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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혹시 '핼러윈 데이'가 뭐하는 날인지 아세요?

[취재파일] 혹시 '핼러윈 데이'가 뭐하는 날인지 아세요?
지난달 31일,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가수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란 노래에 나오는 10월의 마지막 밤이 떠오르시나요. 아니면 지인들과 '핼러윈 데이'를 즐기셨습니까. 10월의 마지막 날은 그저 그런 날이 아니라 뭔가 의미가 있는 날 같아서 기억이 잘 나실 듯 합니다. 해가 지날수록 80년대에 나온 잊혀진 계절보다, 핼러윈 데이를 챙기는 사람이 더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혹시 핼러윈 데이가 어떤 의미인지 아시나요? 이 날에는 뭘 해야 하는지 아시는지요? '그런 걸 왜 알아야 하나' 하시는 분들도 있으실 테지만, 한번 쯤 묻고 싶은 주제였습니다.
아, 한가지 먼저. 흔히들 '할로윈 데이'라고 말하고 저 역시도 '할로윈'이란 표현이 익숙합니다만, 국어법 표기상 '핼러윈'이 맞는 표현이라고 합니다. 좀 거슬리시더라도 이해 바랍니다:)

저는 중학교 때 미국 영화를 보면서 핼러윈 데이를 처음 알게 됐습니다. 귀신 복장을 한 아이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트릭 오어 트릿(trick or treat)!'라고 하면 어른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사탕을 주더군요. 아이들은 다른 집으로 가 또다시 말 한마디에 사탕을 받아 옵니다. 아이들은 사탕을 먹는 재미에,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에게 사탕을 주는 재미에 축제가 이어져 왔습니다. 핼러윈은 유럽에서 시작돼 미국으로 넘어와 널리 퍼진 서양의 문화로, 집에 죽은 영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집 안을 차게 하는 의식에서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핼러윈 데이가 큰 축제로 자리잡으면서 아이들이 사탕을 받는 것 뿐만 아니라 잭오랜턴(Jack O'Lantern)이라고 불리는 호박등 만들어 장식하기, 밤에는 어른들도 귀신 복장을 하고 파티를 하는 등 축제를 즐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 축제를 보면 한 마을 사람들이 이 날 만큼은 이웃 아이들에게 아낌없이 사탕을 주고, 가족들끼리 모여 호박등을 만들면서 가족애를 다지는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지역 공동체가 함께 즐기는 축제의 모습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일부 동호회에서부터 퍼진 핼러윈 문화가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마트에 들어온 핼러윈 파티 용품 매출은 매년 30% 정도 늘고 있습니다. 유통업계도 이 날을 맞아 호박 모양으로 포장용기를 바꾸거나, 아예 새로운 상품을 출시하기도 합니다. 이태원이나 홍대에서는 주점이나 클럽을 중심으로 핼러윈데이 파티가 열립니다. 여기에 주류 업계도 빠지지 않고 프로모션을 한다고 광고합니다.

무엇보다 핼러윈을 챙기는 곳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입니다. 예전엔 영어 유치원에 근무하는 외국인 강사들이 핼러윈 파티를 주도했지만, 요즘엔 서울시내 유치원에서 이 파티를 안하는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학교에서도 영어수업 시간이 있기 때문에 예외가 아닙니다. 대형마트에서 핼러윈 파티용품을 사가는 사람들을 지켜봤는데요, 90%가 어린 아이를 둔 엄마들이었습니다. 유치원에서, 혹은 학교에서 '10월 31일은 핼러윈 파티를 할 예정이니 핼러윈 복장을 준비해 오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다양한 문화 체험을 한다는데, 외국엔 못 보낼 망정 이렇게라도 해주고 싶은게 엄마 마음입니다. 직장에서 일하다 말고 자녀를 위해 독특한 의상을 사러 온 엄마도 있었고, 아직 말도 못하는 어린 아이에게 어떤 옷을 사줘야 하나 고민하는 엄마도 있었습니다. 호박 모양의 플라스틱 통에서 마녀 의상까지, 천원 단위의 장식품에서 10만원 안팎의 의상까지 가격도 종류도 다양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쉽게 물건을 고르지 못합니다. 이 옷을 왜 사는지, 어떤 용도로 쓰는지, 그렇다면 어떤 옷을 사줘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엄마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물건을 구매하는 사람들에게 핼로윈이 뭔지 아냐고 묻자 '모른다'는 답이 태반, '추수 감사절', '귀신의 날'...각양각색의 대답들도 나왔습니다. 2,30대들 가운데서는 '전세계가 파티하는 날'이란 답이 기억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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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1일 아침, 유치원에 등원하는 아이들을 지켜봤습니다. 공주풍 옷은 기본이고, 마녀 의상에 꼬깔모자, 빗자루까지 든 어린이도 있었고 경찰 제복, 슈퍼맨, 오즈의 마법사에 나온 깡통 인형 옷을 입고 온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평상복을 입은 아이는 단 한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보기엔 무척이나 귀여웠지만 하루에 10만원 안팎의 돈을 들여서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낸 엄마들을 생각하니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었습니다. 유치원마다 교육과정이 다르겠지만, 그 독특한 복장에 파티까지 하고 온 아이들이 뭘 배웠나 물어보면 '옷 입고 사진 찍었다'는 답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호박 장식품이 있었고 사탕을 나눠줘서 먹었다'는 얘기도 한다고 합니다. 결국 아이들은 다양한 문화 체험을 하긴 했지만 정체불명의 파티를 즐기고 돌아온 겁니다. 엄마들은 '차라리 호박등이나 의상을 같이 만드는 거라도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합니다.

핼러윈 데이를 앞둔 주말 홍대나 이태원 밤거리도 그야말로 '핫 플레이스'입니다. 평소 주말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건 기본이고, 주점이나 클럽마다 귀신복장에 가면을 쓴 사람들이 술 취해 흥청거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핼러윈 데이는 외식업계가 특수를 누리는 날, 그저 술먹고 노는 날로 정착한 것 같습니다.

틀렸거나, 몰랐다고 해서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서양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즐겨왔던 축제니, 우리가 이걸 정확하게 아는 게 더 이상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고보니 우리가 왜 핼러윈을 챙겨야 하는지 의문이 들더군요. 핼러윈을 있는 그대로 즐겨야 할 이유도 없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노는 날로 즐기자니 좀 부끄럽기도 합니다. 핼러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한번쯤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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