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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흉악한 성범죄로 황폐해진 마을

[취재파일] 흉악한 성범죄로 황폐해진 마을
벌써 일주일도 더 됐군요. 지난 22일 일요일, 실종됐던 한아름 양이 결국 시신으로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 취재 지시를 받고 급하게 현장에 내려갔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경남 통영시 산양읍에 대한 첫인상은 상당히 외지고 조용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통영 시내에서도 차를 타고 구불구불한 길을 30여 분 정도 가야 나오는 산골이었습니다. 행정구역상 통영시라곤 하지만, 사실상 시골 동네지요.

조용한 동네에 갑자기 경찰, 언론사들이 몰려드니 마을 주민들은 당황한 모습이었습니다. 처음 만난 주민들은 무조건 잘 모른다며 손사래를 치고 취재진을 피했습니다. 아마도 10살짜리 여자 아이의 납치 살해 피의자가 수십 년간 같은 동네에서 살아온 동네 주민이라는데 큰 충격을 받은 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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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장본인인 피의자 김모 씨는 그 마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만 45년간을 쭉 살아온 말 그대로 토박이였습니다. 물론 지난 2005년 같은 동네에 사는 62살 할머니를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성폭행해 실형을 산 4년 동안은 아니었지만요. 출소한 뒤 고물상을 하며 베트남 여성과 결혼도 하고 3살 짜리 딸까지 얻었으니, 이웃 주민들은 그가 이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줄은 몰랐을 겁니다.

범행 장소였던 김씨의 집, 그러니까 마을회관을 가봤는데, 정말 아름 양의 집과는 3백 미터도 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아름양과는 평소 잘 아는 사이였다고 하니, 결국 아름양은 '설마 그럴 줄 몰랐던' 동네 아저씨에게 화를 당한 겁니다.

그렇다면 정말 이 끔찍한 범죄를 미리 예상하고 막을 순 없었을까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당시 한 양은 학교에 가려고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화를 당했는데요, 한 양이 다녔던 초등학교를 직접 가봤는데, 정말 멀었습니다. 구불구불한 산길인데다 도저히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습니다. 요즘 같이 흉흉한 세상에 어린 초등학생이 매일 혼자 버스를 타고 다니기엔 무리였죠.

그렇다면 주변 방범 상황은 제대로 되어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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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닙니다. 가장 가까운 산양파출소는 학교보다도 더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범죄 예방을 위해 설치해놓은 CCTV는 무용지물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피의자 김 씨를 검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근처 펜션에 설치된 사설 CCTV였습니다. 산양읍 전체에 설치된 방범 CCTV래봐야 4대 밖에 없었습니다. 숫자도 적은데다 화소도 안 좋아 김 씨의 범행이나 동선을 거의 잡아내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한 양이 다녔던 초등학교 앞에 설치된 방범 CCTV는 그나마 고장난 상태였습니다. 학교 가겠다고 나선 뒤 실종됐던 한 양의 동선을 파악하기 위해선 이 CCTV 화면이 꼭 필요했지만, 확인조차 할 수 없었던 거죠.
피의자 김 씨에 대한 대처는 어땠을까요?

김 씨는 지난 2005년 성범죄를 저질러, 2011년부터 시행된 성범죄자 신상공개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김 씨는 산양읍이라는 조그만 마을에 몇 안 되는 성범죄 전과자였습니다. 경찰은 그 동안 근처 산양파출소에서 김씨를 3달에 한 번씩 관리했다고 밝혔지만, 알아보니 그 관리라는 게 허술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직접 대면하는 것도 아닌, 그냥 주변사람들을 통해 김씨의 근황을 묻는 게 전부였습니다. 40여 년을 같은 동네에서 산 이웃 주민들에게 물어봤으니, 당연히 별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다는 답만 나왔지요.

이번 사건에 대한 경찰의 대응에 대해선 많은 마을 주민들이 경찰이 나름대로 열심히 수사했다고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일부 주민들은 경찰이 CCTV 관리를 제대로 못했고, 유력한 용의자인 김 씨를 발빠르게 검거하지 못해 김 씨가 마을을 계속 활보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건 이후에도 마을에서 김 씨를 몇번 마주쳤는데, 지금 생각하면 소름이 다 끼친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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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검증과 한 양에 대한 장례식마저 끝난 통영 산양읍은 다시 예전의 조용한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그건 겉모습 뿐입니다. 끔찍한 사건 이후 이 마을에는 공포와 슬픔, 불신이 뿌리깊게 자리잡았습니다.

한아름 양의 아버지를 비롯한 유족들은 치유되기 힘든 깊은 상처를 떠안고 살아가게 됐습니다. 피의자 김 씨의 형들은 마을을 떠났고, 다른 마을 주민들은 무서워서 밤에 돌아다닐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동네 경관이 좋아 주변엔 펜션이 서너 채 있었지만, 사건이 터지고 나선 예약 문의도 뚝 끊기고 들어온 예약마저 모두 취소됐다고 합니다. 이 조용하고 평화로웠던 마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주민들은 마을이 다시 평온을 되찾았으면 좋겠다며 한숨만 내쉬지만 안타깝게도 끔찍한 성범죄의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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