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과를 A학점으로 졸업은 했지만, CO2(이산화탄소)는 들어 본 적 없어요."
지난 16일 서울의 한 전문대학원 외국인 재학생들의 요상한 말입니다. 법무부 이민특수조사대가 지난 7월 이 대학원의 학생들이 미심쩍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를 시작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수상한 학생들이 줄줄이 나왔습니다. 알고 보니, 이 학생들은 모두 위조된 졸업장과 성적증명서로 대학원에 입학한 가짜 유학생들이었습니다.
이 학교 사회복지학과는 정원 260여명 가운데 절대 다수인 251명이 몽골인입니다. 법무부 이민특수조사대 관계자에 따르면 이 학교가 몽골에서는 입학하기 쉬운 학교로 입소문이 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취재하면서 입학상담을 받아 보니 대학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만 내면 된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학교 관계자는 “서류를 내는 순서대로 ‘선착순 합격’하기 때문에 서두르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가짜 유학생들이 왜 이렇게 이 대학원에 입학하려는 걸까. 이유는 바로 돈입니다. 관광 비자를 발급받아 국내에 어 온 후 학교에 입학하면, 유학생 비자가 쉽게 받을 수 있고 그러면 취업비자가 없어도 주당 30시간까지는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적발된 가짜 유학생 대부분은 학교에 거의 나오지 않고 아예 취업을 했습니다.
특히 이 학교 사회복지학과는 수업은 일주일에 딱 한 번뿐이고, 등록금도 유학생들에게는 특별히 150만 원(원래 300만 원 정도) 수준으로 깎아주고 있었습니다. 이 학교가 사회복지학과 개설 2년 만에 가짜 유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비결입니다. 이산화탄소가 뭔지도 모르는 42살의 화학과 출신 아주머니는 한 학기 150만원을 투자하고, 매 달 그 이상의 월급을 챙겼다고 합니다.
학교 측은 수사와 취재가 시작되자 심하게 반발했습니다. 학교가 절대 불법을 모른 체 한 것이 아니라는 취지입니다. 물론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과거 분쟁 국가 학생이 서류를 위조해 국내 유명대학에 입학했던 사례를 취재했었는데, 대학이 일일이 입학예정자들의 국가에 의뢰해 졸업 증명서의 진위를 확인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학교가 단 한 번도 가짜 유학생들을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은 여전히 의문입니다. 우리말은 단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학생이 한국어로 수업하는 사회복지학과를 수강하고, 어렵게 유학까지 와서 비싼 등록금을 냈는데도 학교에 오지 않는 학생들이 대부분인데도 말입니다. 아무리 변명을 해도 학교 측이 외국인을 상대로 유학생 비자 장사를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은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 보태기
처음 취재를 시작한 것은 10월쯤 이었습니다.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일 때였죠. 보도를 할까 고민했습니다. 불법체류자 문제는 자칫 정당한 절차를 밟아 입국한 선의의 외국인들에게까지 불편한 시선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사를 쓴 이유는 재정이 탄탄하지 못한 ‘대학들의 꼼수’를 모른체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수년 전부터 계속돼 온 문제인데도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버젓이 장사 아닌 장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죠.
기사가 나간 후 한참 동안 포털 검색 순위 1위가 CO2였습니다. 우려했던 (생각지도 못했던 모 대선 후보 비하 발언부터) 외국인 폄하 댓글도 달렸습니다. 기사의 핵심은 일부 대학의 꼼수 장사인데 몽골인에 대한 몰이해로 잘못 확산되지 않기를 다시한번 당부드립니다.
*참고로 몽골에서는 CO2를 диоксид углерода соответственно(지옥시드 우글레로다 사뜨벳스뜨벤노 )로 읽는 다고 합니다. '전공자가 아니라면' CO2라고 '발음'했을 때 모를 수도 있겠죠? 다만, 조사 받은 학생의 경우는 몽골말로 조사를 받았을 때 역시 전공이라고 밝힌 화학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몽골로부터 그 학생이 제출한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가 가짜라는 답변도 왔습니다. 그러니 ‘CO2를 모르는 몽골인’이 아닌 ‘위조서류를 낸 가짜 유학생’에 방점을 찍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