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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오동잎'에 대한 단상

[취재파일] '오동잎'에 대한 단상
"오동잎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가을밤에 그 어디서 들려오나 귀뚜라미 우는소리
고요하게 흐르는 밤의 적막을 어이해서 너만은 싫다고 울어대나..."

이 노래 아시나요? 1970년대 히트곡, 가수 최 헌 씨의 '오동잎'이란 곡입니다. 아는 분도, 모르는 분도 많으실 겁니다. 아는 분들은 이 노랠 아주 좋아하셨을 것 같고요, 모르는 분들은 전혀 느낌이 안오시겠죠. 모르는 분들께는 이 노래를 한 번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왜냐면 이 노래는 함께 얘기를 나눠 보고픈 점들이 참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1980년대에 태어났습니다. '오동잎'이란 노래는 노래방에서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지나가다 라디오에서 들었던 것 같은 곡입니다. 이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5번 넘게 들었습니다. 모두들 첫 소절만 따라 부르는데, 끝까지 들어보면 남자가 표현했다고 보기 힘들 정도로 가사가 상당히 섬세합니다. 외로움, 서러움, 말 못할 그리움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가사를 담은 노래의 장르는 공교롭게도 '뽕짝'입니다. 아무리 70년대가 트로트의 황금시대라고 해도 이런 잔잔한 가사와 가벼운 리듬, 멜로디는 뭔가 안어울리는 듯 하면서도 새로운 느낌입니다.

이 노래를 부르는 가수 최 헌 씨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네요. 그는 시종일관 '마초적인 냄새'가 나는 허스키 보이스로 노래를 불러냅니다. 오동잎 뿐만이 아닙니다. 또다른 히트곡 '가을 비 우산속'은 잔잔한 발라드인데, 역시나 서정적인 가사를 읊어내는 걸걸한 목소리가 독특합니다. 젊은 세대들에게 좀 더 친숙한 '카사블랑카'라는 곡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뜯어보니 이상한 점 투성이입니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K 팝만 보더라도 뽕짝이란 장르는 당연히 없고, 허스키한 보컬은 더더욱 없습니다. 대부분 감미로운 목소리에 참신한 멜로디와 현란한 디테일, 그게 아니라면 화려한 무대 비주얼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왜 어른 세대들은 그의 노래를 40년 넘게 좋아하는 걸까요.

1970년대 한국 문화는 명백한 침체기였습니다. 한 평론가는 우리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도약하던 시기에 대중문화는 '권력의 시녀' 역할에 불과한 시절이었다고도 표현했습니다. 그런 시대에 가수 최 헌 씨는 락 밴드로 음악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그룹 히식스의 리드 보컬로 활동을 하면서 이름을 날렸고, 이후 팀이 해체되자 '검은 나비'를 결성, 70년대 후반에는 솔로로 전향했습니다. 최 헌 씨를 히식스로 영입한 당시 리더 김홍탁 씨는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허스키한 목소리, 탁성을 가진 보컬로 모두들 탐내는 목소리'라며 그를 기억했습니다.

그의 앨범이 있는 황학동의 LP판 판매점을 찾았습니다. 그의 앨범이 있냐고 묻자 망설임없이 앨범 10장을 꺼내 보여주더군요. 가게 주인이 마침 밴드 출신이어서인지, 가수 최 헌 씨의 밴드 시절 음반부터 솔로 음반까지 설명을 죽 늘어놓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허스키한 목소리'로 그를 기억합니다. 학창 시절에는 날마다 불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게 왜 좋으시냐고 묻자, 한동안 생각합니다. 어려서 부를 노래가 마땅치 않았고, 다른 노래들은 가사가 어려웠고...그리고 서민적이었다고 회상합니다. 그 때는 정말 먹고 사는게 힘들고, 학교 다니기가 힘들었는데, 내 마음 속에 있는 소소한 고민을 털어놓을 데가 없어서 부른 노래가 바로 오동잎이었다는 겁니다. '힘들게 부르는 것' 같은 그의 목소리가 내 목소리마냥 들렸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발라드든, 뽕짝이든, 친근한 박자와 멜로디만 있으면 그의 노래는 누구나 편하게 부를 수 있는 노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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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최 헌 씨가 고인이 됐습니다. 식도암으로 1년 넘게 투병하다 64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가끔 늦은 밤 TV에 오래된 가요 무대에서, 어르신들이 박수 치면서 그의 노래를 따라부르는 화면을 보면 생각날 겁니다. 여전히 오동잎을 따라부르는 사람은 많습니다. 아니 그냥 스스로에게 말하듯이 부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쌀쌀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라 그런지,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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