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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키커를 조롱하고 골키퍼를 능욕하라!

영국 5번째 키커, '달리다 멈칫' 속임수 썼다가…<br>승부차기 그 고도의 심리전

[취재파일] 키커를 조롱하고 골키퍼를 능욕하라!
우리 축구 대표팀이 영국전에서 통쾌한 승리를 거뒀습니다. 지난 달 기준으로 FIFA랭킹 4위의 축구 강국이자 '축구 광(狂)국'의 나라에서, 대부분이 일주일에 1억 원씩 버는 선수들을 상대로, 우리 태극 전사들은 전혀 밀리지 않았습니다.

전반과 후반, 연장전도 잘 싸워줬지만 이번 8강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승부는 바로 페널티킥이 아닐까 합니다. 불과 1초 남짓한 시간 동안 골키퍼와 키커는 수없이 물고 물리는 심리전을 펼친다고 하는데요, 우리 골키퍼로 나선 이범영이 영국 선수들과 펼친 심리전은 정말 탁월했습니다. 페널티킥에서는 과연 어떤 심리전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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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말고 '발'을 봐야

영국의 5번째 페널티 키커 다니엘 스터리지는 공을 차려다 한 번 멈칫 했습니다. 이범영의 방향 예측에 혼란을 주기 위한 속임수였지요. 이범영은 말려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스터리지의 발을 끝까지 본 뒤에야 몸을 날렸습니다. 골키퍼가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몸을 날려 공을 막는데 걸리는 시간은 빨라야 0.6초라고 합니다. 반면 공이 11미터를 지나 골라인에 오기까지는 0.3~4초밖에 안 걸린다고 하네요. 골키퍼가 공을 보고 몸을 날리면 이미 늦었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골키퍼는 뭘 갖고 방향을 결정할까요? 바로 공을 차기 직전 키커의 발을 봐야 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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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저희는 키커가 슛을 쏠 때 골키퍼의 시선이 어디로 가는지 실험을 해봤습니다. 그랬더니 키커의 눈과 어깨, 허리를 빠르게 지나 무릎 아래쪽 언저리에 대부분의 시선이 쏠렸습니다. 키커가 아무리 속임수를 써도 끝까지 방향을 기다리는 '간 큰' 골키퍼에겐 당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키커도 넋놓고 당하지 만은 않겠죠? 골키퍼가 자신의 발을 보고 움직이는 순간, 키커도 동시에 골키퍼 무릎을 주목합니다. 골키퍼는 무릎이 펴지는 방향과 반대로 움직이게 돼 있습니다.(직접 한 번 해보시면 이해가 빠르실 겁니다.) 이 때문에 키커는 골키퍼의 무릎이 펴지는 쪽으로 볼을 차는 경향성을 보이게 됩니다.

## 골키퍼 능욕하는 '파넨카 킥'

방향을 예측해 움직이는 골키퍼와 그 예측 방향 반대로 공을 차려는 키커 사이에는 숨막힐 정도의 긴장감이 흐르게 마련입니다. 정말 찰나의 순간 동안 말이죠. 방향을 읽었다고 생각한 골키퍼, 한 쪽으로 몸을 날린 순간 허무하게 공은 한가운데로 날아옵니다. 골키퍼와의 불꽃 튀는 심리 싸움에서 완벽하게 기선을 제압하는데 이보다 더한 방법이 있을까요? 이 킥이 골키퍼에게 제대로 한방 먹이는 '능욕의 골'이라 불리는 이유입니다.

'파넨카 킥'은 원래 유로 1976년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당시엔 페널티킥에 대한 심리 연구가 매우 미진했을 때인데요, 체코 사람인 안토닌 파넨카가 독일과의 결승 승부차기에서 이 '능욕 슛'으로 체코에게 우승 트로피를 안겼습니다. 세상에, 정중앙으로 찰 줄이야! 그의 이름을 따서 킥 명칭을 정한 건 당연한 수순이겠죠. 우리나라에서 가장 최근에 나온 '파넨카 킥'은 홍명보 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이 지난달 올스타전에서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이번 영국전에서는 나오지 않았죠.

골키퍼의 과도한 몸짓도 또 하나의 심리전입니다. 이범영의 행동이 좋은 예입니다. 이범영의 눈은 '너는 슛을 절대 성공 못 시켜'라고 말하듯 매섭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뒤로 걸어가며 키커를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다음으로 팔을 최대한 둥글고 넓게 벌렸죠. 마치 골문 전체를 봉해버리겠다는 듯 말입니다. 영국팀 골키퍼 잭 버트랜드가 조롱하듯 혀를 쭉 내미는 것도 키커의 심리를 흔들어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하겠다는 계산된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불과 11미터 거리를 두고 창과 방패가 벌이는 고도의 심리전에는 전후반 90분 못지 않은 치밀한 전략이 숨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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