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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학교 안에서 술 못 마셔요?"

[취재파일] "대학교 안에서 술 못 마셔요?"
제가 10대일 때 어른들이 말했습니다. 대학만 가면 뭐든 할 수 있다고. 술도 마시고, 연애도 하고, 뭐든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그렇게 욕망(?)을 꾹꾹 눌러 참고 대학에만 가자고 다짐했습니다. 막상 대학에 들어갔더니 다른 건 모르겠지만 술은 자유롭게 마실 수 있었습니다. 선후배들 끼리 모여다니며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 바로 캠퍼스 낭만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내년부터는 학생들이 학교 안에선 술을 마실 수 없다고 합니다. 정부가 대학 내에서 술을 마시는 것도, 파는 것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기 때문입니다. 내년 초 이 법안은 입법 예고를 앞두고 있습니다. 내년부터 과 사무실에 곳곳에 숨겨진 빈 술병은 볼 수 없을 겁니다. 축제 기간에도 주점을 운영하는 단과대학은 없어지겠죠. 내년부터 학교에서 술 마시다 벌금 내기 전에 올해 안에 학교 잔디밭에서 한 잔 하자는 직장인들도 있습니다. 앞으로 캠퍼스 분위기는 어떻게 바뀌게 될까요.

개인적으로는 학생들의 입장에 좀 더 이해가 갑니다. 정부가 대학의 음주 문화를 직접 규제한다는 건 그냥 상식적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발의한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보면, '대학도 하나의 공공장소로, 과도한 음주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일환으로 캠퍼스 내 음주를 금지한다'는 게 취지입니다. 학생들은 '공공장소'라는 부분에서부터 해석을 달리하고 있고, 나아가 캠퍼스 내 음주도 하나의 대학 문화인데 자율성을 규제하는 건 아닌지, 만약 캠퍼스 내 음주를 단속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다른 것보다 '대학 문화'라는 부분에 공감합니다. 학교 안에서 술을 마시는건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선배들이 신입생들을 잔디밭에 모아놓고 술을 한 잔씩 따르며 친해지는 시간을 갖는 것부터가 제 대학 생활의 시작이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대학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런 시간과 장소를 마련할 수 있었겠는가 싶습니다. 어두컴컴하고 공기도 탁한 술집에 들어가는 것보다 그렇게 탁 트인 곳에서 모두가 둘러 앉아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자리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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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기간이 되면 이 술판의 규모가 더 커집니다. 학교 안에서 술이 박스 채 왔다갔다 하는 걸 보면서 저렇게 많은 술이 쌓여있는 건 처음 본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주점이 시작되면 어김없이 술이 동나야 끝났습니다. 주점에서 취한 학생들은 과 사무실에서 자거나 근처 하숙생들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제 대학 생활이 그랬었고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이렇게 학과 생활을 시작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외도 있습니다. 대낮부터 잔디밭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게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새로운 공부를 한답시고 대학에 들어왔지만 하루종일 술을 마시고 주폭(?)처럼 구는 학생은 어떻게든 자제를 시킬 필요가 있겠죠. 뿐만 아닙니다. 학교 캠퍼스 내에는 도서관도 있고 기숙사도 있는데, 부득이하게 공간이 좁은 학교는 주점을 하는 장소와 도서관이 가까운 경우도 있습니다. 술을 마시고 고성방가를 하고 추태를 부리는 누군가가 공부를 해야 하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셈입니다.
 
술을 마시고 학교 밖에 나가서 사고를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 25일 새벽 경기도 수원의 한 대학에서는 축제 기간 술판을 벌인 대학생 8명이 승용차 2대에 나눠타고 서로 질주를 벌였습니다. 그러다 차량 한 대가 커브길에서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튕겨나가 난간을 들이 받았는데, 차에 타고 있던 학생 1명이 숨지고 3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학생들의 철없는 행동이라고 하기엔 큰 사고였습니다.

많이 마시고 빨리 취하는 한국 사람들의 음주 문화는 다른 어떤 나라와도 비교가 됩니다. 주폭이니 뭐니 하는 것도 잘못된 음주 문화에서 비롯되는 겁니다. 그런데 대부분 학생들은 대학에 진학하면서 술을 배우게 되니,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과도하게 술을 마시는 분위기를 바로잡기 위해서 대학에서부터 먼저 규제할 필요가 있다는 정부의 입장도 이해가 됩니다. 또 학생들의 면학 분위기를 망치는 수준의 음주 문화라면 손을 댈 필요가 있다는 것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보건복지부가 발의한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은 대학 캠퍼스 뿐만 아니라 공공장소라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장소에서 술을 마시는걸 금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선진국에서는 이러이러 한다'는 다소 상투적인(!) 사례가 빠지지 않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이렇게 한다더라, 이런 얘기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제가 아는 한 가지 재미있는 사례를 소개할까 합니다. 영국에는 기숙사 마다 펍(pub)이 있는 꽤 유명한 대학이 있습니다. 캠퍼스 안에 기숙사가 13곳이고 학교 본관에도 펍이 있으니, 학교 내에만 14개의 술집이 있는 셈입니다. 

학과 공부의 부담이 적은 금요일 밤이면, 학생들이 이 14개 펍에서 술을 한 잔 씩 마시며 캠퍼스를 돌아다니는 게 하나의 전통이 돼 있습니다. 하지만 영국의 펍은 아무리 늦어봐야 밤 11시 반을 넘겨서 운영하지 않습니다. 술을 더 마시고 싶은 사람은 편의점에서 술을 사서 방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문화 자체가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캠퍼스 내에서 술을 마신다고 해서 위험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뭐가 옳은 걸까요. 대학생 때부터 올바른 음주 문화를 배울 수 있도록 대학 문화의 자율성을 규제하는 게 맞는 걸까요. 그렇다고 지금처럼 아무런 제지없이 술을 마시도록 내버려 두는 게 잘하는 걸까요. 당장 다음달 축제를 열 예정인 한국외대는 복지부 법안과 별개로 학교 차원에서 이른바 '처벌 방침'을 내놔 논란이 뜨겁습니다. 학교 내에 주점을 설치하는 걸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장학금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불이익을 주겠다는게 학교 입장입니다.

어떻게 보면 강수를 둔 건데, 주점을 열어야 하는 총학생회 입장에서는 당황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일단 학생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의견 수렴 과정이 필요할 거고, 그에 따라 학교 측에 항의든 수용이든 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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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복지부도 학교도 좀 성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생들은 아직 아무런 준비도 안 됐는데 갑자기 모든게 금지된다니 당황할 수 밖에요. 학생들도 과도한 음주는 자제해야 한다고 공감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캠퍼스가 좁은 학교는 주점을 여는 걸 반대하는 학생들도 있을 거라고 스스로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런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보기도 전에 학생들은 지금 무조건 '안 된다'는 말만 듣고 있습니다.

잘못된 음주 문화를 바꾸는건 정부의 일방적인 규제 뿐만 아니라 개개인이 주체적으로 참여해야 할 일입니다. 자발적인 노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학생들에게 새로운 지침을 주고 싶다면, 학생들이 스스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공감대도 필요한 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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