받지만 이 양육시설 아이들은 기초생활수급자로 별도로 분류돼 식비가 더 낮게 책정돼 있습니다. 이봉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속적이지 않은 민간 후원에 양육시설 아이들의 먹을거리 질을 떠넘기는 것은 국가가 아이들의 양육 책임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뉴스를 보도한 직후 댓글이 2천 개가 넘게 달렸습니다. 몇 가지 소개 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시설 아이들이 투표권이 있었다면 100원만 올렸을까요. 의원님들이 새해에 중남미와 아프리카로 다녀오신 외유성 여행경비 1억 5000만 원이면 아이들 10만 명 먹을 식비입니다’, ‘전직 의원들에게 월 120만 원 씩 연금 지급하는 의원연금법은 통과시키고, 아이들 100원 식비 올리는 것은 너무 한 것 아닌가요’, ‘직장인 아기 엄마입니다. 어린이집 지원 비용 줄여도 좋으니까 부모 없는 아이들 밥값 올려주세요’

다양한 의견이 있었지만, 다수의 의견이 위 세가지 내용으로 모아졌습니다. 아동양육시설 아이들이 먹는 것만큼은 차별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하루 빨리 대책이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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