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사람이 안 부럽다…100억 몸값 '황제' 씨수말

** 동물을 대상으로 쓰는 글인 만큼 표현이 다소 적나라하더라도 양해바랍니다. **

"박 기자님, 우리 말 옮기는데 한 번 안 와보실래요?"
"말이요? 연초에 업무 파악하느라 바빠 죽겠는데 말은 무슨…"
"얘 앞으로 들어가는 보험료만 1년에 2억이에요. 몸 값은 40억 원 정도."
"헉…40억 원이요? 뭔 말이 그렇게 비싸데요?"

말에 문외한이었던 저는 일단 깜짝 놀랐고, 점점 커져가는 빈부격차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저를 비롯한 평범한 시청자들에게 엉뚱한 위화감이나 안겨드리지나 않을지 걱정하면서, 그렇게 연초부터 '황제 씨수말' 메니피를 만나러 갔습니다.

여기서 잠깐, 씨수말이란 수컷 말 가운데 씨를 뿌리는 말을 의미합니다. 그럼 씨수말이 아니면 다른 수컷들은 평생 교배를 하지 못하느냐...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간이 키우는 경우 그렇다는 겁니다. 특히 혈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마용 '더러브렛'종의 경우, 메니피 같은 씨수말은 1년에 90여 마리의 암말을 만나 교배할 수 있지만, 다른 수컷들은 이미 경주마 육성 단계에서 거세를 당하거나 그렇지 않다해도 교배를 할 기회가 없다고 합니다. 엄청 불쌍하다는데 동의하시나요? 기타 말들의 성생활 관련해서는 후반부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전통적 혈통 스포츠 경마에서는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 않는답니다. 아비와 어미의 혈통이 좋아야 훌륭한 새끼가 나오는 거죠. 그래서 어느 나라든 잘 뛰는 녀석들은 대부분 한 아비 밑에서 태어난 형제인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제가 제주에서 만난 씨수말 메니피는 현재 우리나라 경마계를 주름잡고 있는 녀석들의 '아비'였습니다.

원래 미국의 뼈대 있는 '말'가문에서 태어났고, 현역 경주마 시절 성적도 우수했다고 합니다. 한국 마사회는 지난 2006년 이미 은퇴한 메니피를 '40억'원에 국내로 들여왔는데요, 그만큼 메니피의 혈통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겁니다. 그 기대감은 적중했고, 지난해 한국 경마는 메니피의 자식들이 휩쓸다시피 했습니다.
한국에 와서 낳기 시작한 자식들이 커서 이제 펄펄 나를 시기가 된건데, 자식들의 상금을 모두 더해 뽑는 '리딩 사이어'에 지난해 2등 말과 큰 격차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귀한 몸이다보니 특급 대우를 받는 건 당연할 겁니다. 먼저 한 끼 식사비용이 4만원이나 한다는데, 양도 많기야 하겠지만 사람보다 훨씬 비싼 밥을 먹고 있습니다. 하루에 4.5kg의 배합사료를 주는데, 여기에는 홍삼 분말, 마늘가루, 해바라기씨, 오메가 3 등 각종 비타민과 정력강화 식품이 첨가됩니다.

** 취재에 도움 주신 제주와 전북 장수 목장장님 이하 마사회 직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마구간은 원목으로 만들어 귀한 몸 다치지 않게 하고, 볏짚 쿠션도 깔아줍니다. 전담 수의사와 관리사가 매일 규칙적으로 운동도 시키고, 6천 제곱미터 규모의 전용 초지에서 마음껏 뛰어놀다가 암말들에게 씨만 뿌려주면 된다고 하니 그야말로 상팔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좋은 씨를 원하는 암말(마주)들이 제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마사회는 형평성을 기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씨수말들을 이동시키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메니피가 제주에서 전북 장수로 옮길 차례였습니다. 아침 6시에 2억원 대 무진동 차량을 동원해 메니피를 옮겨 싣고는 제주항으로 가 커다란 배에 차량 째로 실었습니다. 배를 타고 3시간, 완도에 도착한 뒤에도 쉬지 않고 곧바로 고속도로를 달렸는데요, 수송 과정에서 메니피가 느낄 스트레스를 줄여주기 위해서랍니다. 덕분에 관리사들 뿐 아니라 저희 취재진도 쫄쫄 굶었습니다.

다행히 별 탈 없이 수송은 10시간 만에 완료됐고, 점검 결과 메니피의 상태는 아주 양호했습니다. 메니피의 씨를 받기 위해 이미 전국의 암말들은 4:1의 경쟁률 속에 교배 추첨을 마친 상태라고 합니다. 이미 떠난 제주에서도 메니피의 씨를 받기 위해 암말들이 배를 타고 따라 올 예정이라고 하니 인기가 하늘로 치솟고 있습니다.

말들은 초식 동물이라 교배를 풀이 잘 자라는 2-6월에 한답니다. 암말들이 먼저 발정이 나고, 그 기간이 일주일 가량 지속되는데 그 때 교배를 해줘야 하고 임신 기간은 11개월입니다. 그리고 저도 이번에 처음 들은 사실인데, 말들은 교배 시간이 짧아 1분 내외라고 합니다. 또, 메니피처럼 직접 씨를 뿌리는 말 말고 그 전에 암말들을 흥분시켜 주는 역할만 하는 '시정마'가 따로 있다는데요, 평소 행동을 보고 응큼한 녀석들로 골라 투입하면 암말을 충분히 애타게 만들어주고, 그 때 씨수말을 투입하는 겁니다. 불쌍한 시정마는 흥분만 시켜주고 물러나야합니다.

메니피 같은 경우 지난해 경매시장에서 메니피의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새끼 말들의 몸 값이 2억 중반을 넘고 있습니다. 참 잘 생기고 딱 봐도 멋진 말이었습니다. 한 마리 말에게서 느껴지는 부러움과 위화감이 귀경길 내내 취재진을 괴롭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