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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슬픈 역사, '피의 일요일' 현장을 가다

[취재파일] 슬픈 역사, '피의 일요일' 현장을 가다
2010년 6월 영국 런던 템스강변의 하원 의사당에서 캐머런 총리가 공개 사과를 합니다. 발언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총을 쏜 것은 군인들이었습니다.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 날 일어난 일은 정당하지 않고
정당화될 수도 없습니다. 정부와 국가를 대신해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1988년 토니 블레어 당시 총리의 지시로 시작된 이른바 ‘피의 일요일’사건에 대한 재조사결과를 발표한 거죠. 재조사에만 12년이 걸렸고, 우리 돈으로 3천 6백억원이 쓰여졌습니다.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 사건이 일어난 1972년 1월 30일 이후 38년만에 진상이 밝혀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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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일요일' 사건이란 카톨릭을 믿는 북아일랜드 시위대 1만여 명이 북아일랜드의 런던데리시에서 신교파인 영국인들과 동등한 시민권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다 영국 공수부대원들의 발포로 13명이 현장에서 숨지고 14명이 다친 사건을 말합니다. 부상자 가운데 한 명도 치료 도중에 숨져 사망자는 14명으로 늘어납니다. 사망자의 절반은 10대 청소년들이었습니다.당시 영국정부는 시위대를 무장폭도로 부르면서 무장폭도들의 선제 발포에 군이 응사하면서 우발적인 총격전이 벌어졌다고 주장했지만, 재조사 결과 발포도 영국군이 먼저 했고, 발포 과정에서 아무런 사전 경고도 없었으며, 사망자들은 대부분 달아나다가, 혹은 부상자들을 돕다가 총탄을 맞고 숨진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피의 일요일 사건은 아일랜드 공화군 IRA가 본격적인 무장투쟁에 나서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총리가 머리를 숙인 날로부터 2년이 지난 지난달 말에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마틴 맥기니스 아일랜드 공화군(IRA) 전 사령관과 악수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이달 초 영국정부는 피의 일요일 사건을 살인 사건으로 간주하고 살인혐의에 대해 조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북아일랜드인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로 남았던 ‘피의 일요일’사건의 진실이 마침내 세상에 완전하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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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일요일 사건이라는 비극의 배경에는 아일랜드의 슬픈 역사와 복잡한 종교적 갈등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영토의 80% 정도의 면적에 모습도 대한민국 지도(한반도 남쪽)와 꼭 닮은 아일랜드는 카톨릭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아일랜드를 지배하던 영국이 식민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17세기부터 영국땅과 가까운 북아일랜드 지역에 청교도들,즉 신교도들을 대거 이주시켰습니다. 그래서 1921년 아일랜드가 700년만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 식민지 시절 상대적으로 호사를 누렸던 북아일랜드 사람들은 혹 카톨릭파에게 박해를 당할까 걱정해 영국령으로 남는 선택을 했습니다. 문제는 북아일랜드 안에 신교도들만 있었던 게 아니었던 거죠. 소수의 카톨릭교도들은 영국령 북아일랜드에서 선거와 고용등 모든 부문에서 차별을 받게 되자 1960년대말부터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고, 피의 일요일을 지나 1998년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무장투쟁을 벌였습니다. 똑같은 대우를 해달라고 외치면서 말이죠. 그 과정에서 3천 6백여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IRA는 지난 2005년에 무장투쟁 포기를 선언하며 무장을 해제했습니다.

슬픈 역사의 현장 ‘데리(일명 런던데리)’를 다녀왔습니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버스로 4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아일랜드에서 영국령인 북아일랜드로 접어들었지만, 국경선이 있거나 검문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습니다. 북아일랜드 제 2의 도시, 아일랜드 전체적으로는 4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도시 한 가운데로 17세기에 만들어진 성벽이 온전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 시절 아일랜드 사람들이 영국과 스코틀랜드인들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만든 성벽인데, 이 성벽에서 바로 피의 일요일 사건이 벌어졌던 구교도들의 집단 거주지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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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지금 자유로운 데리 시에 들어서고 있습니다.‘는 커다란 표지판을 필두로 북아일랜드 구교도들의 필사적인 삶의 투쟁을 묘사한 벽화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그리고는 곧장 피의 일요일의 한 가운데로 들어섰습니다. 먼저 온 가족이 북아일랜드 인권 운동을 하다가 숨진 키난家 기념비가 관광객의 발길을 사로잡습니다. 부인은 1970년에, 아들은 1972년에, 그리고 키난씨는 79세로 숨질 때까지 영국의 억압에 맞서 불굴의 의지로 인권운동을 펼쳐 나갑니다. 동지였던 부인과 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 아픔에도 굴하지 않고…….

마침내 피의 일요일 현장에 서있는 기념비와 희생자들의 명단을 적은 안내판에 다가섰습니다. 한 명 한 명의 이름과 사진, 그들이 꿈꿨던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 피의 일요일 당시 상황들이 차분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희생자들의 이름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남은 이들의 각오가 아로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과 슬픔, 불굴의 투쟁의 현장을 찾은 다국적 관광객들도 평등한 세상을 외치며 산화해간 머나먼 나라 북아일랜드 구교도들의 이름과 사진을 찬찬히 살펴 봤습니다. 피부색도, 처한 삶의 현실도, 경제력도 모두들 다르지만 올바른 세상, 평등한 세상,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향한 의지는 모두 같았습니다. 한 시간 남짓한 피의 일요일 현장 탐방은 그렇게 침묵속에 마무리됐습니다.

이 곳을 둘러보면서 우리의 80년 광주와 72년의 북아일랜드 데리는 닮아도 너무 닮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다른 것도 아닌 국민이 주인 되는 민주주의라는 기본적인 원칙을 요구했다고 아무런 이유 없이 죽어가야 했던 광주의 영령들이 피의 일요일 희생자들의 사진 위로 겹쳐 보였습니다. 정부의 공식명칭으로는 광주 민주화운동, 광주 민주항쟁의 사망자수는 정부 공식 발표로만 191명입니다.하지만 광주유족 단체들의 20여년에 걸친 자체 조사결과로는 사망자수가 606명입니다. 실종자에 부상 후 사망자수까지 합치면 1,000명이 넘을 수도 있다는 분석까지 있습니다. 사망자 수에서, 그리고 10일동안 계속된 항쟁이라는 측면에서도 80년 광주는 72년의 데리보다 더 처절했고 그만큼 의미도 큽니다. 하지만 광주는 아직도 데리만큼의 대접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확한 진상은 오리무중입니다. 누가 먼저 발포했는지, 발포 명령자는 누구인지 하는 기본적인 내용마저 전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억압과 비극을 일으킨 사람들이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죄한 일도 없습니다. 3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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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광주가, 그리고 우리가 데리에서 배워야 할 게 있을 듯 합니다. 데리의 피의 일요일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서 관광객들은 4파운드(7천원)의 돈을 내야 합니다. 그리고 한 시간동안 데리의 성벽과 구교도들의 거주지, 피의 일요일 현장을 둘러봅니다. 가이드는 침을 튀겨 가며 그 날의 아픔을, 북아일랜드인들의 고뇌를 얘기합니다. 그 날을 잊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꿈꿨던 세상도 멀지 않았다고 말이죠. 저와 함께 움직인 관광객들만 서른 명 정도 됐고, 이 가이드 혼자 하루에 백 명이상을 상대로 데리의 역사를 얘기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가이드가 너댓명 있는 것으로 봐서 매년 수만, 수십만 명이 피의 일요일 현장을 다녀간다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80년 광주의 현장은 데리의 피의 일요일 현장 보다 더 광범위하고, 그 때 싸웠던 사람들의 눈물과 피가 서려 있는 현장도 훨씬 많습니다. 그런데 지금 망월동 묘역 말고 당시의 현장이 제대로 보존돼 있을까요? 그 날을 기억하려 찾아가는 사람들이 망월동 묘역과 함께 정말로 당시 광주 시민들이 피를 흘려가며 지키려 했던 아픔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을 찾아볼 수 있을까요? 그런 곳이 기록돼 있고 남아있기는 한 걸까요? 대학생시절, 그리고 기자가 되고 나서 가끔씩 광주로 취재를 다녀왔지만 망월동 모역 말고 그런 기록과 현장이 남아 있다는 얘기를 들어 본적이 없습니다. 아픔의 역사까지 관광상품화하는 북아일랜드인들의 열성이 천박하기 보다는 묵직한 감동으로 다가온 경험을 광주에서도 해봤으면 합니다. 80년 광주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살아있는 역사 탐방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서 매년 수만. 수십만 명의 젊은이들이 우리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지켜지고 만들어졌는지를 온전히 배울 수 있었으면 합니다. 유료든 무료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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